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민속박물관 ‘기억의 공감’ 전, 추억 속으로 안내하는 자개장, 가계부, 녹슨 저울…
국립민속박물관 ‘기억의 공감’ 전, 추억 속으로 안내하는 자개장, 가계부, 녹슨 저울…
  • 배성호 기자
  • 승인 2019.12.06 16:12
  • 호수 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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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기증한 물품 전시… 지난해 받은 1600여점 중 100점만 엄선
무속 기록하는데 사용한 ‘베타플레이어’, 파독간호사 ‘가계부’ 등 눈길
2018년 한 해 동안 국립민속박물관이 기증받은 생활유물 중 가치가 있는 대표 유물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파독간호사가 쓴 가계부, 자개장, 국수공장에서 쓰던 저울을 통해 한 시대를 살아간 소시민들의 생활사를 되돌아본다.
2018년 한 해 동안 국립민속박물관이 기증받은 생활유물 중 가치가 있는 대표 유물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에서는 파독간호사가 쓴 가계부, 자개장, 국수공장에서 쓰던 저울을 통해 한 시대를 살아간 소시민들의 생활사를 되돌아본다.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음식을 담는 도구 아닌가요?”

얼마 전 한 방송에서 10대 및 20대 초반 젊은 사람에게 요강을 보여주며 묻자 대부분 이렇게 답했다. 어르신들이 들으면 박장대소 할 정도로 요강은 1960~70년대까지 생활필수품이었고 지금도 시골에서 곧잘 쓰이는 물품이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강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강은 한국인의 생활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다.

이처럼 국가 차원의 귀중한 보물은 아니지만 집집마다 소시민들의 역사가 담긴 물건들이 있다. 매년 시민들에게 생활물품을 기증받아 온 서울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이 대표 유물로 전시회를 열어 주목받고 있다. 

내년 10월 19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진행되는 ‘기억의 공감’ 전에서는 2018년 한 해 동안 기증 받은 자료 중 가치가 높은 유물 100여점을 소개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964년부터 일반 시민들에게 손때 묻은 유물들을 기증받아 왔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총 1250명이 5만1921점의 자료를 국립민속박물관에 전달했고 이는 시민들의 생활문화를 연구하는데 귀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민속박물관은 2017년부터 매년 ‘기억의 공감’ 전을 열면서 전년도에 기증받은 주요 물품 중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소개해 오고 있다. 2018년에는 모두 68명의 기증자가 소중한 자료 1618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 전달했다. 

이번 전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교육철학, 한국무속사상 등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기록한 김인회 전 연세대 교수가 기증한 ‘베타플레이어’다. ‘비디오테이프’ 하면 흔히 가로가 긴 직사각형의 ‘VHS’를 떠올릴 것이다. 일본 ‘JVC’에서 1976년에 처음 내놓은 가정용 비디오테이프 규격으로 CD와 DVD가 등장하기 전 동영상을 기록‧시청하는 가장 대중적인 기기였다. 이러한 VHS가 등장하기 1년 전 소니(Sony)에서 개발한 규격이 ‘베타맥스’이다. 비록 VHS에 밀려 국내에서는 어르신들 중에도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지만 화질이 더 뛰어나고 잡음이 적어 방송국 관계자 등 영상전문가들이 애용한 제품이다. 

김인회 교수는 이 베타맥스 비디오를 활용해 전국을 돌며 한국 무속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그리고 ‘베타플레이어’로 촬영 영상을 확인하면서 우리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은 무가와 무당의 역사를 정리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전시장에서는 그의 손때 묻은 베타플레이어를 통해 한국 무속 연구자의 집념을 확인할 수 있다. 

김귀원 씨가 기증한 ‘자개장’도 눈여겨 볼만하다. 자개장은 금조개(전복의 껍데기)를 잘게 잘라 붙여서 꾸민 후 옻칠로 마무리한 장롱이다. 1980년대 아파트가 대량으로 보급된 이후 주거환경이 변화하고 붙박이장이 유행하면서 자개장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김 씨가 기증한 자개장은 수십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이러한 자개장은 어르신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젊은 세대에게는 옛 주거문화를 엿보게 해준다. 

파독간호사의 가계부.
파독간호사의 가계부.

파독간호사였던 성국자 어르신이 기증한 ‘가계부’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성 어르신은 1970년 4월 독일에 도착한 첫날부터 가계부를 작성했다. 독일 중부 베스트팔렌 지역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으며, 현재는 독일 함부르크에 거주하고 있는 성 어르신이 서독에 도착해 가장 먼저 산 것은 우표와 엽서였다. 9.4마르크를 들여 고향과 거의 유일한 연락수단을 구매한 그는 이후에도 꾸준히 엽서와 우표를 구입했다. 식료품을 구입하는데도 1마르크 내외만 사용하며 허리띠를 졸라맸던 성 어르신은 편지를 보내는데 드는 비용은 아낌없이 투자했다. 이처럼 그가 기증한 가계부는 외화벌이를 위해 타지에 와서 근검절약하면서 경제발전에 일조했던 파독간호사들의 생활사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10월 문을 닫은 제주 한성국수공장에서 사용했던 ‘저울’도 눈길을 끈다. 1947년 개업한 한성국수는 가내수공업 형태로 4대째 운영해왔지만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공간이 협소해 자동화에도 실패하면서 끝내 문을 닫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수 제작의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공장에서 사용했던 칼, 칼판, 국수대, 반죽 긁개 등 72점을 기증했다. 한성국수는 문을 닫기 전까지 900그램 단위로 묶어서 2500원에 판매했는데 저울은 이 국수의 무게를 잴 때 사용됐다. 저울은 여기저기 녹슬었지만 단 하나의 국수를 팔더라도 꼼꼼했던 국수장인들의 면모를 보여준다. 

국립민속박물관 관계자는 “앞으로도 생활의 작은 흔적과 기록에도 주목해 시대상을 충실히 복원하고 전승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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