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사박물관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 전…1970년대 ‘영희네 가족’을 통해 본 라디오 문화
서울생활사박물관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 전…1970년대 ‘영희네 가족’을 통해 본 라디오 문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8.07 14:54
  • 호수 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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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100년 가까이 한국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라디오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사진은 1970년대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라디오들과 전시장 내부 모습.
이번 전시에서는 100년 가까이 한국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한 라디오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사진은 1970년대 국내에서 사랑받았던 라디오들과 전시장 내부 모습.

라디오, 광복 이후 전성기 맞아… 1980년대 컬러TV 등장한 뒤 쇠퇴

국내 첫 진공관 라디오, 일왕의 항복방송, 라디오 구매통장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1927년 2월 16일, 서울 정동의 경성방송국에서 첫 전파를 쏘아 올린 뒤 우리나라에서도 라디오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광복 이후에는 경성방송국이 국영화되면서 서울중앙방송국으로 바뀌었고 1954년 기독교방송, 1960년대 문화방송, 동아방송, 라디오서울이 차례로 개국하면서 라디오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이 시기 국산제품도 본격 생산되면서 라디오는 각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던 라디오 인기도 쇠락의 길에 들어섰다. 1980년대 컬러TV가 등장하면서 영향력이 줄어든 것이다.

한 세기 가까이 송출되며 한국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라디오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가 서울 노원구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11월 15일까지 진행되는 ‘1978, 우리 가족의 라디오’ 전에서는 1959년 출시된 우리나라 최초의 진공관 라디오인 ‘금성라디오’를 비롯, 어르신 세대의 필수품이 된 라디오들과 어떤 4인 가족의 이야기 속에 녹여낸 국내 라디오의 역사를 재조명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맨 먼저 라디오 부스를 재현한 공간이 관람객을 맞는다. 팝 필터(원형 모양의 망)가 달린 방송용 콘덴서 마이크를 설치해 관람객들이 직접 DJ가 돼 녹음을 해보고 이를 자신의 메일로 보내 소장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부스에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포토존도 마련해 관람의 재미를 더했다. 

이어지는 전시에서는 한국 라디오 연표와 각 시기를 상징하는 주요 유물들을 소개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라이츠 마이크로폰’이다. 경성방송국이 개국한 이후 1950년대까지 사용한 마이크로 영국 마르코니사에서 제작했다. 현재 사용하는 마이크와 달리 잡음이 많고 거미줄처럼 생겨 거미줄 마이크로도 불린다. 

라디오를 구매하기 위해 만든 ‘일부통장’도 눈길을 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라디오는 대당 3만5000원 내외에 판매됐는데 당시 80kg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이 5000원인 것을 고려하면 서민들이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고가품이었다. 그래서 월부(月賦), 혹은 일부(日賦)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시에 소개된 일부통장 앞면에는 하루 500원씩 납부하겠다는 계약내용이 적혀 있고 뒷면에는 날짜별로 납부를 확인한 표시가 남아있다. 이를 통해 당시 라디오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작은 스피커를 통해 1945년 8월 15일 송출됐던 일왕의 항복 방송도 들을 수 있다. 히로히토 일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는데 이를 ‘옥음방송’(옥음은 일왕의 목소리란 뜻)이라고도 부른다. 광복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가장 먼저 알린 첨병 역할을 라디오가 했던 셈이다. 

한 관람객이 전시장에 마련된 라디오 부스에서 DJ 체험을 하고 있다.
한 관람객이 전시장에 마련된 라디오 부스에서 DJ 체험을 하고 있다.

또한 어르신 세대와 젊은 시절을 함께한 반가운 라디오들도 한자리에 모았다. 1975년도 박정희 대통령이 우수 새마을지도자들에게 선물로 준 금성라디오를 비롯해 1970년대 제작된 소니와 파나소닉의 카세트 라디오까지 옛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제품들을 소개한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1970년대 4인 가구의 집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에서는 딸인 고등학생 영희와 그의 오빠인 대학생 영수, 그리고 부모가 라디오를 어떻게 소비했는지를 보여준다.

‘영희의 방’에는 1970~1980년대 10대 여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라디오 음악방송의 역할을 되돌아본다.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LP를 비롯해 ‘별이 빛나는 밤에 사연집’ 등의 자료를 통해 당시 라디오에 귀 기울이며 성장했던 소녀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영수의 방’에서는 1970년대 야구와 함께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고교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중계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소형라디오가 등장해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면서 중계를 듣는 사람이 늘었고 TV 등장 이후에도 속보성을 이용한 라디오 스포츠 중계는 여전히 인기를 끌었다. 

또 교육 방송의 역할을 했던 라디오의 면모도 살펴본다. 1970년대에는 방송통신대학교와 방송통신고등학교가 개교해 경제 여건이나 취업으로 교육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라디오를 통해 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AFKN을 청취하며 영어학습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전시에서는 ‘라디오 학교’ 교재와 AFKN 방송 프로그램 가이드 등을 라디오의 교육적 역할을 조명한다.

지금은 대부분 TV로 드라마를 시청했지만 1950~1960년대에는 라디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방송국은 드라마를 30분 단위로 띠편성(일주일 단위로 같은 시간대에 동일한 유형의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것)하기에 이르렀고 이중 대박을 친 드라마는 따로 영화나 책, 음반으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다. ‘부모의 방’에서는 주부들을 웃고 울게 한 라디오드라마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한편, 이번 전시는 코로나19 대응 차원에서 하루 60명만 관람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생활사박물관에 문의(02-3399-2900)하거나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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