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랏말싸미’,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다는 상상
영화 ‘나랏말싸미’, 신미 스님이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다는 상상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7.26 13:50
  • 호수 68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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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기자]      

산스크리트어·티베트어·파스파어 토대로 한글 만드는 과정 압권

유교‧불교적 신념의 충돌, 소헌왕후의 적극적인 중재 등 흥미 유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개봉한 이번 작품은 신미 스님이 한글 창자에 큰 역할을 했다는 가설에 상상력을 더해 탄생했다. 사진은 극중 신미 스님과 세종대왕이 대립하는 모습.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개봉한 이번 작품은 신미 스님이 한글 창자에 큰 역할을 했다는 가설에 상상력을 더해 탄생했다. 사진은 극중 신미 스님과 세종대왕이 대립하는 모습.

지난 7월 15일 대법원 3부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 소장자인 배익기(56) 씨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청구이의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배 씨는 법원에 판단에 따라 상주본을 문화재청에 반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어디에 숨겨뒀는지 함구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는 ‘상주본’과 훈민정음 탄생의 밑거름이 된 영화의 언론배급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나랏말싸미’ 이야기다

7월 24일 개봉한 ‘나랏말싸미’는 세종이 죽기 전 신미 스님에게 ‘우국이세 혜각존자’(나라를 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한, 지혜를 깨우쳐 반열에 오른 분, 祐國利世 慧覺尊者)란 법호를 내렸다는 설과 김만중의 ‘서포만필’에 등장하는 훈민정음과 산스크리트어와의 관계 등의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탄생한 작품이다.  

훈민정음은 전 세계에서 1억명 가까이 사용하는 언어 중에 유일하게 설명서(해례본)가 존재할 정도로 탄생시기가 확실히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학자들 사이에서는 세종이 단독으로 만든 것인지, 집현전 학자들과 연구 끝에 탄생한 것인지, 아니면 제3의 조력자가 있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간 이런 역사의 빈 공간을 상상력으로 채운 소설, 영화, 드라마도 꾸준히 등장했다. 2011년 SBS에서 방영된 ‘뿌리 깊은 나무’ 역시 송중기(젊은 세종)와 한석규가 세종대왕으로 등장해 한글 반포 7일 전 벌어진 이야기를 흥미롭게 그려 호평 받았다.

이번 작품은 기존 작품들과 달리 ‘신미 스님’(박해일 분)을 내세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을 창제했다는 기존 학설 대신에 신미와 승려들이 한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성했다는 가설을 풀어냈다. 

세종(송강호 분)은 권력을 차지한 자들이 정보를 독점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기며 모든 백성이 이를 공유하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계획한 일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쉬운 문자의 창제다. 

큰 진전 없이 시간이 흐르던 중, 세종대왕은 왜국의 팔만대장경 문제를 해결한 승려 신미가 쓰던 산스크리트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산스크리트 문자는 소리글자라 배우는 것이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유교의 기반 위에 세워진 조선은 초기에 불교를 배척했다. 하지만 세종은 이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두 아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에게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게 하고, 신미와 그의 제자들을 몰래 궁으로 불러 비밀스럽게 문자 창제에 나선다. 

이번 작품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신하들의 암투나, 모략을 최대한 덜어내고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만 집중한다. 영화 중반까지 한글 창제 과정에서 신미 스님의 불교사상과 세종대왕의 유교 중심적인 신념의 충돌, 그 사이를 중재하는 소헌왕후의 리더쉽은 긴장감을 준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상상력으로 풀어낸 한글 창제 과정이다. 산스크리트어·티베트어·파스파 문자를 놓고 씨름하던 화면이 서서히 명확한 점과 획으로 나누어지는 과정은 절로 감탄을 자아낸다. 발성 기관의 모양을 따 어금니 소리 ‘ㄱ’, 혓소리 ‘ㄴ’, 입술소리 ‘ㅁ’, 잇소리 ‘ㅅ’, 목소리 ‘ㅇ’으로 기본자를 만들고, 여기에 획을 하나씩 더해 된소리를 만들어 내는 과정 역시 놀랍다. ‘ㄱㅁㄷ’(고맙다) ‘ㅋㅋㅋ’(큭큭큭)처럼 궁녀와 승려가 마당에 초성 글자를 새기며 대화하는 대목은 흥미 만점이다.

배우들의 호연 역시 돋보인다. 송강호는 주변인들에게는 허허실실 너그러워 보이나 한 발 너머를 볼 수 있는 조선 최고의 천재이자 성군인 세종대왕의 말년을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왕권 강화를 견제하는 신하들의 압박에 시달리고, 평생을 괴롭힌 질병에 고통받는 세종의 좌절과 고뇌를 입체적으로 담아냈다. 

박해일 또한 ‘꼴통’으로 통하는 신미 스님을 특유의 반항기 어린 눈빛으로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산스크리트어라는 희귀어를 완벽 소화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전미선의 열연도 눈부시다. 소헌왕후의 캐릭터는 기존 사극 속 수동적이기만 했던 왕후의 캐릭터들과 다르다. “여자도 글을 알아야 한다”면서 먼저 나서서 궁녀들에게 ‘언문’을 가르치고,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길을 가는 세종대왕에게 화가 나 궁을 떠나는 등 주도적인 여성으로 풀어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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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19-07-26 17:56:41
한글창제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의 연구결과라는게 정설. 한국은 역사적 기자조선(고려.조선시대에는 기자조선 인정)을 거쳐, 지금도 정사인 위만조선.한사군 이후 수천년 유교나라임

http://blog.daum.net/macmaca/26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