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문해교육 받는 어르신들 “시장서 값 꼼꼼히 계산해 물건 살 수 있게 돼 좋아요”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문해교육 받는 어르신들 “시장서 값 꼼꼼히 계산해 물건 살 수 있게 돼 좋아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5.08 14:26
  • 호수 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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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대한노인회 공주시지회에서 열린 초등학력인정 문해학교 졸업식에서 박공규 지회장(가운데)과  문해교육을 수료한 어르신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대한노인회 공주시지회에서 열린 초등학력인정 문해학교 졸업식에서 박공규 지회장(가운데)과 문해교육을 수료한 어르신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글뿐만 아니라 산수, 기초영어 등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능력 교육

초등과정은 3단계로 구성, 단계별 1년 걸려… “수료 후 삶의질 높아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3년 전만 해도 한글이 서툴러 문자메시지도 못 보냈어요. 그런데 이제는 자식들이랑 ‘카톡’으로 대화를 해요”

지난 2월 충남 공주시지회에서 운영하는 초등학력인정 문해학교를 졸업한 정순자(81) 어르신은 문해교육을 받은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정 어르신은 이름만 쓸 줄 알았던 때 겪은 은행업무 등 일상생활의 어려움이 줄어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한다. 그는 “한글뿐 아니라 산수, 영어 등도 조금씩 할 수 있게 되면서 살아가는데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문해교육’ 하면 흔히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교육하는 한글교실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는 절반만 맞다. 문해교육이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교육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즉, 한글교실을 비롯해 ‘초등‧중등학력인정 교육’, 금융시설 이용방법 등을 알려주는 ‘생활문해교육’ 등이 포함된다.

2017년 성인문해능력 조사 결과, 20세 이상 성인 중 중졸 미만 인구는 517만여 명(약 13.1%)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상당수가 65세 이상 어르신 세대다. 특히 남아선호 사상이 강했던 시대에 태어난 80대 전후 여성 어르신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들은 초등학교는커녕 한글교육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읽고 쓰기조차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에서는 평생교육 차원에서 꾸준히 한글교육을 진행해 왔고 2016년 국가문해교육센터를 설치한 이후 적극적으로 문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각 지역 평생교육원을 중심으로 초등‧중등학력인정 문해학교 등 각종 문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별도의 검정고시 없이 저학력 성인 학습자들에게 학력취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초등학력 인정 교육과정은 총 3단계로 이뤄져 있다. 초등 1단계 40주(240시간, 주 3회), 초등 2단계 40주(240시간, 주 3회), 초등 3단계 40주(240시간, 주 3회) 등 총 120주 720시간을 이수하면 교육부장관이 인정하는 초등학력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이때 단계별 3분의 2 이상 출석을 해야만 이수자격을 얻으며, 평생교육법 제40조에 따라 초등학교 졸업장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학력 미인정 기관에서 공부했을 경우 학습 능력 검증 테스트를 거쳐 적절한 단계부터 학업에 참여할 수 있다. 

초등 1단계에서는 교재인 ‘소망의 나무’(1~4권)을 통해 글쓰기를 위한 줄긋기 연습부터 숫자, 한글을 읽고 쓰는 과정을 배운다. 이후 2단계에서는 ‘배움의 나무’(5~8권)를 교재로 낱말의 짜임, 정보, 비유법, 서수와 시간 등을 1년 간 학습한다. 초등학력 인정의 마지막인 3단계에서는 ‘지혜의 나무’를 교재로 심화한글 과정과 기초적인 산수와 영어 등을 익히게 된다. 중학 학력인정교육 역시 3단계(단계별 1년)로 진행되지만 단계별 수업 시간이 40주 총 450시간으로 늘어나고 국어‧사회‧수학‧과학‧영어 등 필수과목과 선택과목(한문 또는 컴퓨터)을 배워야 한다.

대한노인회 공주시지회(지회장 박공규)의 경우 단순 한글 교육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문해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2013년 9월부터 초등학력인정 문해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16년(2013년 입학) 첫 졸업자를 배출하고 올해 2월 2회(2016년 입학) 졸업식을 열었다. 정순자 어르신을 비롯해 11명이 3년간의 교육과정을 충실히 따르며 초등학력을 인정받았다.

문해학교는 정규교육과 달리 한 주에 3일만 등교하면 되지만 고령의 어르신들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문해학교 학생들 중 무릎 및 허리 수술을 한 어르신들이 많아 오가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로 인해  중도탈락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순자 어르신도 사정은 비슷했다. 환갑 직후 무릎 수술을 해 한쪽 다리를 절뚝이게 된 그는 주 3회 수업을 듣는 일정 때문에 큰 고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허광순(87) 어르신과 함께 택시를 타고 등‧하교하기로 결정한 후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정 어르신은 “한 번 왕복하는데 택시비만 1만5000원씩 드는데 전혀 아깝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5년 허리 협착증 수술을 받은 홍종희(82) 어르신도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주저했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참여해 수료증을 받았다. 홍 어르신은 “매번 듣는 내용이 새롭고 신선해 배움기간 내내 즐거웠다”면서 “이상하게 수업 중에는 허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고 말했다.

공주시지회 문해학교 수료생들은 모두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버스노선도를 보고 목적지를 스스로 찾게 됐고, 스마트폰 등으로 문자메시지도 쉽게 보낼 수 있게 되면서 활동 반경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홍 어르신은 물건을 구매할 때 꼼꼼히 따질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문해교육을 받기 전에는 셈이 어려워, 막연히 싸겠거니 하고 물건을 구매했지만 이제는 꼼꼼히 계산을 해보고 정확히 얼마나 싼지 비싼지를 헤아리고 사게 됐다는 것이다. 또 한글 이해력이 높아지면서 지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문해교육 효과라고 말했다. 홍 어르신은 “예전에는 공주 지역의역사를 들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됐다”면서 “건강만 허락된다면 중등학력 인정과정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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