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콩코드의 오류’
[백세시대 / 세상읽기] ‘콩코드의 오류’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5.10 14:06
  • 호수 6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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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지인은 문재인 정부가 출발하는 시점에 여유자금으로 주식을 샀다. 비록 촛불시위의 어부지리로 운 좋게 태어난 정권이라지만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청와대의 슬로건을 믿고 과감하게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금 5000만원으로 블루칩(우량주) ‘카카오’와 ‘SK하이닉스’를 샀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주식계좌의 잔고는 4000만원이 못된다. 2년의 시간이 흘렀건만 오르기는커녕 피 같은 원금을 날린 셈이다. 

주식은 실물경제의 미래지표이다. 지인의 마이너스 계좌는 우리나라의 현 경제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경제가 속으로 골병 들고 있다. 투자, 생산, 수출, 소비, 고용 등 주요 경제지표가 모두 빨간불이다. 시장경제가 이를 증명한다. 문 정부 집권 첫해 개인·법인 사업자 90만명이 폐업을 신고했다. 도소매업 24만명, 음식숙박업이 19만명에 육박했다. 2018년 실질경제성장률 2.7%, 6년 만에 최저였다. 2019년 1분기는 -0.3%, 설비투자 -10%대를 기록했으니 폐업행렬이 강을 이뤘을 것이다.

기업체 사장들은 죽을 맛이다. 임금체불이나 주 52시간 노동제를 어기면 곧장 구속이다. 안산공단 시흥공단에 기계매물이 급매로 나와도 팔리지 않는다. 감옥 가려고 공장 돌리는 것이 아닌데 박근혜 정부보다도 나을 게 하나도 없다.

미래도 밝지가 않다. 아시아 최대 투자은행인 노무라 증권은 한국의 성장률을 기존 2.4%에서 1.8%로 낮춰 잡고 LG경제연구원은 2.5%에서 2.3%로 하향조정했다. 올해 2.6%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정부 전망치를 크게 밑도는 수치들이다.

정부는 올해 470조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해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추경은 경제성장률을 0.1% 끌어올리는 효과에 그친다. 경기침체 구조를 바꾸는 데는 역부족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주요 은행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 2·3·4분기 성장률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올해 성장률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청와대는 이 같은 경제 상황을 주로 외부 경제 여건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수출로 먹고 사는 만큼 미중 무역 전쟁과 글로벌 경기 둔화의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성장률이 마이너스까지 돌아선 국가는 없다. 미국은 지난 1분기 오히려 연율 3.2%의 강한 성장세를 나타났다. 미 기업 상당수는 실적이 호전돼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더구나 남유럽 재정위기와 3년에 걸쳐 심각한 세수 결손을 겪던 박근혜 정부 때도 마이너스 성장은 없었다. 

최근 경제 악화는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한발작도 물러날 기미가 안보인다. 경제용어 중에 ‘매몰비용’이란 말이 있다. 매몰비용은 이미 투입하고 파묻힌 탓에 회수하기 어려운 비용이다. 들어간 비용이 아까워 본전 생각에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예가 ‘콩코드의 오류’다. 콩코드는 영국과 프랑스가 공동 개발한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객기이다. 안전성, 경제성 모두 부족했지만 두 나라는 막대한 재정을 쏟아 부으며 지원을 이어갔다. 정부의 자존심과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2000년 폭발사고로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뒤 2003년에야 운항을 중단했다. 잘못된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정당화해 밀고나간 탓에 두 나라의 체면은 구겨졌고 재정적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소득주도성장에 매달려 있는 문재인 정권도 콩코드의 오류에 빠진 것은 아닐까. 문 정부에서 주식 대박을 꿈꾸었던 지인은 “그때 주식에 투자할까, 평택의 미군 상대 오피스텔을 대출 끼고 사둘까 고민했었다. 후자를 택했더라면 2년간 기회비용을 날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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