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월곡복지관 남성어르신 요리대회 “남자 노인도 요리 잘할 수 있어요”
서울 월곡복지관 남성어르신 요리대회 “남자 노인도 요리 잘할 수 있어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7.26 12:54
  • 호수 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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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평생 주방과 담 쌓은 어르신들 닭볶음탕 등에 도전

4개월 쌓은 실력 경연… 실수 연발 속 훈훈한 마무리

남성 어르신 요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서울 성북구 월곡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남성어르신 요리대회는 서툴지만 열정 가득한 요리들이 탄생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사진은 요리대회에 참여한 어르신이 조리에 열중하는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남성 어르신 요리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가운데 서울 성북구 월곡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남성어르신 요리대회는 서툴지만 열정 가득한 요리들이 탄생하며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사진은 요리대회에 참여한 어르신이 조리에 열중하는 모습. 사진=조준우 기자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

지난 7월 18일 서울 성북구 월곡종합사회복지관 3층 강당에서 열린 ‘생명숲100세힐링센터 식식(食食)한 밥상요리대회’에 참가한 박 충 어르신이 요리 도중 한숨을 내쉬었다. 평생 요리와 담을 쌓고 지내다 지난 3월부터 4개월간 배운 솜씨를 많은 사람 앞에서 뽐내려다보니 자신감이 떨어진 것이다. 긴장 때문에 실수도 연발했다. 이때 신미애 힐링센터 팀장이 “끓이면 맛있어질 거예요”라며 박 어르신을 격려했다. 응원을 받은 그는 다시 요리에 집중했고 그결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박 어르신은 “남자 노인도 얼마든지 요리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대회였다”고 말했다.

경로당과 복지관을 중심으로 남성어르신 요리교실이 활발히 운영되는 가운데 성북구 월곡종합사회복지관(이하 월곡복지관)이 남성어르신 요리대회를 열어 큰 화제를 모았다. 2017년부터 저소득 남성어르신의 자립력을 높이기 위해 요리교실을 운영한 월곡복지관은 동기 부여 차원에서 상반기와 하반기 각 한차례씩 요리대회를 열었다.

올해에도 월곡복지관은 남성어르신 18명을 선발해 3월부터 7월까지 상반기 요리교실을 운영했다. 17주간 진행된 수업에서 전문 요리강사를 통해 40여 가지의 요리를 배운 어르신들 대부분이 부엌칼을 처음 쥐었을 정도로 짧게는 65년, 길게는 85년간 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첫 수업 때는 제대로 수업조차 따라가지 못했던 어르신들은 서서히 요리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대회에 참여할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이번 대회에 참석한 16명의 어르신들은 제육볶음, 닭볶음탕, 순두부찌개 중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 요리를 진행했다. 규칙 역시 간단하다. 30분 내에 지정된 요리를 완성하면 되는데 일반 요리대회처럼 심사위원들이 대회장을 돌아다니면서 청결도 등을 꼼꼼히 체크했다. 또 싱크대가 없는 강당 특성을 고려해 기본적인 식재료 세척은 사전에 복지관에서 진행했고 마늘 등 요리에 들어갈 기본양념 역시 어르신들의 서툰 실력을 감안해 미리 계량해 한쪽에 마련해뒀다. 

또 레시피를 간소화한 도움말도 옆에 비치해 어르신들이 중간 중간 참고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르신들이 준비된 재료로 곧장 요리를 만드는 건 아니다. 야채와 정육은 직접 칼로 썰어서 손질하는 등 나머지 모든 과정은 혼자서 진행해야 했다. 다만 원활한 진행을 위해 실습을 나온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이 어르신들의 보조요리사로 나섰다.     

본 대회에 앞서 이병준 관장은 “끝까지 다치는 사람 없이 대회가 치러져 어르신들이 지난 4개월간 땀 흘리며 배운 요리 솜씨를 마음껏 뽐내시기를 바란다”며 축하의 인사를 전했다.

난생 처음 요리사복을 입고 모자를 쓴 어르신들의 얼굴은 다소 긴장돼 있었지만 “지금부터 요리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사회자의 선언과 함께 표정이 돌변했다. 수십 년의 요리 경력을 가진 요리사처럼 얼굴에는 비장한 각오도 엿보였다.

하지만 요리가 진행되면서 다시 분위기는 반전됐다. 시간은 충분했지만 마음이 급해진 어르신들이 잇달아 실수를 범한 것이다. 물을 지나치게 많이 넣어서 덜어내는 어르신들이 있는가 하면 재료를 넣는 순서가 틀려서 당황함을 내비치는 어르신들도 속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보조로 나선 사회복지사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평정심을 되찾았고 주어진 요리 시간의 절반이 지나자 대회장 안은 맛있는 음식 냄새로 가득 찼다. 다소 서툰 실력이었지만 진지하게 요리에 임한 어르신들의 진가가 발휘된 것이다.

제육볶음을 조리해 우수상(3등상)을 수상한 서장원 어르신은 “시작 전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요리를 하니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면서 “다행히 연습한 대로 몸이 움직이고 사회복지사들의 도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긴장감 넘쳤던 요리대회 결과 대상은 닭볶음탕을 조리한 박창희 어르신에게 돌아갔다. 짧은 경력이지만 수십년 경력의 주부 못지않은 맛을 냈고 끝까지 청결함을 유지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밖에 우수상은 서장원, 장현문 어르신이 차지했다.

박창희 어르신은 “집에서 연습을 좀 했더니 상을 탄 것 같다”며 “평소에 복지관에서 배운 요리덕분에 한끼라도 해먹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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