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호랑이콩과 어머니 / 신은경
[백세시대 / 금요칼럼] 호랑이콩과 어머니 / 신은경
  • 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 승인 2020.07.31 14:49
  • 호수 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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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신은경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한여름이면 사다 주시던 콩자루

제때 갈무리 못해 물러지기도

최근 호랑이콩 한 자루 덥석 사서

살짝 말렸다 껍질을 까던 중

문득 돌아가신 엄마 생각 사무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포천 파머스 마켓에 들렀다. 금방 수확한 싱싱한 야채가 농부들의 손에서 곧바로 내 손으로 오는 곳이다. 중간 유통과정이 없으니 가격은 얼마나 훌륭한지. 대파 한 단 1000원, 호박 두 개 1000원, 신선한 아욱 한 봉지 1200원. 반찬 해 먹고 밥에도 얹어 쪄먹을 감자 10킬로에 6000원. 장아찌용 양파 작은 망 하나는 1000원. 감사하고 또 죄송했다. 얼마나 고생해서 기른 농산물들인데 과연 그 수고에 답을 할 수 있는 가격인지 싶어 더 열심히 장바구니를 채우게 된다.

그중에 가장 반가운 것은 껍질 안 깐 호랑이콩이었다. 한 자루 덥석 집어 들었다. 당장 껍질을 깔 시간이 없어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싱싱한 껍질 콩을 훌훌 널었다. 밭에서 흙과 함께 금방 숨 쉬다 온 콩깍지들은 아직도 가쁜 호흡을 멈추지 못해 싱싱함을 피부로 내뿜고 있다. 

이렇게 아직 살아있는 콩을 좁은 망에 꽉 낀 채로 하루 이틀 두면 겉이 눅눅해지고 곰팡이가 생기기도 한다. 좀 더 방치하면 서로의 열에 의해 속의 콩까지 물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루 이틀 널어놓으면 껍질이 꾸덕꾸덕 마르고 살짝 건조되는 것도 있어 나중에 껍질 까기가 더 수월해진다.

무늬가 얼룩덜룩해 호랑이 같다 하여 호랑이콩이라고도 하고, 맛이 딱 밤 같아 호랑이 밤콩이라고도 하는 이 품종은 흰 바탕에 자주색 무늬가 어찌나 선명한지 번쩍이는 호랑이 눈을 마주 보는 기분이다. 그런데 밥을 지으면 그 화려한 무늬가 사라지고 그냥 누렇게 색이 변하는 게 좀 아쉽지만, 그 맛은 기가 막힌다. 

원래 밥에 콩 두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도 유독 이 콩만은 아주 좋아한다. 쌀 한 컵에 노란 기장을 섞고 그 위에 가득 호랑이콩을 덮으면 다른 특별한 반찬 없이도 아주 푸짐한 식사 준비가 끝난다. 둘이 먹고 조금 남기도 하고, 좀 더 많이 남는 날은 차게 두었다가 오며 가며 스낵처럼 주워 먹기도 한다. 그래도 좀 더 남으면 물과 함께 믹서에 갈아 끓인다. 그러면 타락죽처럼 톡톡하게 죽이 되어 구수하게 먹을 수 있다. 여기에 죽염을 좀 넣으면 진짜 맛과 향이 그만이다. 

콩 껍질을 까며 15년 전 세상 떠난 친정엄마 생각을 했다. 밖으로 나도느라 살림이 엉망인 나를 늘 안타까워하시던 엄마는 때가 되면 소리 없이 챙겨주시는 게 많았다. 굴비며, 된장, 고추장, 겨울 김장, 여름 물김치, 오이지 등 소리 없이 냉장고를 채워주시고 가셨다. 

한여름 호랑이콩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살림이 우선이 아니었던 딸은 가져다주신 재료도 제때 갈무리를 못 해 나중에 걱정을 듣기 일쑤였다. 엄마가 사다 놓으신 콩 자루를 며칠 동안 묵혀두었다가 껍질이 물러지고 곰팡이가 나듯 하면 깜짝 놀라 허둥지둥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엄마는 뭐하러 이런 걸 잔뜩 사 오셔서 내게 일거리를 안겨주시는지 하며 속으로 볼멘소리를 했다. 챙겨주는 음식물을 자식이 제때 잘 먹고 바닥을 보여야 엄마는 재미가 나는데, 그러질 못할 때가 많으니 딸이 참 한심하셨을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제 손으로 호랑이콩을 자루로 사 오고, 곰팡이 나지 않게 훌훌 널어놓을 줄도 알고, 그리고 깔끔하게 껍질을 까 조금씩 나눠 냉동에 보관을 다 할 줄 알다니.

혈압 걱정 조금 하셨고 살 빼신다고 운동도 하시던 엄마가 갑자기 큰 병을 얻어 일 년 꼬박 투병 생활 하시다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나셨다. 그럴 줄 알았으면 공기 좋은 시골에 모시고 가서 오래오래 인생 이야기하다 보내드릴 것을, 독한 약과 병원살이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자식 된 입장에서야 어떻게 해서든 낫게 해 드리고 싶어 첨단 의학의 힘을 구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엄마, 요즘은 백세시대라는데 왜 그리 빨리 가셨어요? 우리 딸 중학교 갈 때까진 봐주시겠다고 약속하고선. 나 영국 유학 갔을 땐 너무 보고 싶어 누가 ‘은경이 잘 있느냐’고 물을 때마다 서럽게 눈물이 났다고 하셨죠? 자식이 부모 생각하는 마음은 아무리 키워도 부모 맘 따라가질 못해.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나는 잘난 척하느라 엄마를 ‘어머니’라 불렀다. 그러다 엄마 아프신 그 날부터 나는 다시 ‘엄마’ 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 엄마.

엄마 떠나시던 한여름에 부엌 바닥에 두 다리 펴고 퍼질러 앉아 엄마 생각하며 콩 껍질을 까고 있다. 껍질을 다 까놓으니 한 일 년 먹을 것 같다. 그리운 엄마의 추억을 일 년치 또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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