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미술관 ‘로즈 와일리’ 전… 45세에 붓을 쥔 86세 영국 화가의 서울 나들이
한가람미술관 ‘로즈 와일리’ 전… 45세에 붓을 쥔 86세 영국 화가의 서울 나들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0.12.18 14:45
  • 호수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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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영화 ‘페이퍼보이’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니콜 키드먼의 초상을 그린 ‘NK'’
사진은 영화 ‘페이퍼보이’ 시사회에 참석한 배우 니콜 키드먼의 초상을 그린 ‘NK’

일흔 살 넘어 주목받기 시작, 세계적 작가로… 회화 등 150여점 선봬

유명 여배우 그린 ‘NK’, ‘레드 페인팅 새, 여우원숭이와 코끼리’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은 지난 9월 20일 열린 사우스햄튼과의 경기에서 무려 4골을 몰아넣으며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국민들을 모처럼 웃음짓게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날 손흥민의 골세레모니가 묘사된 그림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전시돼 있었다. 다만 모습은 조금 색달랐다. 마치 어린아이의 낙서 같았다. 더 놀라운 점은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로즈 와일리가 올해 86세라는 것이다.

칠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주목받기 시작해 세계적인 화가로 자리잡은 로즈 와일리의 열정 넘치는 미술 세계를 소개하는 ‘Hullo Hullo, Following on: 로즈 와일리’ 전이 내년 3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그녀의 대표작 150여점을 선보인다.

영국 켄트주 출신인 로즈 와일리는 화가를 꿈꾸며 미대에 진학했다. 하지만 21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서 20여 년간 평범한 가정주부로의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러다 그녀가 다시 그림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은 런던에 위치한 영국 왕실 예술 학교(Royal College of Art)에 입학하게 되면서부터이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45세였다.

뒤늦게 다시 붓을 손에 쥔 그녀가 빛을 발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여 년이 더 지나서이다. 2010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영국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선정할 때까지 수십 년을 이름 없는 화가로 살았다. 이후 그녀는 테이트 미술관, 런던 서펀타인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며 대중적인 사랑을 얻었고 2018년에는 영국 왕실 문화계 공로상을 받았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의 세레모니를 그린 작품.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손흥민 선수의 세레모니를 그린 작품.

현재는 독일 출신의 갤러리스트 ‘데이비드 즈워너’의 이름을 딴 뉴욕의 유명 갤러리에 전속작가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명성을 얻었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는 ‘제프 쿤스’ 등 유명 예술가가 소속된 세계 3대 갤러리 중 하나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덟 개의 공간으로 나눠 그녀의 예술 세계를 조명한다. 영화광이기도 한 로즈 와일리는 영화 속의 한 장면을 가져와 자르고 클로즈업하며 색다르게 풀어낸다. 영화 프레임 같은 가로형 캔버스를 사용하고 대형 패널을 순서대로 나열하며, 글자들을 빼곡하게 넣은 작품은 마치 영화의 스토리보드를 보는 듯하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 영화 ‘페이퍼보이’의 시사회에 참석한 니콜 키드먼의 초상을 그린 ‘NK(Syracuse Line Up)’이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 위를 걸어가는 뒷모습을 천진난만하게 그려 보는 이들을 미소짓게 만든다. 

또한 그녀는 독창적인 작업 스타일을 인정받아 영국을 대표하는 현대 미술관인 테이트 모던의 정식 회원이 됐다. 이를 통해 그녀의 작품들은 특별한 사람만 출입이 가능한 VIP룸에 내걸리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테이트 모던 VIP룸에 전시돼 있는 회화, 조각 작품을 소개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레드 페인팅 새, 여우원숭이와 코끼리’(Red Painting Bird, Lemur & Elephant)이다. 빨간색 물감만을 활용해 새, 여우원숭이, 코끼리를 순차적으로 그린 대작으로 그녀의 독특한 미술 세계를 잘 보여준다. 

로즈 와일리는 주로 기억 속 이미지를 소재로 작업을 하지만 욕실 안 거미 한 마리, 무릎 위의 고양이 페트(Pete)의 발가락 등 현실에 존재한는 것에서도 영감을 받기도 한다. 특히 동물, 새, 곤충, 나무, 꽃 등 자연 요소들은 로즈 와일리가 사랑하는 소재다. 이러한 자연물을 실제 크기나 비율을 무시한 채 같은 크기로 표현하기도 하고, 단순화하거나 오버랩해 그녀만의 생명체로 재탄생시킨다. 올해 그린 신작인 ‘검은 고양이와 검은 새’(Black Cat and Black Bird)가 이를 잘 보여준다. 새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고양이를 익살스럽게 표현한 재미있는 작품이다.  

열렬한 축구팬인 남편의 영향을 받은 그녀는 영국의 유명 축구팀인 리버풀과 첼시, 아스널 등을 좋아하게 됐다. 결국 축구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작품 세계로도 이어졌다. 손흥민을 비롯해 선수 각자의 매력 포인트와 신체적 특징을 포착해 표현한 작품들은 흥미를 자아낸다.

이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는 권순학 작가가 직접 촬영해 재구성한 로즈 와일리의 아틀리에가 소개된다. 영국 켄트 지방에 자리한 작가의 작업 공간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작품 세계를 보다 잘 이해하게 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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