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시트’, 코믹한 재난영화… 여름 극장가 흥행돌풍 일으켜
영화 ‘엑시트’, 코믹한 재난영화… 여름 극장가 흥행돌풍 일으켜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8.09 15:53
  • 호수 68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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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일주일 만에 400만명 동원… 기존 재난영화와 달리 웃음에 초점
아찔한 고층 빌딩 외벽 타고 건물 위 뛰어다니는 장면에 짜릿한 스릴

[백세시대=배성호기자]서울의 한 고층빌딩 옥상에 한 남녀가 서 있다. 대학교 동아리 선후배였던 용남(조정석 분)과 의주(임윤아 분)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건너편 건물을 노려보고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의 행색이 조금 이상하다. 대형 종량제 봉투를 뒤집어쓰고 손에는 고무장갑을 낀 채 온몸을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수상한 행색을 한 두 사람은 이내 건너편 건물로 뛰어든다. 그렇게 수차례 건물과 건물을 뛰어 넘은 두 사람은 기존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재난 탈출 액션을 선보이며 극장가를 단숨에 사로 잡았다.   

의문의 유독가스로 뒤덮인 도심을 탈출하는 과정을 그린 재난영화 ‘엑시트(EXIT)’가 개봉 일주일만에 400만명을 돌파하며 올 여름 시즌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개봉 전까지만 해도 경쟁작인 ‘나랏말싸미’와 ‘사자’ 등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반전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 

작품은 동네 놀이터에서 현란한 철봉 실력을 뽐내는 용남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는 체력도 좋고 운동도 열심이지만 취업을 못했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산악 동아리 에이스로 불린 그였지만 이젠 ‘동아리라도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것 좀 하지 그랬느냐’는 핀잔을 듣는 처지가 됐다. 결국 어머니 칠순 전 취업한다는 목표마저도 실패로 끝나고 만다. 

잔뜩 위축된 용남은 칠순 잔칫날 대학시절 산악부 후배 의주와 우연히 만난다. 의주는 잔치가 열리는 컨벤션홀 부점장으로 취업해 유니폼도 입었지만 그녀 역시 임용고시에 떨어져 전공은 살리지 못했다.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던 것도 잠시, 서울 시내에 원인 모를 유독가스가 빠른 속도로 퍼지기 시작하고 도시는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진다. 

칠순 잔치 역시 아수라장이 된다. 이때 용남과 의주는 산악부 시절 경험을 되살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져 안전한 옥상으로 안내했고 다행히 구조 헬기가 도착한다. 하지만 인원 초과로 두 사람은 헬기에 오르지 못하고, 유독가스는 이들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옥죄어 온다. 잠시 좌절하는 듯했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한 채 안전한 곳을 향해 필사의 질주를 시작한다.

이번 작품은 기존 한국 재난영화와 달리 탈출 과정과 웃음에 초점을 맞춘다. 유독가스로 인한 위기가 거듭되긴 하지만 사사건건 훼방 놓는 악인도 없고 짜증을 유발하는 민폐형 인간도 없다. 유독가스를 피해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고 더 높이 오르는 두 사람의 활약이 있을 뿐이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고무장갑과 포장용 테이프, 어디에나 있는 상패 등 흔한 생활용품들을 탈출 도구로 쓰고 아령을 던져 탈출을 시도하고, 노래방 기계로 도움을 청하는 생활형 설정들은 의외의 재미를 선사한다. 

특수 훈련을 받은 전문 요원이 아닌 소시민 캐릭터가 주인공이라는 점도 독특하다. 그럼에도 긴장감만큼은 절대 소박하지 않다. 용남이 최소한의 장비만 가지고 위태롭게 건물 외벽을 타는 장면, 대형 대게 구조물을 오르는 장면 등은 블록버스터가 부럽지 않을 만큼 짜릿하다.  

극 중간 중간 세심하게 한국 사회를 묘사한 것도 눈길을 끈다. 외부인 출입을 막기 위해 평상시에 굳게 닫아둔 옥상 문, 웨딩 홀 등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외부 조형물, 행사장 내에 빠지지 않는 노래방 기계, 무슨 일이 터지면 벌어지는 유튜브 생중계 문화, 지연·학연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군대 인연 등 깨알 같은 설정은 극의 재미를 배가시킨다. 

백수와 임용고시에 실패한 남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자신들에게 소방 헬기를 탈 기회가 왔을 때도 두 사람은 더 약한 사람들에게 양보한다. 

다소 진부해 보이는 이 설정은 헬기가 떠나고 못내 아쉬워하는 속내를 드러내면서 참신한 웃음으로 바뀐다. 다만 이런 두 사람이 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모습은 최악의 취업난, 경제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젊은이들과 묘하게 겹쳐 보여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두 주연배우의 활약이 극의 재미를 완성했다. 조정석은 특유의 능청스럽고 귀여운 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걸그룹 소녀시대 멤버이자 배우인 임윤아는 예쁘고 씩씩한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그렸다. 두 남녀의 로맨스를 부각시키지 않은 것도 이 영화의 장점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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