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금요칼럼]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이 뭐길래 / 신은경
[백세시대 / 금요칼럼]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이 뭐길래 / 신은경
  • 신은경 차의과대학 교수
  • 승인 2020.12.11 14:07
  • 호수 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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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 차의과대학 교수
신은경 차의과대학 교수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은 

 장내 미생물이 잘 자라도록

 식이섬유 풍부한 식품을 먹는 것

 그러면 면역력 높아지고 

 뇌까지 건강해진다고 하니…

나는 요즘 SNS에 음식 사진을 올리고 있다. 예전엔, 자기가 먹은 거, 만든 거, 구경 간 곳 사진 찍어 올리는 사람 보면 이해를 하지 못했는데, 그 일을 내가 하고 있다.

시작은 후배 아나운서가 권해서였다. 장내 미생물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을 차려 먹고, 숙제하듯 사진을 찍어 올리기로 했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란 장내 미생물 환경이라는 뜻인데, 대장 속에 유익한 균이 많아야 면역력도 높아지고 뇌도 건강해진다고 하니 건강을 위해 함께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이며 천랩 대표인 천종식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잘 먹고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장내 미생물에게 좋은 먹이를 주는 것이다. 밀가루로 만든 빵이나 국수, 흰밥 같은 단순 전분은 빨리 분해되기 때문에 대장까지 내려가기도 전에 모두 소화되고 만다. 그러면 대장 내에 살고 있는 세균은 쫄쫄 굶게 된다는 이야기다. 미생물이 굶으면 어떻게 되는가? 미생물 먹이를 제대로 공급해 주지 않으면 굶주린 미생물들은 장 점막을 갉아 먹게 되고, 점막에 틈이 생기면 대장 속으로 산소가 들어가고 나쁜 미생물이 늘어나 염증에 취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이유 없이 소화가 안 되고, 변비와 설사가 반복되는 장 트러블이 생기게 된다. 

가정의학과 전문의 김해영 박사는 장내 미생물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착한 탄수화물 ‘맥 Mac’ 음식을 추천한다. 사람의 소화기관에서 분해하지 못하는 통곡물이나 식이섬유가 풍부한 녹색 채소와 뿌리채소, 버섯 종류, 껍질 채 먹는 과일, 견과류, 씨앗 등이 여기에 속한다. 미생물의 좋은 먹이다. 

다양한 장내 미생물을 잘 먹여 키우려면 일주일에 30가지 이상의 맥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형제가 여럿이니 각자 좋아하는 것으로 골고루 준비해 주라는 말이다. 일단 아침 한 끼 정도를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으로 준비한다. 한 접시에 모두 담는다. 반반 접시를 만든다. 나 먹을 것도 반 담고, 미생물 먹이도 반 담는다. 다른 다이어트 음식과 다른 점은 배고픔을 참지 않는 것이다. 이 점이 아주 만족스럽다.

지난 석 달 동안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을 실천하다 보니, 외식할 때도 먹는 게 달라졌다. 메인으로 시킨 음식보다 반찬으로 나오는 야채에 눈이 먼저 간다. 양배추를 새콤달콤하게 무쳐 놓은 것, 깻잎나물, 브로콜리 데친 것, 땅콩 조림에 정신을 홀딱 빼앗긴다. 고기 넣은 된장찌개를 시켜도 함께 들어 있는 나박나박 썰어 넣은 싱싱한 호박과 두부가 더 반갑다, 

해장국 집에서도 배추 우거지와 콩나물이 더 반가웠다. 함께 나온 흰 쌀밥은 쳐다보지도 않고 건더기를 홀딱 건져 먹었다. 좀 더 먹었으면 싶었다. 6000원짜리 해장국 먹으며 건더기 더 달라고 한다고 흉을 보는 건 아닌지 해서 눈치가 보였다. 그래도 말이나 해 보자며 용기를 내었다. 모기만 한 소리로 더듬더듬 말했다. “여기… 건더기 좀 더….”

사장님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시더니 대접 한가득 건더기를 퍼 오셨다.

“한때는 대통령보다도 더 유명하셨던 분들이셨잖아요!” (그분의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니 불편해하시지 않길 바란다)

‘이크, 누군지 벌써 다 알아버리셨다는 거 아냐. 그런 줄 알았으면 더 달라고 하지 말 걸’ 하고 잠시 후회가 되었다.

한 대접을 뚝배기에 쏟아부으니 또다시 한 가득이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2인분을 먹은 셈이다. 이게 다 마이크로바이옴 때문이다.

마이크로바이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난 석 달 동안, 많은 걸 느낀다. 우선 우리의 먹을거리가  참 다양하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었다. 농산물 직판장에 가서 껍질 있는 야채들을 보물처럼 담아 오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의 산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그냥 있는 재료를 다 꺼내어 썰어 한 접시에 담았는데, 마치 알록달록 수채화를 그린 것 같은 한 접시가 되었다. 자연의 색깔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이렇게 귀한 작물을 키워낸 손길에 감사했다.

천종식 박사의 주장처럼 이제는 칼로리를 기준으로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장내 미생물을 기준으로 음식과 요리를 재구성해야 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고 자신이 CEO가 되어 장내 미생물을 잘 경영해야 한다.

힘들게 일한 다음 날 아침, 무엇을 요리해 나를 위로할까? 곧 답이 떠올랐다. 야채를 먹자. 예쁘게 담아 먹자. 건강하게 먹자. 색깔 맞춰 먹자.

나를 위해, 나의 ‘장미(장내 미생물)’를 위해 마이크로바이옴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호박과 빨간 방울토마토를 구워 올리브 오일을 뿌린 한 접시, 새송이버섯과 줄기 콩을 볶아 또 한 접시, 그리고 감자는 껍질 채 익혀 따뜻할 때 치즈를 올렸다. 장미들이 기쁜 잔치를 벌이니 나도 힘이 났다. 이제 또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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