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회장‧사무장 ‘노인일자리’ 배제 지침 논란 “식사도우미 할 사람 없는데 못하게 막아”
경로당 회장‧사무장 ‘노인일자리’ 배제 지침 논란 “식사도우미 할 사람 없는데 못하게 막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12.18 11:01
  • 호수 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년도부터 경로당을 사업장으로 하는 식사도우미, 청소도우미 등 노인일자리 사업에 경로당 회장과 사무장은 참가할 수 없도록 지침이 변경돼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한 경로당에서 식사도우미 어르신이 음식을 차리는 모습.
내년도부터 경로당을 사업장으로 하는 식사도우미, 청소도우미 등 노인일자리 사업에 경로당 회장과 사무장은 참가할 수 없도록 지침이 변경돼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한 경로당에서 식사도우미 어르신이 음식을 차리는 모습.

“부정수급 막는다지만 젊은 노인이 없는 농어촌 경로당 감안 안해”

경로당 회장들은 무보수로 봉사만… 답답함에 회장직 사퇴 잇따라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강원도의 A경로당 박옥희(가명) 어르신은 최근 경로당 회장에서 물러나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노인일자리 중 하나인 행복도우미 사업에 참여해 경로당 회원들의 식사를 준비해 온 그는 2021년부터 경로당 회장과 사무장(총무)이 경로당에서 진행되는 노인일자리에 참여할 수 없도록 지침이 변경되자 고민 끝에 회장직을 포기한 것이다. 박 어르신이 회장으로 있던 경로당은 대부분 어르신들이 고령이어서 마땅히 식사를 준비할 사람이 없어 박 어르신이 하지 않으면 식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는 “다른 노인일자리로 옮길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경로당 어르신들이 식사가 불가능해져 회장직을 포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2021년 노인일자리 접수가 활발히 진행되는 가운데 수요처가 경로당인 식사도우미, 청소도우미 등 사업에 한해 경로당 회장과 사무장의 참여를 막아 논란이 일고 있다. 부정수급 사례가 발생해 이를 방지하는 차원이라곤 하지만 고령화로 일할 사람이 없는 경로당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자체들은 경로당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각 경로당별로 식사 및 청소 업무를 맡아주는 노인일자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초연금을 받는 어르신 중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일자리를 신청하는데, 박 어르신의 사례처럼 상당수 경로당에서 회장과 총무가 참여하고 있다.

문제는 간혹 발생하는 부정수급 사례다. 노인일자리 참여자는 일지에 서명을 한 후 해당 사업장의 대표에게 서명을 받아야 한다. 경로당에서는 회장이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면 사무장이 서명을 하고, 사무장이 참여자라면 회장이 서명을 해주는 식으로 운영돼 왔다. 그런데 일부 경로당에서 회장이 참여자 서명과 대표 서명을 둘 다 하면서 의심사례가 발생한 것이다. 

B지회 관계자는 “부정수급 사례는 극히 드물다”면서 “대부분은 규정대로 일지에 서명하고 확인까지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정수급을 막기 위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지난해 일자리 지침을 변경해 수요처 관계자는 해당 수요처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조항을 마련했다. 이에 젊은 회원들이 비교적 많은 도시경로당은 취지를 이해하고 회장‧사무장이 다른 노인일자리로 대부분 반발없이 전환했다.  

하지만 농어촌에 위치한 경로당이 문제였다. 회원 대부분이 80대 이상인 곳이 많아 그나마 젊은 어르신이 경로당 회장을 맡고 노인일자리 사업에도 참여해 식사와 청소를 도맡았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해당 지침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경로당 회장과 사무장이 이를 맡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당국은 내년부터 이 조항을 좀더 강화시켰다. 최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노인일자리 대행기관에 보낸 지침에 따르면 ‘2021년부터 수요처 관계자는 해당 수요처에서 활동 불가’라고 적시한 후 수요처 관계자를 ▷해당 수요처 의장(대표) ▷수요처 근로계약에 의한 소속직원 ▷참여자 활동 관리 또는 활동 내용을 확인하는 자 등으로 명시했다. 즉, 경로당 회장과 사무장 등이 경로당에서 진행되는 모든 일자리에 참여할 수 없도록 못박은 것이다.

C지회 관계자는 “우리 지회의 경우 30명이 넘는 회장님들이 식사도우미로 활동했는데 지침 변경으로 인해 고민하다 대부분 회장직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결정해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불평등 문제는 자연스럽게 경로당 회장 활동비 문제로도 연결된다. 경로당 회장들은 현재 경로당 문을 여닫는 일부터 시작해서 경로당 재산관리와 화재 도난 방지 등 안전사항에 대한 업무를 무보수로 맡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회원들의 체온 체크와 실내외 소독 등 방역 관리자 역할을 추가로 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월 30만원의 활동비를 받는 이‧통장보다 더  많은 업무를 맡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이러한 경로당 회장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현실에서 경로당에서 진행하는 일자리 사업까지 제한하는 것은 역차별이라는 주장이다.

이용희 충남 태안군지회장은 “경로당 회장에게 활동비를 지급할 여력이 없다면 최소한 노인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우선권이라도 줘야 하지만 되레 참여를 제한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침 변경을 큰 반발 없이 수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지역만 예외로 한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개발원 관계자는 “사업의 투명성을 위해 경로당 관련 노인일자리만 참여하지 못할 뿐이고 그 외 모든 일자리는 아무 제약이 없다”면서 “당장 지침 변경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