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생활의 재발견’ 신설동에 서울풍물시장
‘오래된 생활의 재발견’ 신설동에 서울풍물시장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8.07.19 0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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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황학동, 청계천, 동묘일대에는 속칭 ‘도깨비 시장’이라는 이름의 한국형 벼룩시장이 있었다. 지금은 청계천 정비사업으로 그 수가 격감했지만 한때는 ‘탱크 빼고는 다 만든다’고 할 만큼 없는 것이 없었던 만물시장이었다. 동대문벼룩시장을 거쳐서 지난 4월 서울 신설동에 자리를 잡은 서울풍물시장(seoul folk flea market)을 둘러봤다. 새로 자리잡은 시장에는 세월 속에 잊혀진 지난 시절의 물건들이 즐비하다. 시골에서 쓰던 놋요강부터, 물레, 근대화시기의 생활물품까지. 작은 ‘생활사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서울풍물시장을 둘러보며 세월의 흐름 속에 잊혀진 옛 것들에 대해 추억을 반추해 보는 것은 어떨까.


벼룩시장은 본래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야시장(野市場)으로, 오래된 물건이나 중고용품을 직접 사고파는 장소를 지칭했다. 벼룩시장을 영어로는 플리 마켓(Flea Market)이라고 한다.

 

‘벼룩시장’이 유럽인의 근검절약정신의 상징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중고라도 손을 봐서 쓰면 새 것과 다름없다는 이들의 검소한 생활 자세는 유럽을 오늘의 선진국으로 만든 원동력이다.

 

전 세계 이름 있는 도시치고 벼룩시장이 없는 곳은 없다. 값비싼 골동품도 아니고, 최첨단 제품을 취급하는 곳도 아니지만 벼룩시장은 낯선 도시를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그 나라와 도시를 이해하는 필수적인 코스로 꼽힌다. 한 나라의 생활양식과 생활문화를 여실히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현대적 건물로 재 탄생한 서울풍물시장.


흔하게 사용하던 물건들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어느새 주변에서 흔적조차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되고 만다. 70년대의 한때 집집마다 없는 집이 없었던 ‘못난이 인형’이나 아이들이면 누구나 가지고 놀았던 ‘딱지’ 같은 것들이 이제는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들도 세월의 흐름 속에서는 잊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난 기억을 반추하고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다. 낡고 오래된 것들은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것은 나름의 가치가 분명히 있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수집해 온 근현대 생활물품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의 벼룩시장이라고 불리는 황학동은 본래 ‘도깨비시장’이라고 불렸다. 그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낮에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장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라는 것과 또 하나는 취급하는 물건이 마치 도깨비의 물건처럼 낡고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이라는 설이다.


1950년대 초, 6·25이후 고물상들이 밀려들어온 바로 그 무렵부터가 서울풍물시장의 초기형태다. 1973년 청계천 복개공사가 완료된 후 인근의 삼일 아파트를 중심으로 중고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했으며 전국에서 수집된 물건 중에는 종종 진품도 나왔다. 이 소문에 골동품상들이 몰려들었고, 수집가들도 따라 모이기 시작했다.

 

50년대 이후 청계천변에는 미군에서 흘러 나온 물자를 중심으로 노점이 형성됐다.

 

그리하여 황학동 도깨비시장은 한때 골동품상이 밀집하여 골동품 거리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86년 아시안게임이 진행되면서 서울풍물시장은 침체 위기를 맞는다. 정부에서 해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장한평 골동품 상가를 설치하면서 황학동 골동품 가게들을 대거 이주시켰기 때문. 이때 최고 130여 곳에 달하던 골동품 가게의 수가 20여 곳 안팎으로 대폭 줄면서 골동품 상권도 소실되어 버렸다. 1980~90년대에는 중고품상점의 비율이 높아졌다.


그러나 골동품상권이 사라졌다고 시장의 분위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각 지역의 특색에 맞춰 ‘벼룩시장’ ‘도깨비시장’ ‘개미시장’ ‘고물시장’ ‘만물시장’ ‘마지막 시장’ 등으로 재탄생해 서울 도심의 ‘생활사 박물관’타운을 형성했다.


 이처럼 서울의 근대화 과정에 따라 거래물품을 변화시켜가며 지속적인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서울풍물시장은, 2003년 이전에는 중고품 유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관광지로서도 한 역할을 톡톡히 했었다. 특히 인접한 동대문시장이 현대화로 인해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한 것에 반해 쉽게 편입되지 않고 ‘중고품 거래’라는 특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현재는 대부분 중국산이 많지만 가끔 이곳에는 진품이 발견되기도 한다.


서울풍물시장을 거닐다 보면 추억의 물건들이 많이 보인다. 누렇게 변색된 고서나 대형서점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절판된 책, 386세대들이 즐겨듣던 다양한 레코드 음반, 각종 군사용품, 백색가전 등 쉽게 구입하기 힘든 특정중고품이 눈에 많이 띈다. 버려진 물건이 새 주인을 만나 제 빛을 발하는 것처럼 세월이 지나도 물건의 가치를 아는 손님과 20~30년간 한 자리를 지켜가며 물건을 파는 상인 간에는 신용을 바탕으로 한 거래가 이뤄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대적인 지금의 시장보다 예전의 노점이 더 좋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지금은 품목이 너무도 다변화되어 전문성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낡았지만 정감어린 예전의 분위기가 더 ‘벼룩시장’ 다웠다는 것이다.


새로 조성된 서울풍물시장은 총 81여억원을 투입하여 청계천의 이미지를 담은 한자 川(천)자를 형성화한 총면적 7941㎡, 2층 규모의 철골 막구조로 지어졌다.


청계천 시절부터 지금의 서울풍물시장까지 15년간 골동품 상점을 운영했다는 유유현(52)씨는 “현대적 시장으로 재탄생 해 예전보다는 안정적으로 장사할 수 있지만, 인지도가 떨어져 사람들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주차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매출은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고가도로 철거 전 청계천 부근의 벼룩시장.

 

동묘 부근의 노점상. 새 시장이 문을 열었지만 아직도 동묘 부근에는 노점이 성하다.

 

옛 것들이 새것에 밀려 쓰레기로 버려지면, 우리는 지난 생활의 발자취를 확인할 길이 없어진다.

 

직접 시골을 돌아다니며 골동품을 수집한다는 그는 “사람들이 골동품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선뜻 사려는 사람은 줄어드는데다가 골동품 수집도 이젠 시골 사람들이  선뜻 내놓기를 꺼린다”며 영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골동품점을 운영하는 서제현(59)씨는 손쉽게 접할 수 없는 물건을 만나고, 그 물건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 밝은’ 고객들을 만나는 재미로 가게를 운영한다고 장사의 보람을 밝히기도 했다.

 

청계천, 동대문 시절부터 이어지는 고객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은 ‘가치를 알아보는’ 고객들과 ‘가치를 지닌’ 골동품의 만남을 주선하는 뜻 깊은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서울풍물시장이 서울시에서 표방하는 세계적인 벼룩시장(flea market)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미 세계적인 도시인 서울이 변변한 벼룩시장 하나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밀려서 자취조차 없어진다면 문화는 쌓이지 않는다. 온전한 ‘문화’란 지난 것을 계승하여 새로운 것으로 변모하는 것이지 지난 것을 낡았다고 폄하하면서 깡그리 말살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세월의 향기가 풀풀 날리는 ‘오래된 풍경’으로 한번쯤 나들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함문식 기자 hammoonsik@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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