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영조(英祖)와 고추장
[백세시대 / 세상읽기] 영조(英祖)와 고추장
  • 오현주 기자
  • 승인 2019.08.16 13:46
  • 호수 6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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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500년 역사를 이어온 역대 27명의 왕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던 임금은 누구인가. 바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영조(1694~1776년)이다.
영조의 아버지 숙종은 첫 왕비와 계비로부터 아들을 얻지 못하고 훗날 장희빈에게서 경종을 낳았다. 이후 숙종은 장희빈을 멀리하고 무수리 출신의 숙빈 최씨를 총애했고 둘 사이에 영조가 태어났다. 숙종 사후에 소론의 지원을 받아 경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병약했던 관계로 얼마 못가 숨지고 뒤를 이어 영조가 왕위에 올랐다.
영조가 오래 살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 중 절식(節食)이 손꼽힌다. 조선의 국법에는 내선부가 하루에 다섯 번 왕의 찬선(饌膳·음식)을 올리게 돼 있다. 영조는 이를 거부하고 하루 세 번 찬선을 받았다. 그것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어 궁중에서 낮과 밤, 두 번의 찬선을 폐지했다.
영조는 여름이면 콩밥이나 보리밥에 반찬 몇 가지만 놓인 수라상을 좋아했다. 그가 좋아하던 반찬 중 고추장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여름날 아침에 궁중 약방의 도제조 김약로가 영조에게 “요즘도 고추장을 계속 드시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영조는 그렇다면서 “지난번에 처음 올라온 고추장은 맛이 대단히 좋았다”고 했다. 이에 김약로는 “그것은 조종부 집의 것입니다. 다시 올리라고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영조는 “그러게. 종부는 나이는 어리지만 사람됨이 매우 훌륭한데 누구의 자식인가?”하고 물었다. 김약로가 “조언신의 아들입니다”고 대답했다. 영조는 고추장 맛을 보면서 출처도 궁금해 했던 것이다.
영조는 “내가 믿었다가 기만당하기 일쑤였는데 이 사람은 외모로 보자면 기괴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구나”라고 말했다. 조언신은 당파심 때문에 영조로부터 미움을 샀던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 아들은 겉모습만으로는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영조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조종부집 고추장 요리법은 숙종 때 어의 이시필이 지은 ‘소문사설’에서 찾을 수 있다.
“쑤어놓은 콩 두 말과 흰 쌀가루 다섯 되를 섞고 고운 가루가 되도록 마구 찧어서 빈 섬에 넣는다. 1,2월에 이레 동안 햇볕에 말린 뒤 좋은 고춧가루 여섯 되를 섞고 또 엿기름 한 되, 찹쌀 한 되를 모두 가루로 만들어 진하게 쑤어 빨리 식힌 뒤 단 간장을 적당히 넣는다. 또 좋은 전복 다섯 개를 비스듬히 저미고 대하와 홍합은 적당히, 그리고 생강은 조각내어 항아리에 넣은 뒤 보름 동안 삭힌다. 그런 뒤 시원한 곳에 두고 꺼내 먹는다.”
영조는 건강검진을 자주 받았다. 역대 어느 왕보다도 자신의 건강 상태를 의관들과 자주 의논한 것이다. 영조 이후에 편찬된 승정원의 업무지침서인 ‘은대조례’에는 승지가 내의원의 의원과 함께 왕을 만나 건강상태를 세밀하게 점검하는 문안진후에 대한 규정이 나온다. 이 규정에 따르면 닷새에 한 번씩 문안진후를 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영조 대의 ‘승정원일기’를 보면 재위 52년 동안 무려 7284회나 문안진후를 했다고 기록돼 있다. 평균 2.6일에 한 번씩 받은 셈이다. 재위 초기에는 횟수가 잦지 않다가 날이 갈수록 빈번했고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4년 동안은 하루 평균 1.2회의 진찰을 받았다.
영조가 의관들과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그가 상당한 의학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영조는 아버지 숙종의 병간호를 하면서 의관들과 처방과 약제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형 경종의 임종을 앞두고도 마찬가지였다. 영조가 장수할 수 있었던 건 해박한 의학 지식을 갖추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살필 수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다른 장수비결이라면 부지런함이다. 영조는 숨을 거두기 열흘 전까지도 신하들과 강연(講筵)을 했으며 많은 글을 남겼다. 영조가 직접 지은 어제(御題)는 무려 5400여건에 달한다. 재위 기간이 길어서 그랬겠지만 영조만큼 많은 글을 남긴 왕은 없다. 글은 대부분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었다. 지난 일을 떠올리며 기억을 되새기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는 등 어제 집필을 통해 마음속 응어리를 풀었다.
‘조선의 미식가들’(주영하·휴머니스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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