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 보행사고 줄이기… 신호등 기둥에 접이식 의자, 무단횡단 막아
어르신 보행사고 줄이기… 신호등 기둥에 접이식 의자, 무단횡단 막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08.23 13:18
  • 호수 68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다리 아파 무단횡단” 어르신들 말씀 듣고 장수의자 개발… 전국 확산
‘바닥신호등’, 보행신호 시간 늘려주는 교통약자 안전버튼도 호평
최근 경기 남양주시 등 지자체들이 보행자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접이식 장수의자 설치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천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한 어르신(오른쪽)이 과천시 횡단보도에 설치된 장수의자에 앉아 신호가 바뀌기 기다리는 모습.
최근 경기 남양주시 등 지자체들이 보행자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접이식 장수의자 설치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실천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한 어르신(오른쪽)이 과천시 횡단보도에 설치된 장수의자에 앉아 신호가 바뀌기 기다리는 모습.

[백세시대=배성호기자]“신호가 길어도 부담없이 기다릴 수 있어요.”

지난 8월 20일 경기 과천시 소방서삼거리 앞 횡단보도에서 만난 문해주(73) 어르신은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신호등 기둥에 설치된 접이식 장수의자 덕분에 무릎이 아프지 않게 신호를 기다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같은 시각 소방서삼거리에서 1km 가량 떨어진 문원초등학교 횡단보도에선 청소년 몇몇이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신호가 바뀌자 청소년들은 휴대폰을 보면서도 횡단보도를 안전하게 건너갔다. 횡단보도 바닥에 설치된 일명 ‘바닥신호등’ 때문에 신호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최근 경기 과천시 등 지자체들이 무단횡단을 예방하고 시민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장수의자’, ‘바닥신호등’, ‘스마트폰 자동차단 장치’ 등을 설치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장수의자는 노인들의 무단횡단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전국적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국내에서 장수의자를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은 남양주시다. 유창훈(개명 전 유석종) 남양주시 별내파출소장(현 남양주경찰서 여성청소년계장)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으로 지난 4월 별내동 교차로 등에 60개가 처음 설치됐다. 유 소장이 장수의자를 개발한 건 노인 보행 교통사고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7년 전국 교통사고 사망자 4185명 중 보행 사망자는 40%(1675명)였다. 이 가운데 노인 보행 사망자가 54%(906명)에 이른다. 이중 37%(335명)가 무단횡단을 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지난해까지 남양주경찰서 교통관리계장으로 근무했던 유 소장은 무단횡단 방지를 위해 노인 수십 명에게 왜 무단횡단을 하는지 물었다. 이때 어르신들이 공통적으로 신호가 길어 기다리기 힘들다는 답을 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은 유 소장은 한 업체와 손잡고 화장실의 유아용 의자와 전봇대의 전압기를 받치는 선반에서 착안해 장수의자를 개발했다. 일어나면 자동으로 접혀 다른 보행자들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색깔은 눈에 잘 띄도록 노란색으로 돼 있다.

유 소장은 “어르신들을 위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지만 임산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자로 발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설치 후 반응 역시 호평일색이다. 정확한 집계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무단횡단하는 어르신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BBC 등 외신에도 보도될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이런 효과 덕분에 충북 영동군, 전북 전주시 등에도 확산되고 있다. 

또한 스마트폰에 관심이 쏠린 보행자를 위한 아이디어도 속속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경기 안양시 등은 스마트폰에 정신이 팔린 보행자가 적신호 시 횡단보도에 들어서면 좌우에 설치된 높이 90㎝ 규모의 긴 말뚝 스피커에서 “차도로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경고음이 나오는 ‘스마트폰 자동차단 장치’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또 횡단보도 끝에 있는 노란 막대 주변에 서면 스마트폰 화면을 일시 정지해 스마트폰에 정신을 팔지 않고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게 했다. 

경기 용인시의 한 횡단보도 좌우 끝에 LED 바닥신호등(붉은색 원 부분)이 설치돼 있다.
경기 용인시의 한 횡단보도 좌우 끝에 LED 바닥신호등(붉은색 원 부분)이 설치돼 있다.

서울시와 수원·용인·양주시 등은 바닥신호등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바닥 신호등은 스마트폰을 보느라 길 건너편 신호등을 보지 않는 보행자들을 위한 것이다. 횡단보도 앞 바닥에 LED(발광 다이오드) 조명을 심어 신호 불빛이 눈에 띄도록 했다. 스마트폰 화면을 보기 위해 시선을 아래로 향해도 빨간 신호가 시야에 들어온다. 경찰청과 도로교통공단은 지자체와 협력해 현재 전국 10여 곳에 바닥 신호등을 시범 설치하고 있다. 이후 도로교통법 규칙을 개정해 바닥 신호등 길이·설치 위치 같은 표준 규격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경기 군포시는 전국 최초로 횡단보도에 ‘교통약자 안전보행 버튼’을 설치했다. 기존의 신호등에 설치된 시각장애인용 보행안내 버튼과 사용법이 같다. 신호등이 적색일 때 하단에 설치된 버튼을 누르면 녹색 보행신호 시간이 5~6초 정도 늘어 거동이 불편한 교통약자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