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시대를 보는 눈’ 전…한눈에 되돌아보는 120년의 한국미술 발전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시대를 보는 눈’ 전…한눈에 되돌아보는 120년의 한국미술 발전사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10.16 15:07
  • 호수 7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300여점의 작품들을 통해 1900년대부터 2020년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의 발전 과정과 시대별 유행했던 경향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은 백남준의 ‘색동Ⅰ’.
이번 전시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300여점의 작품들을 통해 1900년대부터 2020년까지 한국 근현대미술의 발전 과정과 시대별 유행했던 경향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사진은 백남준의 ‘색동Ⅰ’.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제작된 한국미술 주요 작품 300여점

관동팔경 묘사한 ‘강산무진도’, 박서보 ‘묘법’, 백남준 ‘색동Ⅰ’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 10월 13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가로 21.7미터 비단 화폭에 관동팔경(강원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에 있는 8개소의 명승지)을 담은 이용우의 ‘강산무진도’(1947)가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조선 후기 화원 화가 이인문이 그린 동명의 작품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관동팔경을 돌아보고 1945년부터 3년 간 제작한 대작으로 산수화의 매력을 전달한다. 하지만 이 시기를 마지막으로 한국화는 주도권을 서양화에 넘겨주고 서서히 변두리로 밀려난다.

이처럼 한국근현대미술 120년의 주요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다. 2022년 7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 전에서는 주요 소장품 300여 점과 미술연구센터 자료 200여 점이 전시된다. 미술관에서 출간한 도록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300’(2019)과 연계해 보면 보다 쉽고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은 1900년대 초 ‘사실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란 질문에서 시작돼 주관과 개성이 드러나는 다양한 표현 양식으로 변모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화의 정체성 규명을 모색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분단, 4·19혁명, 서울올림픽, 세계화 시기를 거치며 한국 작가들은 작품에 시대정신을 담으려는 작가 의식을 보여줬다.

이번 전시는 총 15개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3층(5‧6전시실)에서는 1900-1970년대의 미술이 전개되며, 2층(3‧4전시실)과 회랑을 따라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미술을 소개한다. 관람객은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서 사회적 상황 속에서 미술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살필 수 있다.

채용신의 ‘전우 초상'.
채용신의 ‘전우 초상'.

조선시대에는 많은 중인층 직업 화가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궁에 속해 있거나 고위층의 미술품 수요를 충족시켜 줬다. 고종황제의 초상을 제작한 어진화가 채용신 또한 일종의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자체 공방을 만들어 새로운 미술 수요층에 부응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위정척사파의 대표적 유학자인 전우의 모습을 담은 ‘전우 초상’(1911)이다. 채용신은 반듯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의 강건한 표정을 통해 올곧은 선비의 인상을 전달하고 있다. 마치 사진을 찍은 듯이 피부의 점, 수염과 털끝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1970년대 후반기에는 단색화 경향의 작품들이 크게 주목받는다. 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무언가를 재현하기 보다는 작가의 철학을 추상적으로 단순화해 표현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박서보의 ‘묘법 No. 16‒78‒81’은 어린 아들의 서툰 글쓰기에서 착안, 여백의 미를 구현한 그림이다. 캔버스에 유백색의 밑칠을 하고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수없이 반복되는 선을 긋는 방식으로 제작하며 단색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1980년대 들면서 한국 최초의 대대적인 자생적 미술운동으로 민중미술운동이 전개된다. 광주자유미술인협의회 등이 결성되면서 19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한국 화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 민중미술의 대표작가인 신학철의 ‘묵시 802’는 콜라주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구두 모양의 얼굴을 한 샐러리맨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을 통해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과 억압된 표현의 자유를 초현실적으로 풍자한다.  

1980년대 말부터 국내 화단에는 세계화의 바람이 분다. 1988년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 등의 대규모 국제 행사를 개최하며 국가 위상이 높아지자, 자연스레 국가의 경계를 넘어 활동하는 작가들이 늘어난다. 백남준을 비롯해 미국으로 이주한 강익중, 박이소 등이 대표적인 작가들로, 이들은 한국적 소재나 전통적인 모티프를 재해석하는 작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중 백남준의 ‘색동Ⅰ’은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알록달록 색동 문양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또한, 단순한 원색의 평면들로 구성된 배경은 화면조정 중인 TV 스크린처럼 보인다. “보라 백남준은 꼭 재기한다”라고 자필로 쓰여 있는데, 당시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재기를 다짐하는 작가의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 일상을 다룬 작품이 부쩍 늘어난다. 미술가들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인물을 다루기보다는 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소재를 발견하고 있다. 이중 이동기의 ‘국수를 먹는 아토마우스’를 눈여겨 볼만하다. 아토마우스는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아톰’의 얼굴과 미국 디즈니 캐릭터 ‘미키마우스’의 머리가 합친 형태로 일종의 패러디 캐릭터이다. 시사‧정치적인 색을 걷어내고 개인의 지극히 평범한 사유를 담은 작품에서 그는 면발을 강조하기 위해 아토마우스의 머리만 그리고 면은 다소 과장되게 묘사하며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