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자체적으로 노인들에 연금을 주는 마을
주민 자체적으로 노인들에 연금을 주는 마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09.18 11:11
  • 호수 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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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 박람회’에서 소개된 마을연금 사례들
경기 포천 장독대마을에서 운영하는 농촌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 장독대마을은 농산물 수확체험, 고추장 만들기 등 관광객에게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그 수입의 일부로 연간 60만원의 마을연금을 어르신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경기 포천 장독대마을에서 운영하는 농촌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 장독대마을은 농산물 수확체험, 고추장 만들기 등 관광객에게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그 수입의 일부로 연간 60만원의 마을연금을 어르신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태안 만수동마을, 바지락‧굴 등 판매수입 일부로 연 300만원씩 지급

포천 장독대마을, 정읍 송죽마을도 기금 조성해 월 5~10만원 나눔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최근 우리사회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토론회를 여는 등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기본소득’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쉽게 도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막대한 예산이 든다. 미국의 알래스카주에서 석유 수입의 일부를 ‘알래스카 영구기금’으로 조성해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걸음마 단계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마을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마을연금’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매월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닌 여러 마을에서 말이다.

지난 9월 10일, 11일 이틀간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0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주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기금을 통해 마을연금을 지급하는 마을이 공개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충남 태안군 만수동마을이다. 태안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자그마한 어촌인 만수동에는 56가구 126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들은 갯벌에서 바지락과 굴, 해삼을 캐서 생활하는데 2016년부터 마을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연금 지급은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의 갈등에서 시작됐다. 80대 이상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의 굴 채취 능력을 따라가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더군다나 자원은 한정돼 있어서 이에 대한 노인들의 불만이 커져갔다. 이에 어촌계 대의원들이 머리를 맞댄 끝에 양식장 채취 수입의 70%는 작업자가, 30%는 노인 등 비작업자에게 연금으로 주기로 합의하면서 마을연금의 첫발을 내디뎠다. 전제능 만수동 어촌계장은 “어르신 세대들이 바다를 개척했는데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밀려나고 젊은 사람이 굴과 바지락을 죄다 캐면 살길이 막힌다”며 마을연금 도입 배경을 설명했다.

채취 수입의 30% 모아 지급

이를 통해 현재 마을 주민 가운데서 80세 이상의 고령 노인이나 장기 입원자, 장애 판정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사람 등에게 1인당 연간 300만원(월 25만원)의 마을연금을 준다. 수혜자는 한해 대략 20여명. 한 달에 두 번씩 수협을 통해 연금이 개인 계좌로 자동이체된다.

처음부터 모두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추위와 더위와 맞서며 일하는 건 우리인데 왜 노인에게 30%를 주냐”며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전 계장을 비롯한 대의원들이 “누구나 노인이 되고 노인은 부모 같은 분들”이라고 설득했고 결국 어촌 마을연금의 롤모델이 됐다.

70세 이상 마을 노인에게 연간 60만원(월 5만원)의 마을연금을 지급하는 경기 포천시 교동 장독대마을도 기본소득 성공 사례로 꼽혔다. 장독대마을은 지난 2009년 한탄강댐 건설로 수몰되는 마을주민들이 모여 만든 마을이다. 주민들은 먼저 도롱뇽이 많아 교룡 교(蛟)자를 썼던 ‘교동’을 어머니 정신이 깃들어 있고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장독대마을로 개명했다. 농촌체험마을 운영에 미래가 있다고 깨달은 마을주민들은 각자 원하는 교육을 통해 바리스타, 제과제빵, 꽃차 만들기 등 1인 1개 이상 자격증도 취득했다. 포천시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음식체험관 등 각종 체험관을 지었다. 이후 삼시세끼 프로그램, 쌀 클레이 체험, 농산물 푸드테라피, 고추장 만들기, 농산물 수확체험 등을 연중 프로그램으로 진행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연간 2만명의 내외국인이 찾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주민들은 여기서 발생하는 마을 수익금을 공동관리해서 주민들에게 인건비를 주고 남은 이익금 중 일부를 현재 마을 노인 7명에게 4년째 마을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영농조합법인 설립해 수익금 분배

전북 정읍 송죽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인 2014년부터 마을연금을 도입했다. 80세 이상이면서 지역 공동체에 20년 이상 머물렀거나, 20년이 채 안 됐더라도 마을 공동체에 기여한 바가 큰 것으로 인정되는 어르신들에게 연간 120만원(월 10만원)의 마을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국립공원 내장산 자락에 자리잡은 송죽마을은 20여가구, 60여명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로 주민 대부분이 60대 이상 고령자다. 

안정적인 소득을 얻기 어려웠던 이 마을은 유연필 대표의 제안으로 2013년 마을기업인 ‘내장산 쑥모시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한다. 떡 생산 대표기업인 ‘솔티애떡’과 계약을 맺고 쑥·모시를 공동생산함으로써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게 됐다. 

이후 마을기업 참여 주민들은 고령의 나이로 참여하지 못한 어르신들에게 일정수익을 나눠드리기록 결정하고 마을연금을 전격 도입한다. 

유 대표는 “어르신 세대가 있기에 마을이 발전하고 조합도 성장할 수 있었다”며 “연금은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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