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사람은 죽을 때 무슨 말을 할까”
[백세시대 / 세상읽기] “사람은 죽을 때 무슨 말을 할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0.12.18 14:03
  • 호수 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은 죽을 때 무슨 말을 할까.

94세의 나이에도 매일 환자를 돌보던 여의사 한원주 매그너스 요양병원 전 내과 과장. 그녀는 지난 9월 30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나기 20여일 전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환자를 진료하고 위로했다. 그녀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도 환자 치료에 도움 되는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 의학 세미나도 꾸준히 찾을 정도로 의사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어떨 땐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낫기도 한다”는 지론으로 환자를 따뜻하게 돌봐왔던 그다운 말이다. 

박희병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모친이 치매로 90세에 숨지기까지 한두 마디씩 겨우 입 밖에 꺼낸 말들을 기록했다. 박 교수의 모친은 2018년 10월부터 와병생활에 들어가 이듬해 9월, 말기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 교수는 휴강을 반복하며 모친의 병상을 지켰다.

박 교수의 기록중 일부를 옮긴다.

“여기 새가 많이 날아온다.”

국립의료원 1인실에 계실 때인 1월 하순에 한 말이다. 병실 창밖의 나무에 직박구리나 참새 같은 겨울새들이 날아와 앉곤 했다. 엄마는 새들이 찾아오는 것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작년 봄 삼각지 집 침실의 창문으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의 벽돌 틈으로 참새 두 마리가 들고 나고 하더니 어느 날 새끼를 낳아 식구가 다섯이 되었다. 새끼들은 몸집이 자그마했다고 한다. 엄마가 이를 처음 발견했는데 엄마는 늘 창가에서 이 참새들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 한다. 

“느그 아버지는 집에 있나?”

아버지는 아흔 다섯의 나이에도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의 엄마를 찾았다. 그때마다 집에서 키위를 갈아 주스를 만들어 갖고 와 엄마에게 떠먹였다. 북부병원은 집에서 멀어 한 시간 이상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이틀에 한 번 꼴로 꼭 다녀가셨다. 엄마는 아버지가 올 시간이면 늘 모로 누워 복도를 바라보며 아버지를 기다리셨다.

“여보! 여보!”

주무시다가 하신 잠꼬대다. 엄마는 잠자다 아버지를 자주 찾았다. 엄마는 18세인 1947년 12월에 아버지와 결혼했다. 그러니 부부가 함께한 햇수가 72년이다. 젊은나무들은 늙은나무들 마음을 알기 어렵다. 3,40년을 산 부부가 7,80년을 산 부부의 두께를 어찌 요량할 수 있겠는가.

“집에 가자 어서 가자 이 손 잡고 어서 가자.”

아버지의 일기에 적힌 글이다. 엄마는 양다리를 모아 세우고 양팔로 침대를 잡더니 비상한 눈초리로 이렇게 말하며 팔에 힘을 주었다. 아버지는 당황해 “여기가 병원인데 병이 나아야 가지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계속하다가 힘이 빠졌는지 멍한 눈초리로 아버지를 보며 원망하는 것 같았다. 

박 교수의 모친은 마지막에 “많이 힘들어요”, “하늘이 참 곱다”, “여보”라는 말들을 남겼다. 눈을 감는 순간에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사람은 마지막 순간까지 과거의 기억들, 가족들, 인연을 이야기하는 가보다. 여의사 한원주도, 박 교수의 모친도 여전히 세상을 관찰했고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었고 평소에 하던 말들을 했고 늘 해오던 걱정들을 했으며 늘상 눈을 주곤 했던 대상들에 눈을 주었다. 

이 글의 일부는 박희병 교수의 저서 ‘엄마의 마지막 말들’(창비)에서 인용했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