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직한 후보’ / 거짓말쟁이 국회의원이 진실만 말하게 된다면?
영화 ‘정직한 후보’ / 거짓말쟁이 국회의원이 진실만 말하게 된다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2.07 15:27
  • 호수 7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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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라질에서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번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된 국회의원을 코믹하게 그려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2014년 브라질에서 제작된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이번 작품은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된 국회의원을 코믹하게 그려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3선 국회의원 주상숙이 ‘진실의 주둥이’ 갖게 된 후 벌어지는 소동

시종일관 큰 웃음 선사하며 정경유착, 사학비리 등 사회문제 꼬집어

[백세시대=배성호기자] 4선 도전에 나선 국회의원 주상숙. 그녀는 단 한 번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짓말이 능숙하다. “서민이 잘 살아야 내가 행복하다”, “작은 집에 산다” 등 대중들의 환심을 얻기 위한 거짓말을 마구 내뱉는다. 심지어 멀쩡히 살아있는 할머니조차 돌아가셨다고 할 정도. 이런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진실만을 말하게 된다. 거짓말을 일절 못하게 되면서 정치 인생 최고의 위기에 봉착한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는 본심은 큰 웃음을 선사하며 의외의 통쾌함까지 준다. 영화 ‘정직한 후보’ 이야기다.

2월 12일 개봉하는 작품은 거짓말이 가장 쉬운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분)이 하루아침에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진실의 입’을 가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2014년 개봉한 동명의 브라질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야기 역시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서민의 일꾼을 자처하는 청렴하고 믿음직한 국회의원으로 보이는 주상숙은 실상은 서민을 자신의 일꾼으로 여긴다. 당선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반드시 해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다가 초심을 완전히 잃고 동료 정치인들과 온갖 비리를 저지른다. 그러다 그녀의 거짓말로 인해 평생을 숨어 살게 된 할머니 김옥희(나문희 분)가 주상숙을 안타까워 하며 기도를 하게 된다. “우리 상숙이, 거짓말 좀 안 하고 살게 해주세요”라고 말이다.

마법처럼 할머니의 소원은 현실이 된다. 4선이 거의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대중 앞에 선 주상숙은 전과 달리 입만 열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는 남편, 시어머니, 정치인 등 주변 사람들을 향해 진실을 쏟아낸다. 약속에 늦어도 미안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대권 야욕 역시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베스트셀러에 오른 자서전은 3000만원짜리 대필이었다고 공개하고, 자신을 향한 비리 의혹도 술술 고백한다. 남편과의 거짓 금슬도 걷어내고 시민의 일꾼은커녕 시민의 주인이 되겠다고도 말한다.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솔직한 발언들이 대중들에게 먹히기 시작한다. 사탕발림만 늘어놓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주상숙이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속 시원한 사이다 멘트를 날리자, 시민들은 오락적인 재미를 넘어 신뢰까지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에 했던 거짓말들에 의해 발목이 잡히며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작품의 웃음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주상숙이 인기를 얻기 위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할 때, 터져버린 ‘진실의 입’을 주체하지 못할 때, 그리고 그 변화를 목격한 주변인들의 반응을 볼 때마다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비슷한 상황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다. 이와 동시에 현실 정치와 기득권의 사회적 문제도 적절히 풍자한다. 정경유착, 병역비리, 사학비리, 취업특혜, 외국인 근로자 차별 등 고질적인 사회문제를 꼬집는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계가 마주한 위기들을 비추며 앞으로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이야기한다. 소신을 지키는 소수의 정치인들,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인을 등장시키면서 이들의 작은 선택이 모여 큰 흐름을 일궈내는 과정을 통해 따뜻한 결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주연을 맡은 라미란의 힘이 크다. 설경구와 함께 출연한 ‘스파이’, 지난해 개봉한 ‘걸캅스’를 통해 코믹 연기 내공을 보여준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만개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그는 코믹 연기부터 노래와 춤까지 숨겨놓은 장기를 모두 쏟아낸다. 베테랑 연기자답게 적절한 강약 조절로 극을 능숙하게 이끈다. 의원실 안에서는 건드릴 수 없는 까다로운 1인자로, 집에서는 시어머니 전화를 무릎 꿇고 받는 며느리로, 변해버린 자신을 안타까워하는 할머니 앞에서는 조금은 가책을 느끼는 손녀로, 그 어떤 상황에 놓이든 꼭 맞는 연기를 선보이며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보좌관을 맡은 김무열의 활약도 돋보인다. 그간 연극‧뮤지컬 무대 위에서 쌓은 코믹 내공을 발휘해 제대로 된 웃음을 안긴다. 나문희 역시 손녀 라미란과의 호흡을 통해 잔잔한 감동까지 선사한다.

특정 정당을 겨냥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위해 상숙의 정당색을 보라색으로 설정한 것도 흥미롭다. 정치 영화가 아니라고 명확히 선을 그었지만 영화 속에서 투표일을 슬쩍 4월 15일(21대 국회의원 선거일)로 표기해 관객들에게 차기 선거에 대한 관심까지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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