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새해 가장 행복한 사람들
[백세시대 / 세상읽기] 새해 가장 행복한 사람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1.10 15:17
  • 호수 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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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과 봉준호 감독일 것이다. 봉 감독은 상복이 터졌는지 자고나면 세계적인 영화상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그의 ‘기생충’이란 영화가 새해 1월 6일, 제77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했다. 작년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이후 8개월만이다. 1월 25일 열리는 미국 감독조합상 후보로도 올랐고 아카데미상(2월 10일) 수상도 기대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소망을 하나씩 이루고 있는 셈이니 그 성취·만족감은 무엇과도 견주기 힘들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 이렇게 적었다. “검경수사권 조정문제를 사법개혁 틀 속에 넣어서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도 마찬가지다. 검찰에 대한 견제 방안이 될 수 있었으나 국회의 벽에 막혀 하지 못했다”.

그렇게 열망하던 공수처법을 최근 깔끔하게 마무리 통과시켰다. 물론 국회 사상 초유의 ‘4+1협의체’(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대안신당과 민주당)란 전대미문의 편법으로 처리해 오점을 남겼지만.

지난 2년간 이 정부의 국정 시책을 되짚어보면 대부분 누군가 한 사람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동원되고 연출된 무대가 아닐까 싶다. 문 대통령은 2012년 총선 때 ‘소원’이라고 했던 절친 송철호를 울산시장에 당선시켰다. 새 정부 내각 구성에도 국회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장관들을 보란 듯이 원하는 자리에 앉혔다. 장관 임명장을 주면서 했던, “반대했던 장관들이 나중에 일 더 잘 하더라”는 아전인수 격의 격려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탈원전에도 승리의 깃발을 꽂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부산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시대로 가겠다”며 “원전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원자력 전문가들의 줄기찬 반대에도 불구하고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신규 원전 4기 사업 백지화를 차례로 실천했다. 탈원전 정책은 심각한 국민 분열을 낳았지만 탈원전 총대를 멘 한수원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독일은 물론 대만도 탈원전에서 원전으로 방향을 틀었는데도 이 정부는 재고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의 경제정책마다 부작용을 낳았지만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을 고수하고 있다. 부동산대책도 집값 안정은커녕 오히려 아파트값만 천정부지로 치솟아 강남에 집을 가진 청와대 비서관들은 돈방석에 앉게 됐다. 

문 대통령의 꿈은 사법부도 예외가 아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지형이 바라던 대로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 대부분의 대법관과 헌법재판관이 우리법연구회, 민변 출신이다. 새해 들어선 친여단체 인사가 법원 운영에 관여할 수 있는 법안도 더불어민주당에서 발의했다. 검찰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가장 확연히 드러난 것은 1월 8일, 추미애 법무장관을 앞에 내세워 서둘러 발표한 검찰 인사에서다. 

청와대는 조국 전 법무장관 가족 비리와 청와대 하명 의혹수사를 지휘했던 한동훈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 윤석열 검찰총장의 참모들을 모두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그리고 서울지검장에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인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을 앉혔다. 이성윤 신임 서울지검장은 지난해 9월 9일, “조국 전 장관 수사와 관련해 윤 총장을 배제한 특별수사팀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던 인물이다.  

이제 이 정부와 국회에서 문 대통령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충언하는 이는 하나도 없다. 여당 의원들은 ‘인간 거수기’일 뿐이고 장관들은 청와대의 지시를 공무원에 전하는 ‘중간자’에 불과하다. 문 대통령의 논스톱 행진에 브레이크를 거는 이는 윤석열 검찰총장 한 명 뿐이다. 그마저 허물어진다면 이 나라는 진보좌파의 구호인 “이니 마음대로 해”의 세상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과 봉 감독, 두 사람은 분명 ‘새해 가장 행복한 인물’이다. 그러나 행복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두 사람의 미래는 확연히 갈릴 지 모른다. 봉 감독의 행복(幸福)은 한자의 뜻 그대로이지만 문 대통령의 그것은 정치적 변수가 깔려있는 ‘대기불안정적 행복’이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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