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공정’을 37번이나 외쳤다니…
[백세시대 / 세상읽기] ‘공정’을 37번이나 외쳤다니…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09.25 14:04
  • 호수 7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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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구토를 일으키는 장면을 간간이 본다. 그런 경우의 구토는 생리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 부조리·불합리·부도덕 등에 대한 저항·좌절·분노의 표현이다. 이 정권 들어 이런 구토를 유발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청년의 날’을 만들어 BTS를 청와대로 부른 자리에서 ‘공정’이란 말을 37번이나 썼다. 문 대통령은 “공정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불공정도 있었다. 때로는 하나의 공정이 다른 불공정을 초래하기도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해소하는 일이 한편에선 기회의 문을 닫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 ‘공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공정에 대해 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우리는 반드시 공정의 길로 가야 한다는 신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된 유체이탈식 화법이다. 이는 마치 현장에서 붙잡힌 도둑이 잘못을 빌기는커녕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나쁜 일이니 절대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며 사람들을 향해 꾸짖는 것과 같다. 

문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공정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최근에 잇따르는 불공정한 사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다. 가장 공정치 못한 사건의 중심에 선 이들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의원, 추미애 법무부 장관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다. 

조국 전 장관의 자녀는 고등학생 때 박사과정 학생도 버거운 영어 의학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하지도 않은 인턴 활동 증명서를 얻어내 대학입시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받았다. 대학교수를 부모로 둔 특혜를 누린 것이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아들은 군의관이 군 병원에서 충분히 진료 가능하다고 진단한 질환을 핑계로 19일 병가를 연장해 4일 휴가를 더 다녀왔다. 일반 사병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지역대장이 진짜 제대로 승인했다면 개인연가는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세 번이나 선임 병장들이 귀대하라고 전화했지만 입대 7개월의 일병이 집에서 엄마 보좌관을 통해 상급 부대를 찔러 휴가 연장을 따냈다. 이런 ‘신공’을 이 땅의 예비역들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것이다. 

윤미향 의원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도운 경력으로 공천을 받았는데 바로 그 할머니들이 ‘윤미향이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우리를 이용했다’고 폭로했다. 사기·횡령·배임 등 기소된 혐의만 8개다.    

문 대통령은 측근의 불공정하고 불미스런 일들에 대해 국민에게 용서를 빌지 않은 채 ‘공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는 청년들이 반발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논란을 지칭하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은 “공정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불공정을 초래했다”고 정부의 불공정한 행위를 인정했다. 정규직·비정규직을 기분 내키는 대로 뽑는 회사는 없다. 기업체마다 자격, 조건, 대우 등의 채용 기준과 절차에 따라 각각 뽑는다. 이렇게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회사에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 ‘비정규직 0’를 천명하자 사달이 난 것이다. 국민이 잘못한 통치 행위에 반발한 것을 두고 ‘공정을 다르게 바라보는 눈’이라고 묘하게 비튼 것에 대해선 역겨움까지 인다.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른 것이다. 그것은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넘어 도덕과 상식을 포함한 폭넓은 사회규범에 속한다. 누가 가르쳐줘서 되는 게 아니다. 철이 들면 스스로 판단된다. 

사회가 공정해지는 방법은 쉽고도 간단하다.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만들어주고 싶었다면 인천공항의 정규직화 매뉴얼에 따라 하면 됐다. 그렇게 하면 누구도 딴 소리를 못한다. 조국도 입시 규정에 따라 딸을 대학에 보내고, 윤미향도 기부금 모집 방식에 의해 받고, 추미애 아들도 육군의 휴가규정에 맞게 연가를 받았다면 잡음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지키는 이런 원칙들을 자꾸 무시하고 꼼수를 부리니 국민의 헛구역질이 그칠 날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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