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남구 효성 백년가약경로당, 8년간 폐지모아 만든 기금 아동복지 위해 쾌척
대구 남구 효성 백년가약경로당, 8년간 폐지모아 만든 기금 아동복지 위해 쾌척
  • 김순근 기자
  • 승인 2019.07.19 14:24
  • 호수 6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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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득 회장 앞장에 회원들 동참… 폐지 100여톤 값 1000만원 기부

“운영비에 쓰기보다 불우아동 돕기 먼저”… 폐지 이어 폐건전지도 모아

백년가약경로당 어르신들이 대구남구청을 방문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탁한 1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영자 총무, 최해웅 부회장, 조재구 남구청장, 박이득 회장, 유인병 부회장, 박영자 부회장.
백년가약경로당 어르신들이 대구남구청을 방문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지정기탁한 1000만원을 전달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영자 총무, 최해웅 부회장, 조재구 남구청장, 박이득 회장, 유인병 부회장, 박영자 부회장.

경로당 어르신들이 8년간 힘들게 폐지를 주워 모은 1000만원 전액을 불우 아동들을 위해 써 달라며 기부해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7월 2일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대한노인회 대구남구지회(지회장 임소남) 효성 백년가약경로당 박이득 회장(84) 등 회장단 5명이 방문해 1000만원을 기부했다. 공동모금회에서는 어려운 어린이들을 위해 사용해달라는 뜻에 따라 대구 남구청을 거쳐 대구아동복지센터와 아동양육시설인 호동원에 각 500만원씩 전달했다.

“20여년전 지역 마을금고협의회장직을 맡고 있을 때 직원들과 고아원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우유하고 빵을 갖고 갔는데 3~4세 아이들이 어찌나 반기면서 품에 안기는지, 지금도 눈에 선해요.”

기부금을 전달한 박이득 회장은 ‘폐지 선행’의 발단이 된 이야기를 하면서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은 의젓한 청년이 됐을 박이득 회장의 20여년 전 코흘리개들에 대한 기억이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1000만원의 선물을 안겨준 셈이다. 

2012년 백년가약 경로당이 문을 열면서 초대 회장을 맡게 된 박이득 회장은 회원들에게 폐지 모으기를 제안했다. 집안의 신문지나 헌책 등을 모아 폐지로 팔아 커피값이라도 벌자는 취지였다.

회원들도 흔쾌히 찬성해 각자 경로당으로 올 때 신문지나 헌책 등 폐지들을 가져왔다. 

그런데 어렵게 폐지를 모아 번 돈을 막상 커피값에 사용하려고 하니 뭔가 어른답지 못했다.  회원들과 상의 끝에 돈을 계속 모아 뜻깊은 일에 사용하기로 했다.

커피값에서 ‘뜻깊은 일’로 목표가 커지니 집에서 가져오는 폐지로는 목표달성이 어림없었다. 1~2개월 모아야 몇만원 수준이어서 정말 커피값 밖에 안됐다. 그래서 아파트 밖 폐지로 눈을 돌렸다. 이 일에는 폐지 묶는 일을 함께 돕던 유인병 어르신(86)과 작년에 85세를 일기로 작고한 서종호 어르신 등 2명의 남성회원이 적극 나섰다. 

참전용사 출신 유인병 어르신은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불편한 몸에도 시장 등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폐지를 모았고, 서종호 어르신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폐지 수거에 열성적이었다. 

박 회장은 자동차와 자전거로 기동력을 발휘해 시내로 진출했다. 식당, 부동산 사무소, 문방구, 카센터 등 부탁한 곳에서 모아둔 폐지를 가져가라는 전화가 오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 수거했다. 그래서 이들에겐 ‘폐지삼총사’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삼총사’ 덕에 폐지의 양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경로당 공간이 비좁자 관리사무소에 취지를 설명하고 아파트 지하 공간을 창고로 사용했다. 

그런데 폐지 더미를 노끈으로 묶는 게 보통 고된 일이 아니었다. 팔과 어깨, 허리가 안아픈 날이 없었고 어느 순간 손가락 지문이 사라질 정도였다. 

모아둔 폐지를 판매할 때면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트럭을 빌렸고 폐지더미를 옮기고 싣는 일은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도움을 줬다. 이렇게 1~2개월씩 모으면 10만~15만원의 수입이 나왔다. 수입금은 서영자 총무(80)에게 맡겨둔 통장에 꼬박꼬박 입금하고 월 단위로 회원들에게 보고를 했다. 이렇게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6월 학수고대하던 1000만원을 채우던 날, 박이득 회장은 20여년 전 자신의 품안으로 파고들던 아이들 얘기를 꺼내며 회원들에게 기부처에 대한 의견을 타진했다.

“투표권이 있는 노인들에게는 여기저기서 관심을 갖지만 정작 투표권 없는 아이들은 관심을 두지 않아요. 우리가 폐지모은 돈으로도 하는데, 이제 나라에서 불우한 아이들의 복지에도 신경써야한다고 등 떠밀어야 합니다”

이미 8년간 동고동락을 한 가족같은 회원들이라 평소 박 회장의 이같은 생각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박회장은 “경로당 복지에 일부라도 사용하자고 할만한데 두말없이 기부에 찬성해준 회원들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함께 고생하며 폐지를 수집하고 손에 피가 날 정도로 폐지를 묶던 고 서종호 회원이 기부하는 날에 함께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   

임소남 대구남구지회장은 “존경받는 노인상을 말해주는 정말 뜻깊은 일을 했다”며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경로당을 운영함으로써 경로당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노인회의 위상도 드높인 좋은 모범사례라 할수 있다”고 말했다.

8년 동안 100여톤이 넘는 엄청난 폐지를 모은 백년가약경로당 회원들은 3년전부터 새롭게 ‘모으기’를 하고 있다. 폐건전지를 모아 1년에 한번 동사무소에서 새건전지로 교환한다. 이렇게 환경도 보호하며 38명의 회원(부부포함 24가족)들은 1년에 2만원 상당의 새건전지를 선물로 받는다.

8년을 하루같이 폐지를 모아 이제 ‘모으기’가 일상이 됐다는 백년가약경로당 어르신들. “몸이 허락하는한 모으기를 계속하겠다”며 지금도 폐지와 폐건전지 모으기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김순근 기자 skkim@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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