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다시보는 한국 명작영화 5] ‘하녀’, 한 순간 욕망으로 인해 파괴되는 가정 그려
[유튜브로 다시보는 한국 명작영화 5] ‘하녀’, 한 순간 욕망으로 인해 파괴되는 가정 그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8.21 14:03
  • 호수 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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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영 감독이 1960년 연출한 이 작품은 당시 시대상을 압축해 기괴하게 묘사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여공 경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동식을 몰래 훔쳐보는 하녀(왼쪽)의 모습.
김기영 감독이 1960년 연출한 이 작품은 당시 시대상을 압축해 기괴하게 묘사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은 극중 여공 경희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동식을 몰래 훔쳐보는 하녀(왼쪽)의 모습.

음악 선생 집안에 들어간 하녀, 주인에 대한 원망에 복수극 벌여

1960년대 한국 시대상 압축해 묘사… ‘최고의 한국 영화’로 꼽혀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칸 국제영화제 등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한 미국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78)는 지난 2008년 한 한국영화의 디지털 복원을 주도했다. 해당 작품은 김기영(1919~1998) 감독이 1960년에 만든 ‘하녀’로, 스콜세지 감독은 한국이 지원 대상 국가가 아님에도 세계영화재단(WCF)에 복원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를 받아들인 WCF의 지원에 힘입어 ‘하녀’는 디지털로 복원됐다. 뿐만 아니라 스콜세지 감독은 2008년 칸 영화제에서 ‘하녀’가 특별 상영되도록 힘을 쓰기도 했다. 

세계적인 거장을 매료시킨 이 작품은 중산층의 한 단란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하녀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은 방직공장 여공들의 합창부를 지도하는 음악 선생 ‘동식’(김진규 분)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선영이란 여공의 편지를 받고 이 사실을 사감에게 통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정직 처분을 받은 선영은 공장을 그만둔 채 고향으로 내려간다. 

동식의 아내(주증녀 분)는 남매를 키우면서 10년 동안 재봉틀을 돌려 번듯한 이층집을 지었다. 무리한 부업으로 그녀의 몸이 쇠약해지자 동식은 하녀를 두기로 결심한다. 

동식은 자신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선영의 친구인 여공 경희(엄앵란 분)에게 하녀를 구해달라고 요청하고 그녀는 공장 기숙사의 식모(이은심 분)를 소개한다.

새집으로 이사한 뒤에도 일을 멈추지 않은 동식의 아내가 건강이 악화돼 친정으로 잠시 요양을 가고 이 사이에 선영이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동식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던 경희는 피아노를 배우러 와서 동식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모욕을 당하고 쫓겨난다. 이를 지켜보던 하녀는 동식을 유혹해 육체관계를 맺는다. 친정에서 돌아온 동식의 아내는 임신한 상태이며, 하녀의 임신 사실도 곧 알려진다. 이에 동식의 아내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하녀에게 계단에서 떨어져 낙태할 것을 종용한다. 

하녀는 이를 실행에 옮기지만 복수심에 불타서 집안을 파멸시키려고 결심한다. 동식의 아들(안성기 분)은 쥐약 탄 물을 먹여 살해하고, 동식의 간통을 공장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그가 자신과 동침하도록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갓 출산한 동식의 아내에게 밥상까지 차려오게 한다. 하녀의 행패를 견디다 못한 동식은 하녀와 함께 쥐약을 먹고 동반자살을 결행하고 계단에서 죽어가는 하녀를 뿌리친 채 아내 곁에서 숨을 거둔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상상이다. 작품 초입에서 신문을 읽던 동식은 재봉틀을 돌리는 아내에게 가정부가 주인집 아들을 살해한 기사를 들려주면서 하녀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악몽 같은 이야기가 동식과 하녀의 죽음으로 파국을 맞은 뒤 동식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다. “남자는 나이가 많을수록 젊은 여자를 놓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면서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하며 막을 내린다.

작품은 1960년대 한국 사회의 시대상을 2층 양옥집 풍경 안에 기괴하게 압축해놓았다. 부엌에 쥐가 드나들고, 하녀가 입주하자마자 그 쥐를 때려잡는 장면이나 쥐약을 먹고 죽은 쥐의 시체를 치우는 장면 등은 식구들의 죽음을 암시한다. 

가파른 계단과 계단 벽에 걸린 베토벤의 데드마스크, 동식이 치는 피아노 소리와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불협화음, 장면 전환과 인물의 클로즈업, 유리문과 거기에 들이치는 장대비 등도 긴장을 고조시킨다.

또 여공, 하녀, 일하는 아내, 생계형 예술가, 장애가 있는 딸, 철부지 막내아들 등 영화 속 인물들은 고급스러운 피아노와 쥐약이 공존하는 이층집 계단을 부단히 오르내린다. 이처럼 상반된 인물들의 심리를 상하좌우의 영화적 움직임으로 표현한 방식은 2020년대 영화와 비교해도 세련됐다. 

에로틱하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해 긴장감을 유발하는 솜씨 역시 빼어나다. 이러한 작품성 때문에 2014년 한국영상자료원이 개원 40주년을 맞아 집계했던 ‘최고의 한국 영화’ 설문조사에서 ‘오발탄’, ‘바보들의 행진’과 함께 공동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치과의사 출신인 김기영 감독은 1955년부터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뒤 40여년 간 ‘x녀’ 시리즈 등 30여편의 영화를 통해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인간 심리에 대한 냉혹한 분석과 묘사를 하며 괴짜감독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 충무로를 이끌고 있는 봉준호, 박찬욱 감독이 최고로 꼽을 정도로 많은 후배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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