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 현대인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미술의 세계
서울미술관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 현대인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미술의 세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4.19 14:11
  • 호수 6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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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아침‧낮‧저녁‧새벽 등으로 구성… 게임‧포스터‧도서 등 100여점 

빛의 따스함 표현한 ‘빛이 드는 공간’, ‘시간의 풍경’ 등 눈길

이번 전시는 공간을 아침·점심·저녁·새벽으로 구성해 현대인의 하루를 조명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위 작품은 노연이의 작품 ‘타인들의 세상’.
이번 전시는 공간을 아침·점심·저녁·새벽으로 구성해 현대인의 하루를 조명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위 작품은 노연이의 작품 ‘타인들의 세상’.

‘안 봐도 사는데 지장 없는 전시’. 놀랍게도 이 도발적인 문구는 오는 9월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부암동 서울미술관 본관 M1에서 진행되는 전시 제목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더 가관이다. 책장에 꽂힌 책, 영화 포스터, 모바일 게임 등 미술과는 동떨어진 콘텐츠들이 전시장을 메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나서면 제목과는 전혀 다른 생각 하나가 머릿속에 자리잡는다. “미술은 삶을 보다 흥미진진하게 만든다”라는 단순한 생각이 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침, 낮, 저녁, 새벽 등 총 4부로 구성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대인의 일상’을 다룬 작품들을 소개한다. 회화‧사진‧조각‧영상‧설치‧게임‧포스터‧도서까지 다양한 장르의 작품 100여 점을 소개한다.

먼저 햇살이 새어 들어오는 방 풍경을 묘사한 황선태 작가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이형준 작가의 작품이 볼만하다. 

황선태 작가는 유리와 보드판으로 제작된 여러 층의 스크린 위에 드로잉과 LED 빛을 활용해 ‘빛이 드는 공간’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색과 면이 제거되고 선으로만 이루어진 공간 위에 빛이 어른거리는 방식으로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은은하게 들어오는 풍경을 담아냈다. 이를 통해 평범한 일상에 담긴 따스한 여운을 보여준다. 

이형준 작가는 매일 같은 시간의 지하철 공간을 겹쳐놓은 듯한 ‘시간의 풍경’을 통해 과거의 청춘들과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한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드롤(DRÖL)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그는 프랑스의 옛 모습을 간직한 도시 리옹의 특색 있는 문(門)을 촬영하고 이를 실제 크기로 출력했다. 이 사진들을 프랑스에서 가장 활력 있고 젊음이 넘치는 항구도시 르 아브르 곳곳에 설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일상에서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예술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현대인들의 쓸쓸함과 이들의 정서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노연이 작가는 혼밥과 혼술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의 문화와 감정을 그렸다. 그림 속 인물들은 저마다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들을 하나의 선으로 이어서 제각각 떨어져 있어도 사람들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또한 문제이 작가는 ‘Alone Buddy’(외로운 친구)로 ‘혼자’의 삶을 추구하면서도 혼자 있을 때 누군가를 그리워하거나 SNS를 하며 나름의 소통을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또 전시장 중간에는 모바일 게임이 전시돼 있다. 마운틴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안나푸르나 인터랙티브에서 발매한 ‘플로렌스’다. 전시장에 소개된 이 게임은 두 인물의 첫 만남부터 사랑의 설렘, 소소한 다툼, 이별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과정은 드래그와 터치 등 단순한 조작으로 구성해 관람객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또 책의 표지가 미술관에 전시됐을 때 ‘예술화’가 일어나는 현상, 영화 포스터에 ‘영화 홍보 문구’를 제거한 후 미술관에 설치했을 때 관람객이 마주하게 되는 ‘예술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들도 소개한다. ‘배달의민족’이 참여한 작품에서는 365장의 메모를 통해 일상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한다.

전시장의 미술 작품 설명도 눈여겨볼 만하다. 기존의 작가와 작품명 제시가 아니라 에세이 형식의 친근한 설명문으로 구성했다. 또 설명문 옆에는 전시 개막 전 300여 명의 관람객과 ‘프리 오프 시사회’를 진행해 이들의 생각을 인터넷 댓글처럼 붙여놓았다.

이번 전시는 단체의 경우 사전 예약 시 원하는 시간에 관람객 눈높이에 맞는 전시해설을 들을 수 있다. 아울러 월간 구독 서비스를 도입해 티켓을 구입한 달에는 횟수 제한 없이 언제든지 재관람이 가능하도록 했다. 

안진우 서울미술관 큐레이터는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예술이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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