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다시보는 한국 명작영화 [4] 별들의 고향, 네 남자에게 버림받은 호스티스 경아의 굴절된 삶
유튜브로 다시보는 한국 명작영화 [4] 별들의 고향, 네 남자에게 버림받은 호스티스 경아의 굴절된 삶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7.31 15:05
  • 호수 7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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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일, 안인숙 주연의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역대 서울 최다관객을 동원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은 경아 역을 맡은 안인숙과 극중 그의 두 번째 남자였던 만준을 연기한 윤일봉의 모습.
신성일, 안인숙 주연의 이 작품은 개봉 당시 역대 서울 최다관객을 동원하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기도 했다. 사진은 경아 역을 맡은 안인숙과 극중 그의 두 번째 남자였던 만준을 연기한 윤일봉의 모습.

밀리언셀러 기록한 최인호의 소설 원작… 개봉 당시 최다관객 동원

꿋꿋하게 살려던 주인공의 좌절 통해 사회비판… 이장희 노래도 인기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경아, 오랜만에 같이 누워보는군”

당시 영화 '별들의 고향' 포스터.
당시 영화 '별들의 고향' 포스터.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배경 삼아 신성일(문호 역)이 ‘별들의 고향’(1974)에서 내뱉은 이 대사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패러디되고 있다. 최인호(1945~2013) 작가가 조선일보에 연재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동명의 소설을 고교 친구인 이장호 감독이 만든 작품으로 서울에서만 4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공전의 히트를 거뒀다. 신성일의 유명한 대사만 보면 연인들의 달콤한 로맨스물 같지만 실제로는 호스티스로 살다 불우하게 세상을 떠난 경아라는 인물을 통해 산업화와 자본주의가 낳은 비극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이다.

작품은 문란한 생활 탓에 성병에 걸린 화가이자 대학강사인 문호(신성일 분)가 병원 치료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의사에게 여자관계를 조심하라는 주의를 들은 문호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Bar)로 향한다. 그는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경아를 발견하고 그녀를 스케치한 후 바텐더를 통해 그림을 전달한다. 

그러다 우연히 경아가 일하던 술집에서 재회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던 술집으로 이동해 술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나눈다. 경아는 다정한 문호를 보며 첫 남자인 영석(하용수 분)을 떠올린다. 경아가 사무실에서 떨어뜨린 펜을 영석이 주워 건네면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아이를 갖게 되지만 낙태하게 되고 영석에게도 버림받는다. 

실연에 슬퍼하던 경아는 이를 숨기고 전처와 사별하고 결벽증이 심한 중소기업 사장 만준(윤일봉 분)과 결혼한다. 행복은 또 잠시였다. 그녀의 낙태 사실이 탄로 나면서 파경에 이른 것. 이후 경아는 진실한 사랑을 찾아 여러 남자를 전전하며 술에 의존하게 되고 건달 동혁(백일섭 분)을 만나 또 한 번의 절망을 맛본 후 호스티스로 전락한다.

그렇게 삶의 나락에서 경아는 문호를 만나고 그를 인생의 마지막 남자라고 여기며 동거를 시작한다. 경아는 문호의 그림 모델을 하며 잠시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그녀의 마음에 깊이 자리잡은 불안한 심리 때문에 심한 알코올 중독에 빠져 서서히 시들어 간다. 문호는 이런 경아의 피폐한 모습에 실망하고 결국 말없이 그녀의 곁을 떠난다.

1년 후 경아의 존재를 잊고 살아가던 문호에게 경아의 옛 애인인 동혁이 나타난다. 동혁은 자신이 배를 타고 멀리 떠난다며 경아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두 사람은 극적으로 재회한다. 두 사람은 경아의 집으로 향하고 문호는 경아가 끓여 주겠다는 라면도 술도 마다하고, 피곤하다며 그녀를 껴안고 눕는다. 이때 문호가 내뱉은 대사가 현재까지도 꾸준히 회자되는 대사이다.

두 사람은 애틋한 감정을 나누지만 문호는 너무나도 변해버린 경아를 받아들일 수 없었고 눈 내리는 새벽 그녀의 머리맡에 돈을 두고 조용히 떠난다. 또다시 실연의 아픔을 맛본 경아는 문호가 주고 간 돈을 들고 술집으로 향한다. 이때 한 낯선 남자가 그녀에게 추근거리고 경아는 그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한다. 

그리고 바깥으로 나선 경아는 혼자 눈밭 위를 걷는다. 수면제를 먹고, 물 대신 눈을 떠먹는다. 눈밭 위를 한참 방황하던 경아는 문호가 달려오는 환상을 보고 그렇게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작품은 가난하지만 꿋꿋하게 살고 싶어했던 주인공이 사회적 편견에 짓밟히고 마는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면서 당시 젊은층의 큰 호응을 얻었다. 경아 역을 맡은 안인숙은 아역배우 출신으로 20대 초반에 찍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최고의 스타자리에 올랐지만 1년 뒤 대농그룹 박영일 회장과 결혼하며 영화계를 완전히 떠났다.

작품이 성공하는 데는 작은별 가족의 강근식과 가수 이장희가 맡은 영화음악도 큰 영향을 미쳤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를 비롯해 영화 속에서 이장희가 부른 ‘한잔의 추억’, ‘한 소녀가 울고있네’, ‘촛불을 켜세요’와 당시 17세였던 윤시내의 ‘나는 열아홉 살이예요’가 모두 히트했다. 이후 ‘영자의 전성시대’,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 호스티스 영화의 유행을 낳기도 했다.

이 작품으로 데뷔한 이장호 감독은 그해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감독상을 받는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 작품은 한국영상자료원이 선정한 ‘한국영화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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