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76세 결혼, 98세 사망 조선 최장수 선비
[백세시대 / 세상읽기] 76세 결혼, 98세 사망 조선 최장수 선비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8.02 14:03
  • 호수 68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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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독신으로 지내다 76세 결혼, 80세에 아들 낳고, 98세 사망. 조선의 최장수 기록 보유자 홍유손(洪裕孫·1431~1529)을 말한다. 노인이 돼 장가를 들었고 100세 직전까지 살았다는 얘기가 경이롭기만 하다.    

그는 김종직 문하에서 문장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저항해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남효온, 김시습 등과 교우하며 스스로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칭했다. 죽림칠현은 진나라 때 어지러운 정치 현실을 떠나 대나무 숲에서 청담을 주고받으며 우정을 나누었던 완적과 혜강 등 7명의 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당시 조선의 죽림칠현은 홍유손을 포함 남효온·이총·이정은·조자지·우선언·한경기를 일컫는다. 

남효온은 ‘사우록’에 홍유손을 ‘세상의 이인’(異人)이라고 칭하고 ‘글은 장자(莊子)와 같고 재주는 제갈공명에게 비견된다’고 썼다. 친지들의 권유로 진사시에 응해 장원으로 합격한 뒤 다시 대과를 보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나이 60이 넘었고 벼슬에 뜻이 없다며 응하지 않았다. 

홍유손이 강론을 펴면 사람들이 무수히 모여들어 집권층에서 볼 때는 불온세력으로 제재의 대상이었다.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연루돼 제주도로 유배됐다가 중종반정으로 풀려나 포천에서 살았다. 이 무렵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그는 사또를 찾아가 결혼 의사를 밝히며 도움을 청했다. 

“늘그막에 혼인을 하려니 어려운 게 이만저만이 아닐세. 내 혼인의 예법도 잘 몰라 자네, 사또에게 청을 한 것이니 참한 친구로 잘 좀 알아보시게. 은혜는 나중에 꼭 갚을 것이니. 내가 어찌하다보니 도를 닦고 학문에 열중하는 일에만 몰두해 나이만 먹었지 세상물정 돌아가는 일을 하나도 모르네. 나이가 많지만 괘념치 않는 처자가 있으면 꼭 좀 내게 알려주게.”

사또는 그 자리에서 아전을 불러 혼수감을 알아보라고 일렀고 아전은 지역의 양반집 규수를 구하려고 발품을 팔았다. 이 때 고진사라고 포천에서 이름 높은 양반집이 있었다. 마침 그 집 막내딸의 배필감을 찾고 있었다. 고진사의 아내가 홍유손의 사연을 전해 듣고는 남편의 의중을 살폈다. 

고진사는 “매월당(김시습의 호) 선생이 돌아가신 지가 벌써 열다섯 해가 넘어가오. 내 어렸을 적 죽림칠현을 동경해 홍유손 대감의 기인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소. 그분이 산에 들어가 도인이 됐다고 하고 유배지에서 숨을 거뒀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혼인은 말도 안되는 소리요”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그러나 정작 아내와 딸은 그 말에 솔깃했다. 결국 고진사가 의지를 접고 딸의 혼인을 허락했다. 홍유손은 오인포에서 결혼 4년만에 아들을 낳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성’(至聖)이라고 지었다. 홍지성 역시 벼슬을 하지 않고 향리에서 후학을 가르치다 일흔 넘어 사망했다. 

홍유손은 저서 ‘소총유고’(篠叢遺稿)를 남겼다. 그는 이 책에서 양생법을 국화에 비유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병을 다스리는 방법은 혈기(血氣)를 잘 조절하고 보호하는 데에 있다. 온 몸에 가득한 혈기를 잘 조절하고 보호하면 오장육부가 튼튼해진다. 내장이 튼튼하면 객풍(客風)이 내부에 엉기지 못해 혈기가 차갑거나 부족한 폐해가 없어진다. 의가(醫家)의 모든 처방과 선가(仙家)의 온갖 비결들이 모두 양생술(養生術)인데 음식의 절제를 먼저 말하고 정신의 보호를 뒤에 말하였다. 그러므로 음식을 절제하지 않고 정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혈기가 들뜨고 허해 객풍을 불러들이며 몸이 위태한 지경에 빠지고 만다. 국화가 늦가을에 피어 된서리와 찬바람을 이기고 모든 꽃 위에 우뚝한 것은 일찍 이루어져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릇 만물은 일찍 이루어지는 것이 재앙이니 빠르지 않고 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그 기운(氣運)을 굳게 할 수 있는 까닭이다. 대저 수명의 길고 짧음은 모두 자기 스스로 취하는 것이지 남이 그렇게 되도록 시키는 것이 아니며 하늘이 주고 빼앗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와 같이 오래 사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거역하지 않고 순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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