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각자도생이 가져다준 비극
[백세시대 / 세상읽기] 각자도생이 가져다준 비극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7.05 15:17
  • 호수 67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앞의 이득에 급급해 원천기술 개발 안해

일본의 치졸한 경제보복으로 나라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7월 1일,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대항조치를 발표했다. 일본이 이번에 보복조치로 수출 규제대상에 올려놓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 리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 등 세 품목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다. 일본은 한국을 수출허가 면제국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수출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들 소재는 일본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70~90%에 이르러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면 국내 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 일본은 몇 달 전부터 어떤 제재가 한국에 큰 타격을 줄 것인가를 조사·연구해 리스트를 만들었고 이 품목들을 일차로 선정했다고 한다. 일본의 단계적 보복품목들이 최소 100개가 준비돼 있다는 정보도 있다. 

일본의 경제보복을 접한 순간 ‘도대체 우리 기업들은 무엇을 했느냐’였다. 반도체 강국으로 알려진 한국이 겨우 일본의 몇 개 품목 때문에 경제 전반이 절단날 것처럼 엄살을 떠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원천기술의 현주소는 비참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산업 전체로 보면 원천기술이나 핵심소재 국산화는 요원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화학과 금속, 세라믹 등 ‘200대 소재·부품기술 분야’에서 미국은 211개, 일본은 102개, EU는 68개의 최고 기술을 보유한 반면 우리나라는 단 1개도 보유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311개 소재부품분야로 범위를 확대해도 격차는 줄어들지 않는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일본의 무역의존도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 적이 있다. 당시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 적자가 역대 사상 최고치인 59억 달러를 기록하자 이를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무역역조 개선을 위해 업종별 민간발전위원회를 발족시키고 일본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부품과 소재에 대한 국산화 전략을 추진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적자폭이 줄지 않자 10년 뒤인 2001년에는 부품·소재 특별조치법을 만들어 부품·소재 전문기업 육성에도 나섰다. 그러나 대일본 무역의존도는 2010년 361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처음 소재 국산화 전략을 시작했던 1990년에 비해 6배 이상 늘어났다. 

일본의 중간재를 수입해 완성품을 만들어 파는 게 한국의 독특한 경쟁력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돈과 시간을 들여 원천기술을 확보하려고 나서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이와 관련해 “반도체 생산 기술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을 때 일본은 새 공정을 개발할 때마다 자국 기업과 소재도 함께 개발했다”며 “이후 반도체 생산기술 주도권이 한국으로 넘어오자 한국은 서둘러 대량생산을 하다 보니 소재나 장비를 함께 육성하기보다 일본에서 수입하는 쪽으로 방법을 찾았다”고 분석했다.

두 번째 요인은 기업 간의 협업 부족과 정부의 분산투자정책이다. 한국은 기업이 협력해 기술을 높이기보단 수출 증대에 따른 이익에 취해 각자도생에 나섰으며 정부도 한정된 예산을 정보기술, 나노기술, 바이오기술, 인공지능 등 신산업에만 투자하면서 어떤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실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삼성에서 자동차용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어도 현대차에서 써 주지 않는 게 국내 산업계 현실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원천기술을 많이 보유한 나라들이 자국 이익에 따라 보유한 기술력을 언제든지 경제보복의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기업들은 단기 성과주의에서 벗어나 장기계획을 세워 연구개발로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단기적으로는 수입선 다변화로 협상력을 높여 대응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운 셈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