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세상 끝까지 머리에 이고 살아야할 운명”
[백세시대 / 세상읽기] “세상 끝까지 머리에 이고 살아야할 운명”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6.19 13:49
  • 호수 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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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도 있을까. 우리 혈세 180억원을 들여 지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한방에 날려버렸다. 김여정이 “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위협한지 사흘만이다. 연락사무소와 함께 폭파된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15층 건물도 530억원을 들여 지었으니 두 건물을 합치면 우리 국민세금 710억원이 날아간 셈이다. 

이번 폭파사건 직전에는 냉면집 주방장이 동물에게나 쓰는 험한 말을 남한의 대통령에게 퍼부었다. 북한의 냉면집 옥류관 주방장 오수봉은 기고를 통해 “평양에 와서 우리의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더니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한 일도 없는 주제에 오늘은 또 우리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다“고 비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옥류관에서 오찬으로 평양냉면을 먹었다.  

이 글이 과연 냉면집 주방장 머리에서 나온 걸까. 그렇지 않다. 이 글 뒤에는 김여정이 있고 그 뒤에는 김정은이 있다는 것은 북측의 표현대로라면 ‘팔삭둥이’도 모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여정은 연락소를 폭파한 뒤 문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식에서 행한 연설에 대해 “역스럽다”, “비열하고 간특하다“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기념식에서 “오랜 단절과 전쟁위기까지 어렵게 넘어선 지금의 남북관계에 난관이 조성되고 상황이 엄중할수록 6·15 선언의 정신과 성과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유체이탈 화법을 썼다. 

김정은·김여정 남매는 비록 예고는 했더라도 정작 문 대통령의 동문서답을 듣자 머리가 하얘져 연락사무소 폭파라는 강수를 뒀는지도 모르겠다.  

남북 관계는 늘 긴장-화해-대치의 악순환을 되풀이해왔다. 20년 전 오늘 김대중 대통령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 공동선언에 합의한 뒤 “대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지금 남북 관계는 대결 시대로 회귀할 것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남북이 이렇게 된 데는 북미 관계가 당초 기대와 예상만큼 풀리지 않으면서 북한의 초조함이 커졌고 그 원망이 남쪽으로 향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수십 회 미사일을 쏘아대며 남한을 전멸시킬 핵실험을 6번이나 하고 전 세계를 타격할 수 있는 ICBM을 개발한 북한이 앞으로는 한·미 두 나라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자신들의 의지대로 나가겠다는 일종의 기염이거나 힘 과시일 수도 있다. 실제로 북이 가지고 있는 핵탄두는 올 1월 30~40개로 추정되며 지난해보다 약10개 증가했다(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 

통계학적으로 대형 사고를 예측하는 ‘하인리히 법칙’이란 것이 있다. 이는 대형사고 1건이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 29건과 경미한 징후 300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북한 전문가들은 연락사무소 폭파에 이어 북이 조만간 큰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로 북은 연락사무소를 파괴한 직후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지역, 휴전선 일대에 다시 군대를 전진 배치할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북이 지금까지 보여준 행태로 봐서는 하인리히 법칙이 적용될 일은 없을 것 같다. 북은 당장이라도 엄청난 일을 저지를 것처럼 남측을 겁박하면서도 저들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면 180도로 태도를 바꾼다. 그 목적이 미국, 서방세계, 유엔 등으로부터의 경제 제재 해제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남한이 이 문제에 관한한 해결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을뿐더러 이 문제는 제3자가 화해에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일도 아니다. 오직 미국만이 열쇠를 갖고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북한은 수시로 자해 행위(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를 하거나 냉면집 주방장을 동원해 일국의 대통령을 모욕 주는 비이성·비합리적인 집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점이다. 이번 북의 이상 행동에 부화뇌동하는 정책(대북전단살포 금지법 등)을 펴거나 언론이 호들갑스런 여론몰이를 할 필요가 없다. 같은 언어를 쓰며 가장 가깝게 붙어있는 북한은 이 세상 끝까지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불운의 한민족’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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