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95] 태종우(太宗雨)
마음을 여는 고전의 향기 [95] 태종우(太宗雨)
  • 변 구 일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선임연구원
  • 승인 2019.04.12 13:18
  • 호수 6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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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우(太宗雨)

돌아가신 뒤에도 은택 흐르니

아아 선왕을 잊을 수 없도다

해마다 이날에는 비가 내리니

방울마다 성왕의 은덕이고말고

누렇게 시든 잎들 씻어 주고

말라 죽는 혼을 소생케 하네

새벽에 나가 들판을 바라보니

온 세상에 기쁜 기운 가득하구나  

 

沒世猶流澤 (몰세유유택)   

於戲不可諼 (오희불가훤)

年年是日雨 (연년시일우)

點點聖王恩 (점점성왕은)

淨洗芸黃色 (정세운황색)

昭蘇暍死魂 (소소갈사혼)

星言觀四野( 성언관사야)

喜氣滿乾坤 (희기만건곤)


음력 5월은 여름이 깊어가는 때다. 농촌에서 1년 중 가장 바쁘다는 망종(芒種)과도 얼추 시기가 겹치는 이때 농부들은 보리를 베고 모내기를 한다. 벼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이 시기에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다. 그래서 농부들에게 5월에 내리는 비는 생명과도 같다. 시에서는 5월 10일에 비가 내린 일을 기리고 있는데 정경세가 제목에서 말한 올해는 1614년(광해군6)이다.

1422년(세종4) 초여름부터 비가 내리지 않았다. 계속되는 가뭄에 국왕은 거의 모든 산천에 두루 기우제를 올렸는데도 효험이 없었다. 세종에게 양위하고 병석에 누워 있던 태종(太宗, 1367~1422 재위 1400∼1418)은 이를 깊이 근심하였다. 그래서 하늘에 올라가 상제(上帝)께 고하여 단비를 내리게 하겠다고까지 하였는데 5월 10일 결국 승하하셨다. 그리고 잠시 뒤 경기 일원에 큰비가 내려 그해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백성을 걱정하던 태종의 정성이 하늘을 정말로 감동시켜서였을까? 이후로 매년 5월 10일이 되면 으레 비가 내렸고 백성들은 이 비에 태종우라는 이름을 붙여 태종을 잊지 않았다.(중략)

박동량(朴東亮)의 『기재사초(寄齋史草)』,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이유원(李裕元)의 『임하필기(林下筆記)』 등에 수록되고 민간에서 설화처럼 전해 내려오던 태종의 고사가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확실치 않다. 『세종실록』에는 1422년 4월 7일에 경상도에 눈이 내리고 20일에는 거센 바람과 천둥번개에 우박까지 내렸다는 기록은 있어도 가뭄이 들어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은 없다. 게다가 그해 5월 10일에 비가 내렸다는 기록도 없다. 하지만 태종의 승하 이후 2백 년이 다 되도록 5월 10일에 비가 안 온 적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신령스러운 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어쩌면 5월에 비를 간절히 염원하였던 백성들이 5월 10일에 으레 내리던 비를 신성화하여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었을까?(하략)      

변구일 한국고전번역원 승정원일기번역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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