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발표된 2018‧2019 노벨문학상…인간의 실존 탐색한 토카르추크, 선정 1년만에 수상
동시에 발표된 2018‧2019 노벨문학상…인간의 실존 탐색한 토카르추크, 선정 1년만에 수상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0.18 15:05
  • 호수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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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토카르추크    심리상담사 경험 작품에 녹여… ‘태고의 시간들’ 등 주목

2019년 페터 한트케   희곡 ‘관객모독’으로 유명… 유고 전범자 옹호해 논란도

[백세시대=배성호기자]매년 10월 전 세계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스웨덴 한림원으로 쏠린다. 1901년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을 시작으로 세계 문학 발전에 기여한 사람들을 선정, 수상자를 발표해온 한림원은 지난 해 수상자를 발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수상자를 선정하는 한 종신위원의 남편이 성(性) 추문에 휩싸이고 급기야 내부에서 부정회계 갈등이 불거지면서 수상자 발표를 한 해 미뤄야 했다. 그리고 지난 10월 10일, 120년에 달하는 노벨문학상 역사 최초로 두 명의 수상자가 공개됐다. 폴란드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57, 2018년 수상자)와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77, 2019년 수상자)가 그 주인공이다. 

맨부커상에 이어 연거푸 수상

지난해 수상자로 선정됐지만 한 해가 지나서야 수상을 하게 된 올가 토카르추크는 “소설이야말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1962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토카르추크는 바르샤바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1985년 졸업 이후에는 남부 브로츠와프와 바우브지흐에서 심리상담사로 일했다. 이 같은 경력은 훗날 소설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토카르추크는 1989년에 시집 ‘거울 속의 도시들’을 출판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8권의 장편소설과 6권의 중·단편소설집, 2권의 수필집, 그리고 시집과 그림책을 1권씩 출간했다.

초기작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은 올해 초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태고의 시간들’(1996)이다. 폴란드에서 40대 이전 젊은 문인들에게 주는 문학상인 코시치엘스키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태고’라는 이름을 가진 폴란드의 마을, 허구와 현실이 절묘하게 중첩되는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20세기의 야만적 현실과 맞닥뜨린 주민들의 삶을 84편의 짧은 장편(掌篇)으로 기록했다. 1‧2차 세계대전, 전후 폴란드 국경선의 변동, 냉전체제와 사회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실제 역사적 사건들이 신화적인 요소들과 어우러져 한 편의 장엄한 우화를 완성한다.

2007년 폴란드 최고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을 수상했고,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에 빛나는 ‘방랑자들’(2007, 국내에는 올해 10월 21일 출간 예정)은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공통분모로 100여 편의 글을 씨실과 날실처럼 정교하게 엮으며 극찬을 받았다.

아직 국내에 번역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죽은 자들의 뼈에 쟁기를 끌어라’(2009)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체코와 폴란드 국경에 자리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추리소설로, 에코 페미니즘적인 성향이 도드라진다. 자연 파괴와 동물 사냥을 일삼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향해 준엄한 경고를 보내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동식물을 인간과 동등한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생명중심 사고를 드러낸다.

주류에 저항한 독일문학의 이단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트케는 1942년 오스트리아 출생의 극작가로 1960년대 말 독일 문학의 주류였던 참여문학에 반대하고 언어내재적 방식에 주목한 작가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비틀스나 롤링스톤스에 열광했고 영화를 좋아했다. 소포클레스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번역했고, 세계적인 거장 빔 벤더스 감독과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유고 내전의 ‘전쟁범죄자’ 밀로셰비치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가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은 그가 24살 때 집필한 희곡 ‘관객모독’이다. 1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나 사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서너 사람이 아무렇게나 입고 나와 관객에게 말을 걸며 잡담을 늘어놓는다. 이것은 1960년대 지배적이던 교훈적 연극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한트케에게 중요한 건 줄거리를 통한 교육이나 계몽이 아니라, 연극 자체에 집중하면서 배우와 관객의 관계를 새로 모색했다. 

골키퍼 출신 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1970)에서는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며 납득하기 힘든 언행을 일삼는 주인공 블로흐의 모습을 통해 소외와 단절의 현대 사회의 이면을 다룬다. 

한트케의 어머니는 오랜 우울증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담은 작품 ‘소망없는 불행’(1972) 역시 대표작으로 꼽힌다. 어려운 환경 속의 한 여성이 억압적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를 실현시켜가는 성장 과정을 묘사한다. 한트케는 이 작품을 영화로도 제작했다.

근작인 ‘야고보서’(2014)는 역사 소설가로서 역량을 입증한 작품이다. 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공화국 시대에 메시아를 자처하며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를 통합하려 했던 유대인 ‘야쿱 프랑크’와 그 주변 인물들의 삶을 추적한다. ‘일곱 국경과 다섯 언어, 그리고 세 개의 보편 종교와 수많은 작은 종교들을 넘나드는 위대한 여정’이라는 부제처럼 유럽에서 잊혀진 역사의 단면을 재조명했다.

한편, 두 작가는 각각 총상금 900만크로나(약 11억원)와 함께 노벨상 메달과 증서를 받게 되며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에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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