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로 다시보는 한국 명작영화 7] 씨받이, 대물려 대리모가 된 소녀 옥녀의 비극적인 삶
[유튜브로 다시보는 한국 명작영화 7] 씨받이, 대물려 대리모가 된 소녀 옥녀의 비극적인 삶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1.04 13:33
  • 호수 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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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받이'는 강수연에게 아시아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지만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다. 사진은 극중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옥녀를 연기한 강수연(오른쪽)과 윤 씨를 분한 방희의 모습.
'씨받이'는 강수연에게 아시아 최초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지만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실패했다. 사진은 극중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옥녀를 연기한 강수연(오른쪽)과 윤 씨를 분한 방희의 모습.

강수연에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안긴 작품… 임권택 연출

조선시대 배경으로 남아선호, 여성 경시 풍조 우회적으로 비판 

[백세시대=배성호기자] 1987년 9월 9일,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 폐막식이 열린 주상영관 ‘팔라초 델 시네마’에서 여우주연상이 발표되자 객석의 영화인들은 모두 놀란다. 이제 겨우 21세밖에 되지 않은 무명의 동양 배우가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호명된 것이다. 헌데 정작 수상 당사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씨받이’(1986)를 통해 아시아 최초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한 강수연 이야기다.

강수연을 일약 최고의 배우로 등극하게 한 ‘씨받이’는 임권택 감독의 작품으로 남아선호사상 아래 비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임권택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계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고 훗날 칸영화제 감독상을 거머쥔다. 

영화 ‘씨받이’는 조선시대 양반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신분이 낮은 여성의 몸을 빌어 아이를 낳았던 풍습을 소재로 삼았다. 작품은 이 풍습을 죽은 이를 위해 산 자가 희생되는 악습으로 규정짓고 이 악습으로 인해 한 여성이 생을 마감하는 사건을 그린다. 

명문가의 종손 신상규(이구순 분)와 그의 아내인 윤 씨(방희 분)는 금슬이 좋지만 안타깝게도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윤 씨는 민간의 비방이란 비방은 모두 시도해 보지만 나이 서른이 가까워오도록 임신이 되지 않자 점점 불안감을 느낀다. 결국 상규의 어머니와 숙부 신치호​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특단의 방편으로 씨받이를 들이기로 결정하고 신치호는 직접 간택에 나선다.

당시 조선에는 어미와 딸이 대를 이어 씨받이 역할을 해 생계를 유지했고 씨받이들이 모여 사는 이른바 씨받이 마을이 곳곳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치호가 향한 곳은 이러한 씨받이가 모여 사는, 성씨가 없는 여자들만이 사는 동네였다. 

입구에서 그는 송아지를 쫓는 십대 후반의 철부지 소녀 옥녀(강수연 분)와 마주친다. 옥녀는 씨받이었던 필녀(강형자 분)의 딸이다. 씨받이가 아들이 아닌 딸을 낳을 경우 양녀로 들이지 않고 친모가 키우게 했는데 필녀가 그런 경우였다. 

신치호는 마을의 어른에게 대리모 세 사람을 추천받는다. 그중에는 남아를 연달아 셋이나 낳은 대리모도 있었지만 신치오는 셋 다 탐탁치 않았다. 대신 그가 떠올린 것은 에너지가 넘치는 옥녀였다. 결국 그는 아직 한 번도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옥녀를 씨받이로 간택한다. 필녀는 자신의 딸이 아직 어리다는 것을 이유로 간택을 거절하려 하지만 아들을 낳아 주기만 하면 논 열마지기를 주겠다는 제안에 결국 요구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시작된 첫 합방날, 상규는 처인 윤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옥녀의 방에 들어간다. 씨받이까지 들여서 대를 잇는 것이 못마땅했던 그는 옥녀 옆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되레 윤 씨가 곧 “묘시이니 자리에 들라”, “동터 올 무렵이니 어서 시작하라”, “너무 깊지 않고 한치 두 푼 길이에서 끝내라”라며 채근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윤 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대를 잇기 위한 첫걸음을 뗀다.

이후 상규는 옥녀의 빼어난 용모에 사로잡혀 그녀를 총애하게 된다.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에 부인 윤 씨는 괴로워하고 옥녀를 질투하게 된다. 옥녀는 임신을 하게 되고 온 집안이 나서서 옥녀를 떠받들게 된다. 이에 옥녀는 잠시 자신의 처지를 망각하고 상규를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필녀는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딸을 타이르지만 그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옥녀가 아들을 낳는다. 환희는 잠시였다. 곧장 옥녀의 아이는 윤 씨의 품에 안기고 신 씨 종가는 경사를 맞는다. 여느 씨받이의 운명처럼 옥녀는 아기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그날 밤으로 떠날 것을 종용받는다. 처량하게 쫓겨난 옥녀는 1년 후 자신의 아들이 있는 집 근처에서 목을 매 생을 마감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남아선호사상과 여성들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다. 작품은 조선시대 이야기를 그리면서 이러한 시대 분위기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특히 왈가닥 소녀로부터 비극적 결말을 맡는 대리모의 모습까지 연기한 강수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강수연은 소녀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엄마로 서서히 성장해가는 옥녀를 섬세하게 연기하면서 당시 여성들이 느낀 절망과 비극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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