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조선만의 달력을 만들려 했던 세종과 장영실의 꿈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 조선만의 달력을 만들려 했던 세종과 장영실의 꿈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1.03 15:50
  • 호수 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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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과 한석규가 ‘쉬리’ 이후 20년 만에 스크린에서 만나 화제를 모은 이번 작품은 허구에 상상력을 더해 ‘안여사건’ 이후 장영실이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지를 다룬다. 사진은 극 중 한 장면
최민식과 한석규가 ‘쉬리’ 이후 20년 만에 스크린에서 만나 화제를 모은 이번 작품은 허구에 상상력을 더해 ‘안여사건’ 이후 장영실이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는지를 다룬다. 사진은 극 중 한 장면

장영실을 사라지게 한 ‘안여사건’에 상상력 더해 두 사람의 우정 담아

‘쉬리’ 이후 20여년 만에 재회한 최민식과 한석규 연기대결 돋보여

[백세시대=배성호기자] 노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 덕분에 세종대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조선 최고의 천재 과학자 장영실. 물시계 자격루를 비롯해 조선왕조의 발전에 영향을 준 수많은 발명품을 만든 그는 세종 24년에 일어난 ‘안여사건’(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 이후로 역사에서 한순간에 사라진다. 장영실은 세종이 탈 가마를 직접 만들지 않고 제작을 감독했는데 이 가마가 부서진 일로 인해 불경죄에 해당돼 관직을 잃고 곤장까지 맞게 됐다. 세종의 평소 인품과도 다른 이 조치와 함께 장영실의 갑작스런 증발은 역사학자들도 의아해하는 조선의 대표적인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지난 12월 26일 개봉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위대한 과학자가 그런 실수를 했을 리가 없고 음해 공작이 있었을 거라는 추론에서 시작된다. 위대한 인물이 역사에 뒤편으로 사라진데는 뭔가 은밀한 사연이 있을 거라는 추론을 바탕으로 갖가지 상상력을 더해 탄생한 작품이다. 

영화 속 세종(한석규 분)과 장영실(최민식 분)의 인연은 중세 이슬람 과학자인 알 자자리의 코끼리 시계 그림에서 시작된다. 조선은 농경사회였기에 날씨의 변화와 시간에 관해서 예민하게 반응했다. 시간을 알 수 있는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곧 힘이기도 했다. 조선은 그런 힘이나 과학기술이 없었고 백성을 먼저 생각했던 세종은 이를 매우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러다 세종은 관노인 장영실이 실제로 본 적도 없는 물시계를 그려냈다는 사실에 호기심을 갖는다. 똑같이 만들어볼 수 있겠느냐는 세종의 물음에 장영실은 코끼리가 없어 불가능하다면서 “코끼리 없이 조선의 것으로 조선에 맞는 것을 만들면 된다”고 답한다. 장영실의 능력을 알아본 세종은 그에게 물시계를 만들라는 명을 내리고,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서운관 국노를 노비에서 해방시켜 정5품 행사직을 하사한다.

이후 그는 일정 시간마다 항아리에서 넘친 물이 구슬을 밀어내 종을 울리는 방식의 물시계 자격루를 완성한다. 장영실은 왕과 대신들 앞에서 해시계와 정확히 일치하는 물시계를 선보이며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다. 

이에 고무된 세종은 명나라의 절기가 아니라 조선의 땅에 맞는 절기를 측정해 정확한 달력을 만들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장영실에게 천문 관측기구를 만들라고 명한다. 사대부들은 “천문역법은 명나라 황제만이 다룰 수 있다”며 만류하지만 세종은 멈추지 않았고, 장영실은 끝내 ‘간의’를 발명한다. 

하지만 비밀리에 진행한 천문 연구는 결국 명나라에 발각되고, 명나라 사신은 즉시 연구를 중단하고 천문의기를 전부 불태우라 명한다. 장영실은 사대의 예를 어겼다는 죄목 아래 명나라로 압송될 위기에 놓인다.

이번 작품은 장영실과 세종이 위대한 업적을 넘어 20년 간 어떻게 우정과 신의(信倚)를 쌓았는지에 포커스를 맞춘다. 안여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한 세종의 모습으로 강렬하게 시작된 작품은 사고 4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20년 전 세종 4년에 두 사람이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등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구조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과정을 통해 신분을 초월한 두 남자의 우정이 돋보인다. 마치 남녀 간의 로맨스를 보는 듯한 두 사람의 관계는 남다르다. 세종이 밤늦게 책을 찾으러 갔을 때 잠에 빠진 영실을 보고 혹시 깰까봐 조용히 자리를 피하거나, 쏟아질 것 같이 별이 총총한 하늘을 같이 누워서 바라보자고 하거나, 천출이라 자신의 별이 없다는 장영실에게 “자신의 별 옆의 별이 네 별”이라고 일러주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툭 터져 나오는 재치 있는 대사로 관객들의 웃음보를 자극하고, 잔잔한 감동을 안긴다.

무엇보다 영화 ‘쉬리’ 이후 20년 만에 재회한 최민식과 한석규의 연기 호흡이 빛을 발했다. 최민식은 하늘의 별을 사랑하고, 세종에게 충성을 다하는 장영실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특히 물시계의 초창기 모습, 조선의 하늘을 열었던 천문기구인 소간의, 대간, 혼천의, 자격루, 양부일구 등을 재현해 영화를 보는 내내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한석규는 애민정신 가득한 성군의 모습부터 명나라 간신들을 처단하기 위해 태종의 흑룡포를 입는 모습까지 카리스마 넘치는 세종을 묵직하게 연기했다. 이전에 연기한 SBS ‘뿌리깊은 나무’(2011)에서의 세종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주연인 한석규, 최민식 외에도 신구, 허준호, 김태우, 전여빈 등 조연배우들이 열연도 돋보인다. 영의정을 연기한 신구와 조말생으로 분한 허준호가 세력 교체를 두고 벌이는 치밀한 심리전 역시 인상적이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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