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주려고 종일 지팡이 깎는 91세 어르신
남 주려고 종일 지팡이 깎는 91세 어르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5.03 10:48
  • 호수 6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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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충북 보은 서재원 옹, 2015년부터 매일 8시간씩 만들어 3000여개 기증

젊은 시절 목수로 일한 경험 활용… 서 옹 “누군가에 도움되고 싶어”

‘지팡이 선물하는 공무원’ 이상홍 씨, 전주 설재천 어르신도 매년 기증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불편한 동년배 노인들을 위해 지팡이를 깎는 노인들의 미담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보은군에 지팡이 1000를 기증한 서재원 옹(왼쪽)과 정상혁 보은군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불편한 동년배 노인들을 위해 지팡이를 깎는 노인들의 미담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보은군에 지팡이 1000를 기증한 서재원 옹(왼쪽)과 정상혁 보은군수.

지난 4월 27일 충북 보은군 산외면의 한 가정집 마당에선 요란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한 남자가 기다란 막대기를 쥐고 대패질을 하고 있었다. 다소 쌀쌀한 날씨였지만 그는 쉬지 않고 십 수개의 ‘지팡이’를 깎아 내려갔다. 한참이 지나 작업을 마무리 한 그는 만족한 듯 웃음을 짓는다. 그는 올해 91세의 서재원 어르신이다. 서재원 어르신은 “이렇게 하루 8시간 씩 20일 정도 만들면 지팡이 50개 가량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그가 1년 이상 만든 지팡이 1000개가 최근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새로운 다리가 됐다. 

서 옹처럼 손재주를 발휘해 지팡이를 만든 후 노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는 어르신들의 미담이 주목받고 있다. 젊은 사람들도 하기 어려운 일을 고령의 나이에 해내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것.

먼저 서 어르신은 지난달 24일 보은군청을 방문해 자신이 직접 깎아 만든 장수 지팡이 1000개를 기탁했다. 이날 전달한 지팡이는 그가 지난해 6월부터 은행나무, 괴목나무 등 가볍고 튼튼한 나무를 선별해 밤낮 가리지 않고 열성을 다해 만든 것이다.

서 어르신이 지팡이를 만들기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젊은 시절 목수 일을 했던 그는 책상과 장롱 등 가구를 직접 만들어 판매할 정도로 나무를 잘 다뤘다. 한 번 눈으로 본 물건은 밑그림을 대강 그려놓고 제작할 정도. 이런 실력 덕분인지 지팡이 제작 기술도 따로 배우지 않았고 제재소를 돌며 눈에 띄는 나무가 있으면 틈틈이 구해뒀다가 시장에서 파는 지팡이를 모방해 만들었다.

구순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 옹은 재료를 절단하는 무거운 전기톱과 공정에 사용되는 그라인더·대패 등 30여 개 공구를 직접 다룬다. 원목을 15㎝ 두께 송판으로 잘라낸 뒤 수십번의 대패질을 거쳐 지팡이대를 다듬고 나무망치와 끌을 이용해 지팡이 손잡이를 만든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처음 지팡이를 만들 때 가지가 구부러진 나무를 통째로 사용했는데 손잡이 부분이 자주 부러졌던 것이다. 이에 서 어르신은 손잡이와 지팡이대를 성질이 다른 나무로 쓰고 스테인레스 파이프를 끼어 철심으로 박는 방식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이렇게 완성돼 지금까지 서 어르신의 품을 떠난 3000개의 지팡이 중 부러진 것은 단 한 개도 없다고 한다.

서 어르신은 “귀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늙었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지팡이를 만들고 있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지팡이를 계속 만들어 봉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팡이 선물하는 공무원’으로 알려졌던 이상홍(61) 씨 역시 은퇴 후에도 꾸준히 지팡이를 제작해 기증하고 있다. 지난겨울에는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회장 김광홍)에 명아주지팡이 500개를 전달해 눈길을 끌었다. 

이 씨가 명아주지팡이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주덕읍사무소에서 근무하던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부가 100세가 되는 노인에게 장수 축하 선물로 명아주지팡이를 선물로 준다는 말을 들은 그는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선물해보자 하는 결심을 한다. 퇴근 후 자투리 시간을 쪼개거나 업무가 일찍 끝나면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지팡이를 만들어 지역노인회와 경로당 등에 전달했다. 

이후 선행이 알려지자 충주시에서는 재료비를 지원하고, 몇 년 전부터는 지역일자리 사업으로 선정해 4~5명의 일손도 지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18년 동안 그가 만들어 기증한 명아주지팡이는 줄잡아 3만 개가 넘는다. 

2017년 퇴직한 이 씨는 충주시 주덕읍 하천변 6600㎡의 휴경지에서 명아주를 재배해 한해 약 4000여개의 지팡이를 생산하고 있다. 1년생 풀의 일종인 명아주의 단단한 줄기로 만드는 명아주지팡이는 가볍고 단단해 최고품으로 평가 받는다. 예로부터 ‘청려장(靑藜杖)’이라 해서 장수한 노인에게 왕이 직접 하사했으며, 도산서원에는 퇴계 이황선생이 사용하던 것이 보존돼있다. 본초강목에는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고, 민간에선 신경통에 좋아 귀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는 이런 명아주 지팡이를 매년 4000여개를 제작해 3000개는 기부하고, 나머지 1000개는 재료비(개당 1만원)만 받고 타 지역에 판매하고 있다. 

이 씨는 “지팡이를 받고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광홍 대한노인회 충북연합회장은 “이 씨의 정성이 담긴 지팡이가 충북 노인들의 든든한 발이 돼주고 있다”고 화답했다. 19년간 활동하며 9000개 이상 지팡이를 기증한 전북 전주시 ‘지팡이 전도사’ 설재천(80) 어르신의 사연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1998년 명예 퇴직한 그는 우연히 한 할머니가 노점상을 하면서 평생 모은 돈 4억여원을 전북대에 기탁했다는 기사를 보게 된다. 이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자고 결심한 그는 한 복지시설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복지시설에 머무른 그는 문득 ‘지팡이가 있으면 노인들이 더 편하게 걸을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곧장 산으로 달려간 그는 적당한 감태나무를 주워 지팡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깨끗하게 씻은 나무를 다듬고 니스칠을 해 동네에서 만난 노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는 매일 아침 7시면 산에 올라 지팡이 재료로 쓸 나무를 모았다. 노인들이 편하게 잡을 수 있도록 한쪽이 구부러지고 튼튼한 나무만 골라 배낭에 담았다. 4시간 넘는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바로 나무껍질을 벗기고 사포질을 한다. 중간에 튀어나온 잔가지들은 가위로 모두 잘라냈다. 나무와 1시간 넘는 씨름 끝에 니스칠까지 마치면 노인들의 발이 되어 줄 새로운 지팡이가 탄생한다.

그는 “매일 산에 오르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다”면서 “어르신들이 내가 만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걸 볼 때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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