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문제 영감, 골치 할멈!!
[백세시대 / 금요칼럼] 문제 영감, 골치 할멈!!
  •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 승인 2020.07.10 13:49
  • 호수 7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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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이호선 숭실사이버대 기독교상담복지학과장

“못된 할망구” “영감탱이” 등

 날선 비난발언 주고받지만

 부부는 여전히 등 긁어주며 살아

 가족이 사랑을 만들어가는덴

 방법도 과정도 여러 가지인 것

“아주 못살아요, 그 영감탱이 때문에!”

“내가 이럴라고 저 마누라랑 살았나, 못된 할망구 같으니!”

폭삭 늙은 느낌의 단어 ‘할멈’, 고집스러운 분위기의 말 ‘영감’이다. 그러나 이 말을 글로 보았을 때와 말로 들었을 때는 달라질 수 있다. 오랜 시간을 나누지 않고서는 부를 수 없는 장난스럽고도 재미진 묘한 단어가 ‘할멈’ ‘할망구’이고, 이미 한물간 단어로 벼슬의 의미 대신 부부끼리 유통되는 친근한 속어가 ‘영감탱이’다. 문장을 맥락을 함께 읽어야 하고 말은 어조를 같이 들어야 한다. 그러니 졸혼이 늘고 이혼이 늘었다 해도 말만으로는 불합리한 선택이고, 글만으로는 과도한 해석이다. 부부는 맥락으로 늙는다.

‘밭을 갈아 엎겠다’, ‘이놈의 밭 불 질러버린다’고 나선 자녀들이 한둘이 아니나, 불 지르겠다는 그 녀석이 늘 밭을 갈고 거두미(‘거둠질’의 방언) 하러 내려온다. 부모를 걱정하고 건강을 염려하는 효도의 말 ‘밭 갈아엎기’ ‘밭 불 지르기‘도 마찬가지다. 노부모의 힘겨운 노동을 그치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밭을 갈며, 자식이 소가 되고 콩이 되고 천마가 되어 다시 밭에 떨어져 가을 부모 얼굴은 늘 풍년이 된다. 단어를 넘어 맥락이 가족의 역사 속에 해석의 기준이 된다.

호칭은 관계를 결정하고 맥락은 정서를 결정한다. ‘영감’과 ‘할멈’은 늘 골치고 늘 문제맥락과 닿아있지만, 서로의 어조 안에서 역전의 해석을 만들어낸다. ‘밭 갈아엎기’는 재물 손괴이고, ‘밭 불 지르기’는 방화의 일환이나 우리는 최종적인 행동의 결과를 두고 ‘엎고 불 지르기’로 효도를 대신한다.

그러니 가족은 자주 역설이다. 반대로 부르고 정상적으로 사랑하며, 거꾸로 말하고 제대로 역할을 하니 말이다. 곧이곧대로라면, 문자대로라면 우리는 전 가족이 고통 유발자이고 범죄 당사자일 것이다. 그러나 굳이 성질까지 내가며 호칭을 불러대고 상황을 언어로 표현하는 이유는 ‘염려’이고 ‘사랑’이다. 굳이 말하지 못하는 감정을 사랑으로 이해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반대로 말하고 진짜로 사랑하며, 말로 밀어내고 가슴으로 끌어안는 이런 반항적이고 비효율적인 사랑 행위의 근원은 무엇일까?

과거 윤하라는 가수가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 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의 키스를 해달라고 노래를 부르던 마음의 비밀번호는 서양식 마음 비밀번호이다. 그러니 햄버거와 피자로 성장한 젊은 사람들에게는 유효하다. 이 방법은 보이고 들리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에게 정확한 감정을 전달한다는 면에서 권할만하다. 상담할 때 건강하고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과정 역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하루에 네 번 불평하고, 여덟 번 ‘영감탱이’와 ‘할망구’를 부르고, 여섯 번의 짜증을 내도 나이 드는 가족들은 여전히 사랑한다. 표면언어와 이면언어가 서로 달리 나타나는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방식의 대화라도 서로가 그 근저에 흐르는 거대한 신뢰의 맨틀을 보는 힘이 있는 가족에게 골치와 문제의 단어가 존재를 확인하는 안심의 단어가 된다. 불 싸지르겠노라 선언하는 자식의 온열협박으로 농작물이 자라는 것은, 부모의 거대한 생존 원천을 잘 알고 있는 자식의 확신 강화를 위한 군불 때기 전략인 셈이다. 

아름답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으며, 늘 분란이 일 것 같고, 전문가들이 하라는 것과 반대로 하는데도 부부가 여전히 등을 긁어주고 자식이 밭을 갈고 거두미를 하러 내려온다면, 역설이 맥락이 되고 심층신뢰가 탄탄하니 괜찮다. 무화과(無花果)는 꽃이 피지 않아 무화과라지? 그러나 무화과는 열매 자체가 꽃이다. ‘꽃이 없다’ 말하는 건 보이는 것으로만 평가하고 아는 것으로만 재단하는 우리의 편견 때문이다. 

어떤 집은 말로 감정의 장미를 피운다. 그리고 다른 집은 열매로 꽃을 보인다. 삶과 관계의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학교로 가는 길이 여러 개이고 방식이 여러 가지이듯, 가족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방법과 과정도 여러 가지다. 어찌 장미만 있겠는가! 무화과야말로 꽃 되고 열매 되니 참으로 신통하지 않은가! 가장 꽃 같지 않은 것이 꽃이고, 가장 열매 같지 않은 것이 그리도 달다! 장미도 좋고 무화과도 좋다. 뭉툭하면 빨랫방망이로 쓰고, 길쭉하면 지팡이로 쓴다. ‘영감탱이’는 영감탱이대로 할망구랑 살고, ‘할망구’는 할망구대로 영감이랑 산다. 문제 영감과 골치 할멈은 그렇게 맥락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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