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뮤지엄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 전…만화·회화 융합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 그려
롯데뮤지엄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 전…만화·회화 융합해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 그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5.17 14:42
  • 호수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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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로 유명… 드로잉‧조각 등 500여점 선봬

지옥 묘사 ‘인페르노-레드 파이어’, 대작 ‘디센던츠-블루 우드’ 등 눈길

세계적인 그래픽노블 회사 DC코믹스 출신인 제임스 진은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을 오가며 만화와 회화가 결합된 독특한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 ‘아우렐리안즈’(2016).
세계적인 그래픽노블 회사 DC코믹스 출신인 제임스 진은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을 오가며 만화와 회화가 결합된 독특한 작품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그의 대표작 ‘아우렐리안즈’(2016).

지난해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셰이프 오브 워터’.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와 신비한 능력을 가진 괴생명체의 기괴한 사랑을 그린 작품은 영화 포스터부터 남달랐다. 청소부와 괴생명체가 물속에서 포옹하는 장면을 그린 제임스 진(40)의 포스터를 들여다보면 절로 머릿속에 신비한 이미지가 그려진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나면 이 포스터가 다시 떠오를 만큼 2시간 분량의 이야기를 한 장의 그림에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상업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제임스 진(40)의 전시가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LMoA)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9월 1일까지 진행되는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 전에서는 150여 점의 만화책 표지 작품과 200점 이상의 드로잉 그리고 조각, 영상, 초대형 회화를 포함한 신작까지 총 500여 점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제임스 진은 20대 초반부터 배트맨, 원더우먼 등으로 유명한 미국의 대표적인 그래픽노블(만화와 소설의 중간형식을 취하는 작품) 회사 DC코믹스에서 8년간 표지 아티스트로 일했다. 이후 순수미술로 전향한 그는 2008년부터 어린 시절부터 좋아한 공상과학소설과 일본 애니메이션, 미국의 그래픽 노블 등이 반영된 작품을 선보이며 호평 받는다. 미국 뉴욕 조나단 레빈 갤러리, 일본 도쿄의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열어 만화와 회화가 뒤섞인 표현방식과 한편의 대서사시와 같은 신비로운 화면을 창조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임스 진은 이번 전시에서 ‘붉은색, 푸른색, 검은색, 흰색과 노란색’을 주제로 삼아 그의 신비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꼼꼼하고 탄탄한 ‘밑작업’에서 시작된다. 그는 완벽하게 스케치를 그린 뒤 본 작업에 들어간다. 이번 전시에 함께 나온 드로잉들은 그가 얼마나 기초를 잘 닦았는지 보여준다. 실제 동물이든, 상상속의 동물이든 상관없이 세밀하게 묘사한다. 제임스 진은 대학시절부터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수시로 들러 오귀스트 로뎅, 에드가 드가, 프란시스코 고야 등의 작품을 보며 인체 드로잉을 연습했다고 한다.

이런 진면목은 활활 타오르는 지옥을 묘사한 ‘인페르노-레드 파이어’(2018)와 붉은 새들이 화면 중심에 가득 차 있는 꿈의 세계 ‘에이비어리-레드 파이어’(2019)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붉은색’ 섹션에 전시돼 있다.

특히 ‘인페르노-레드 파이어’서 제임스 진은 뜨거운 불길로 형벌을 받는 지옥을 매우 독특하게 표현했다.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푸른색의 거대한 나뭇가지를 중심으로 불길을 피우고 있는 어린 악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임스 진이 그린 박서준 주연의 영화 ‘사자’의 포스터(위)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포스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포스터.

푸른색의 나뭇가지 주변과는 대조적으로, 붉은 선만으로 표현된 불길과 어린아이들의 모습은 다른 지옥도와는 다르게 유쾌하고 평화롭다. 푸른색과 붉은색, 나무와 불길, 어린아이들과 악마라는 상반되는 요소들을 화면에 조합해 생명과 죽음, 행복과 고통이 혼합된 혼돈의 세계를 보여준 것이다.

‘푸른색’ 섹션에서는 세 점의 대형 작품을 눈여겨 볼 만하다. 입구에 놓인 대형 회화 ‘디센던츠-블루 우드’(2018)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하늘 세계를 보여준다. ‘추락’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과 달리 어린아이들이 국화, 모란, 연꽃 등 구름처럼 만개한 꽃들 사이를 노닐 듯 떠다니고 있다. 이에 대해 제임스 진은 “전시를 제안받고 롯데월드타워를 방문했을 때 건물이 너무 높아서 어릴 적 읽은 ‘잭과 콩나무’ 동화가 생각났고 여기서 착안해 구름 위를 떠다니는 소년의 이미지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화려한 색채를 사용해 바다 위의 거대한 배의 모습을 보여주는 ‘패시지-블루 우드’(2018)와 수많은 말의 무리가 동쪽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스탬피드-블루 우드’(2018)도 볼만하다.

그의 작품에는 유독 거대한 파도와 물결이 자주 등장한다. ‘검은색’ 섹션의 소용돌이치는 바다인 ‘월풀-블랙 워터’(2018)와 흑발의 님프들이 멱을 감고 있는 ‘베이더즈-블랙 워터’ (2018)가 대표적이다. 제임스 진에게서 물결은 인생의 거대한 에너지이면서도 작품을 그릴 때마다 느끼는 불가항력의 에너지다. 그는 빠져 나가려고 하면 할수록 더 빨려 들어가는 소용돌이와 같이, 통제할 수 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미지의 에너지를 거대한 물결로 시각화했다. 

마지막 ‘흰색과 노란색’ 섹션에서는 검은색과 대조적으로 흰색으로 표현된 어린 호랑이를 지키는 어미 호랑이의 모습을 담은 ‘타이거-화이트 메탈’(2019)을 볼 수 있다. 작가는 미국과 멕시코의 정치적 문제로 국경 지역에서 지주자와 그 자녀들을 분리한다는 뉴스를 듣고 이 작품을 제작했다. ‘가이아-옐로우 어스’(2019)에서는 만물의 어머니이자 땅의 여신인 가이아와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같이 등장한다. 작가는 빛과 예술이 조화된 스테인드글라스 방식으로 성스러운 자연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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