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 83세 여성 어르신의 불교 성지 ‘수미산’ 순례기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 83세 여성 어르신의 불교 성지 ‘수미산’ 순례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8.28 14:54
  • 호수 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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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은 지난 2017년 83세 나이에 카일라스 순례길에 나선 이춘숙 어르신의 감동적인 도전을 다룬다. 사진은 이춘숙 어르신(왼쪽)과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 영화를 제작한 아들 정형민 감독의 모습.
이번 작품은 지난 2017년 83세 나이에 카일라스 순례길에 나선 이춘숙 어르신의 감동적인 도전을 다룬다. 사진은 이춘숙 어르신(왼쪽)과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아 영화를 제작한 아들 정형민 감독의 모습.

3개월에 걸쳐 2만km의 험난한 여정… 아들이 줄곧 동행하며 촬영

바이칼 호수, 히말라야 산맥 등의 아름다운 풍경과 도전 정신 감동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아름답다’였다. 고령의 나이에 순례에 나선 이춘숙 어르신이 거쳐 간 바이칼 호수, 고비 사막, 파미르 고원 등의 풍경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어르신의 작고도 큰 걸음에서 시종일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른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이 어르신의 도전은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80대 어르신의 숭고한 순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이 9월 3일 개봉한다. 티베트에 위치한 카일라스는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수미산(須彌山)이다. 힌두교와 라마교의 성지이기도 하다. 

작품은 이춘숙 어르신이 아들(정형민 감독)과 함께 낯선 카일라스를 향한 순례를 시작하며 시작된다. 1934년생인 이춘숙 어르신은 1950년대 당시 흔치 않았던 대학교를 다닌 신여성이자 농사교도소(현 농업기술센터) 초대 공무원으로 농촌계몽운동에 힘쓴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어르신은 독신주의자로 평생을 계몽운동에 헌신하려 했지만 20대 후반에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그녀에게 뜻하지 않은 불행이 닥친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 이후 이 어르신은 자녀들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꿈을 접고 뒷바라지에 집중한다. 어린 자녀들이 장성한 후에는 경북 봉화 산골마을에서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삶에 집중하다 보니 여행에도 도통 관심을 갖지 않았다. 자식들이 가까운 일본과 동남아 여행을 권유해도 극구 거절했다. 그러다 이 어르신은 2014년 히말라야에 다녀온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문득 순례를 떠나고 싶다는 결심을 한다. 이 어르신의 생각을 전해 들은 정형민 감독은 고령의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말라는 주변의 만류를 뒤로 한 채 그녀와 함께 히말라야(2014)로, 카일라스(2017)로 차례로 떠난다. 

이 어르신이 순례에 나선 배경에는 먼저 떠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겠다는 간절함이 있었다. 이런 간절함을 실행하기 위해 양손에는 약해진 다리를 보조해줄 지팡이를 들었고 그녀의 아들은 그녀를 찍기 위해 시종일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지탱하고 의지하며 험난한 순례길에 오른다. 두 사람의 카일라스 순례는 2017년 봄 바이칼 호수를 다녀온 후 같은 해 9월 1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다시 시작해서 몽골을 종단, 고비 사막에서 알타이 산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알타이 산맥에서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파미르 고원을 넘었고 다시 중국의 신장 자치구로 건너가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 고원을 지나 목적지인 성스러운 마나사로와르 호수와 카일라스 산에 도착한다.

여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카일라스 순례를 마친 후 걸어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고 네팔 카트만두에서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이때가 11월 14일이었다. 3개월 동안 육로 2만km에 육박하는 여정을 83세의 어르신과 중년의 아들이 함께 완주한 것이다.

두 사람의 여정은 인생의 굴곡을 닮은 길과 뜻밖의 인연들이 연결되면서 삶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더불어 카메라는 길 위의 어머니를 애틋하고도 따스하게 담으며 경탄을 자아내는 풍경을 선사한다. 

이 어르신은 가는 곳마다 넘치는 모성애로 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을 따스하게 안아주면서도 소녀처럼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일기에 기록한다. 팔순을 넘겼지만 여전히 새로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순례의 길에서 이 어르신을 만난 여행자들은 마치 영웅이라도 만난 듯, 그녀의 손을 잡고 감격했다. ‘슈퍼 마마’라고 부르고, 때로는 기념사진 촬영을 원하고 선물까지 건넸다. 이들의 반응은 단순히 노인이 순례의 길을 오른 것에서 오는 감격이 아닌 이 어르신의 지치지 않는 열정, 도전 정신,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감격일 것이다. 

정형민 감독은 “어머니의 순례는 치열한 삶과 열정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며 “청년들이 노인을 똑같은 인간이자,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멘토로 존경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순례의 여정을 담았다”고 밝혔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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