2월 27일 나란히 개봉한 항일영화 두 편… 유관순 열사냐, 동양의 자전거 황제 엄복동이냐
2월 27일 나란히 개봉한 항일영화 두 편… 유관순 열사냐, 동양의 자전거 황제 엄복동이냐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2.28 20:03
  • 호수 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항거: 유관순 이야기  서대문 형무소 옥살이 재현… 8호실 여인들 함께 조명

자전차왕 엄복동   100억원 투입된 대작… 日선수와 자전거 경주 장면 압권

‘항거 :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3·1절을 맞아 나란히 항일영화 두 편이 나란히 개봉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항거 : 유관순 이야기’의 한 장면.

“서 있기만 하면 발목이 부어. 천천히 돌면 좀 나을거야.”

1919년 4월 어느 날, 갓 17세를 넘은 한 소녀가 차디찬 서대문 형무소 8호실에 내던져진다. 겨우 세 평 남짓한 감옥에는 앞서 붙들려온 십수 명의 여성들이 갇혀 있었다. 시각 장애인, 만삭의 임신부, 화류계 여인 등 출신도 제각각이다. 아직 감옥이 낯선 소녀에게 화류계 여인이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건네자 카메라가 자연스레 8호실 내부를 비추기 시작한다. 여성들은 부지런하게 반시계 방향으로 감옥을 돌고 돌았다. 그 움직임에는 처연함보다는 당당함이 가득했다. 소녀 ‘유관순’을 비롯, 만세운동 가담죄로 잡혀온 여성들은 그 누구보다도 당당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에 맞섰던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두 작품이 2월 27일 나란히 개봉했다. 화제의 작품은 ‘항거: 유관순 이야기’와 100억원대 예산을 투입한 대작 ‘자전차왕 엄복동’이다. 

먼저 ‘항거 : 유관순 이야기’는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 감옥에서 보낸 1년여의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서대문 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는 유관순 이외에도 수원에서 30여 명의 기생을 데리고 시위를 주도했던 기생 김향화, 다방 직원이었던 이옥이,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 감옥 안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기른 임명애 등 다양한 인물들이 수감돼 있었다.

작품은 유관순을 중심으로 작은 옥사 안에서 일제에 당당하게 맞선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를 보여주며 뜨거운 울림을 선사한다. 특히 거사를 주도한 유관순에 대한 고문을 지독하게 그려냈다. 일제는 그녀의 정신을 꺾기 위해 보기만 해도 몸서리치게 되는 고문을 자행한다. 찌를 듯한 비명이 영화관을 채우지만 그뿐이었다. 죽음을 각오한 유관순은 끝내 굴복하지 않았고 이는 벅찬 감동으로 다가온다.    

흑백과 컬러로 나눠 편집한 점도 독특하다. 유관순의 과거 회상 장면 정도만 컬러일 뿐 서대문 옥사에서의 이야기는 대부분 흑백으로 표현했다. 이로 인해 인물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감정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 또한, 널찍한 풍경이나 공간 등이 흑백으로 표현된다면 다소 답답할 수 있지만 옥사라는 한정된 공간이기에 그 특징이 더 두드러지며, 인물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유관순을 연기한 고아성의 연기는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유관순의 슬픔부터 불안한 심리, 당당함, 리더십까지, 내면부터 외면까지 유관순 자체가 됐다. 여기에 김새벽, 김예은, 정하담 등 주목받는 신예들의 활약도 눈부시다. 여옥사 8호실 사람들처럼 단단하게 하나가 돼 열연한다.

인기가수이자 할리우드에도 진출한 배우 ‘비’(정지훈)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은 ‘자전차왕 엄복동’은 일제강점기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전조선자전차대회 1위를 차지하며 동아시아 전역을 휩쓴 ‘동양 자전차왕’ 엄복동(1892~1951)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자전거 판매상인 일미상회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엄복동은 1913년 4월 경성일보사와 매일신보사가 인천, 용산, 평양 등에서 공동 주최한 전조선자전차경기대회에서 우승했다. 1923년에는 중국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며 조선을 넘어 동아시아를 휩쓴 ‘동양 자전차왕’으로 자리매김했다. 엄복동이 출전하는 자전차 대회를 관람하기 위해 당시 경성 인구 30만 명 중 10만여 명이 몰려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체계적인 지원이나 훈련이 없던 상황 속에서도 자전거로 61km를 출퇴근하며 15년간 우승기를 놓치지 않았던 전설적인 선수였다. 국권상실기의 암울한 시대에서 그의 우승은 민족적 일체감과 자긍심을 심어주며 ‘국민영웅’으로 칭송받았다. 

진은 동양의 자전거 황제라 불렸던 엄복동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대작 ‘자전차왕 엄복동’
동양의 자전거 황제라 불렸던 엄복동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대작 ‘자전차왕 엄복동’

작품은 이런 엄복동이 국민영웅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좇는다. 평택 물장수 엄복동(정지훈 분)은 남동생 귀동의 등록금으로 마련한 자전차를 잃어버린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경성으로 떠난 엄복동은 그곳에서 우연히 ‘전조선자전차대회’ 전단지를 발견한다. 오로지 우승 상금 1백 원을 얻고자 엄복동은 친구인 이홍대(이시언 분)와 일미상회 자전차 선수단에 가입한다.

피나는 연습을 거듭한 그는 처음 출전한 전조선자전차대회에서 일본 대표 선수들을 제치고 조선인 최초로 우승한다. 첫 우승을 발판 삼아 무패행진을 이어가던 그는 빼앗긴 땅에 희망의 싹을 틔운다. 아울러 자신을 향한 조선 민중의 지지 속에서 우승 그 이상의 사명감을 느낀다. 하지만 위기감을 느낀 일본이 엄복동의 우승을 막고 조선인들의 사기를 꺾기 위한 자전차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 역시 위기에 빠진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숨막히는 자전거 레이싱이다. 엄복동을 연기한 정지훈은 촬영 전부터 엄복동의 전매특허인 ‘엉덩이 들어올리기’ 기술을 선보이기 위해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자전거 특훈에 돌입했다. 촬영 기간 달린 거리는 무려 지구 반 바퀴에 달하는 2만km에 달한다는 후문. 이를 통해 엄복동 선수의 자전차를 그대로 재현한 자전거를 이용, 선수 못지않은 실력을 선보이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