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에 대한 지역주민 이기주의 道 넘었다
노인에 대한 지역주민 이기주의 道 넘었다
  • 관리자
  • 승인 2006.08.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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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정 폐쇄나선 주민들

 

법정소송에 노인들 몸·마음 지쳐
늙기도 서러운데 물세례 폭언까지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건영아파트

 

1980년대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노인정은 현재 노인 80명에 한 개꼴로 총 5만여 곳에 이른다.

 

노인정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법 규정의 영향이 크다. ‘주택 건설기준 등에 관한 관리규정 제55조(경로당 등<개정 2003.4.22>)’에 따르면 100가구 이상 주택단지는 20㎡(6평) 이상의 노인정을 설치해야 한다. 최근 신축되는 아파트는 대부분 100가구 이상이어서 단지마다 노인정이 생기고 있다.

 

최근 노인정 문제와 관련된 분쟁으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는 수원의 한 아파트를 찾아갔다.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에 위치한 건영아파트가 그곳으로 노인정 문제와 관련해 노인들과 주민들간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일부 주민들이 팔순 노인에게 욕설과 함께 물세례를 퍼붓고 심지어는 간접폭행을 행사하는 등 물리적 압력까지 가하면서 한지붕 아래 사는 주민들간에 법정소송까지 벌이는 등 끝이 보이지 않는 분쟁이 이어지고 있다.

 

건영아파트 노인회 김규섭 회장은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주민들이) 오히려 쪽박을 깨고 있다”며 “노인들에 대한 공경은커녕 학대를 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위의 사례처럼 법 개정 이전에 건축된 아파트 단지는 노인정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차후에 노인정을 신축하려고 하면 주민들의 반대로 건축이 무산되거나 지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보(2호)에서도 ‘노인시설 혐오시설로 몰리는 세태 씁쓸’이라는 제하로 기사가 보도됐었다.

 

최근 들어 이와 같이 노인정 등 노인관련 시설 건축과 관련해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오고 있어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장애인시설, 노인요양병원에 이어 이제는 동네 노인정까지 혐오시설로 몰리고 있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이기주의를 넘어 사회적 테러에 가깝다.

 

지역이기주의 도 넘었다=건영아파트는 현재 총 129세대가 살고 있지만(노인세대 포함 가정 30여세대), 주택건축 법 개정 이전에 건립된 아파트여서 건립 당시 노인정은 지어지지 않았다.

 

이에 건영아파트 노인회는 쉼터가 필요하다는 노인들의 요청에 따라 지난 2000년 11월, 지하 1층 아파트 주차장의 자투리 공간을 노인정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구청에 정식 허가를 득한 후 지원을 받아 현재까지 노인정을 운영해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열악한 공간이지만 지하주차장 외에는 마땅한 공간이 없어 이곳에 노인정 터를 잡고 30여명 노인들의 쉼터가 됐다.  그런데 지난해 중순 아파트에 새로운 동대표가 선출되면서 동대표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주민들이 노인정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노인정에서 음식을 해먹는 것이 화재위험이 있고, 노인들이 아무데나 용변을 해결하는 등 아파트를 지저분하게 만든다는 것이 노인정 폐쇄를 주장하는 이유였다. 동대표를 비롯한 일부 주민들이 노인정에 들어와서 노인들이 점심을 해먹으려하자 밥통을 발로 걷어차고, 심지어는 팔순이 넘은 할머니에게 물을 끼얹기도 했다.

 

그러던 중 급기야 지난해 6월에는 한밤 중에 노인정을 기습 침입해 노인정(구청에서 지원한) 집기를 모두 밖으로 끌어내고 바닥의 장판지를 뜯어낸 후 열쇠를 바꾸고 문을 잠궈버렸다는 것이 노인회측의 주장이다.

 

노인회 김영화 할아버지는 증거 사진들을 보여주며 “팔순이 넘은 노인들에게까지 욕설과 간접폭행까지 가하고 있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분개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 할머니는 “내가 물세례를 받은 사람”이라고 나서며, “자기들도 다 늙은 부모가 있을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참다못한 노인들은 관련 주민들을 경찰에 고소한데 이어 검찰수사까지 요청했고 검찰은 노인들의 손을 들어준 상태다. 그러나 주민들은 계속 꼬투리를 만들어 끊임없이 소송을 제기하고 있어 현재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노인정은 지난해 6월부터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상태다.

 

동대표 및 주민들이 노인정 문을 잠그고 노인들이 문을 따기를 여러차례 한 후 힘이 부친 노인들은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아예 노인정을 사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분쟁이 생기면서 적은 돈이나마 구청에서 지원되던 운영비도 끊겼다. 현재는 노인회 감사인 배재화 할아버지가 자신의 집을 개방해 임시노인정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배재화씨는 “동대표와 몇몇 주민들이 노인정을 없애기 위해 돈을 횡령했다, 할머니들이 망령 나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 폭행을 당했다는 등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면서 “부녀회의 첫 번째 임무는 노인 공경인데, 이 아파트는 건축된 지난 5년이 넘도록 노인들에게 경로잔치는커녕 물 한잔 대접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노인정은 지역노인들이 머물며 소일거리도 하고 친구도 사귈 수 있는 쉼터와 같은 곳이다. 그러나 노인정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시원찮아 한겨울에는 난방 기름값이 없어 노인정으로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노인들은 이제 지역주민들의 이기주의 때문에 법정에도 불려 다녀야 한다. 한 노인은 “평생에 한번 가볼까 말까 하는 법원에 수시로 참고인으로 불려 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다”고 말했다.

 

분쟁의 중심에 서 있는 아파트의 동대표를 만나 이에 대한 반론을 요청했지만, 동대표는 화를 내며 “노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니 알아서 하라”는 말로 취재요청을 거부했다. 해당 구청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역시 수수방관하고 있다. 주민들의 문제는 주민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노인들에게 보이고 있는 일부 주민들의 행태는 지역이기주의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노인에 대한 배려는커녕 이기적인 태도를 고수하며 노인들을 골탕먹이고 있는 주민들이 ‘자신들도 언젠가는 늙는다’는 것을 그리고 자녀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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