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경로당은 마을의 당산나무 같은 존재”
[백세시대 / 세상읽기] “경로당은 마을의 당산나무 같은 존재”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1.09 14:29
  • 호수 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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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로당은 고려 공민왕이 피난길에 쉬다가던 마을에 있어요.”

“우리 경로당은 선로를 깔던 철도청 직원들이 퇴직해 만들었어요.”

“우리 경로당엔 족욕탕도 있어요.”

영주시지회가 발간한 ‘선비고을 영주의 경로당’.
영주시지회가 발간한 ‘선비고을 영주의 경로당’.

경로당의 다양한 사연을 담은 책이 나왔다. 대한노인회 경북 영주시지회는 최근 ‘선비고을 영주의 경로당’이란 제목의 두툼한 책을 펴내 전 경로당에 배포했다. 

A4용지 크기, 760쪽에 달하는 이 책에 영주시지회 전체 357개 경로당의 창립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사와 구성원들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노인회 사상 이처럼 전 경로당의 면면을 집대성한 책 발간은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경로당은 마을의 유래와 특징을 대변하고 있다. 풍기읍에 위치한 성내2리 경로당 벽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금동용형당간두 동판이 부착돼 있다. 새마을사업 때 골목길 하수도공사 굴착작업 중 발굴된 이 용머리 조각(높이 65cm)은 통일신라시대 유물로 보물 1410호로 지정돼 원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승천의 기상을 보여주는 용머리는 이 지역이 성스러운 명당임을 나타내는 징표로 주민들의 마음에 각인돼 있다. 

영주는 선비를 많이 배출해 ‘선비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안정면 용산2리경로당이 위치한 용산리에는 선비의 바탕을 이룬 두 집안의 종택이 있는 관계로 ‘선비의 마을’이란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 경로당 한편에는 시에서 운영하는 한옥체험관이 있어 과거 선비의 체취와 생활상을 체험해볼 수도 있다. 이곳에는 회헌 안향 선생의 동상이 서 있으며 동상 아래 비석에는 안향 선생이 국자감 유생들을 대상으로 가르쳤던 ‘안자육훈’이 새겨져 있다. ‘선비가 지향하는 성인의 도가 일상생활 윤리의 실천에 있다’는 의미다.

경로당 설립 배경도 흥미롭다. 풍기읍 사랑방경로당은 6·25참전유공자 모임으로 시작됐다. 가장 어려웠던 시기를 견뎌낸 초인적인 유전자가 형성된 덕분인가. 이 경로당에는 94세 어르신이 손수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밥을 짓고 고기를 볶아 반찬준비를 한다고.  

6·25와 관련해 특이한 경로당이 또 있다. 휴천3동에 위치한 6·25철도참전유공자경로당이 그것이다. 이 경로당은 6·25철도참전유공회가 창단했다. 철도참전 유공회는 전쟁 당시 군대에 가야했지만 사정상 철도청에 근무하는 조건으로 군복무를 대신한 이들의 모임이다. 

그런가 하면 인접한 마을에 퇴직 경찰들로만 구성된 경로당도 있다. 휴천3동 재향경우회 경로당이다. 평생 사회봉사를 일상처럼 해온 경찰답게 회원들은 이 시간에도 학교, 건널목, 지역 행사장에서 청소년 선도, 거리교통질서, 폭력예방활동을 펴고 있다.  

경로당이 마을의 특색사업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문수면에 위치한 우곡경로당은 매년 콩 1t을 수확해 매주 500개를 만들어 자매결연을 맺은 대구시 수성구 아파트단지에 전량 판매해 700만원이란 고소득을 올린다. 이 소득으로 경로당이 풍족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익금의 일부를 마을에 나눠주기까지 한다. 이 사업이 마을활성화사업으로 인정받아 영주시로부터 우수경로당 상(9회)도 받고 지회로부터도 우수경로당 지정도 받았다. 

이 책을 들여다보면 영주의 까마득한 과거와 활기차게 살아가는 현재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듯하다. 무엇보다도 경로당이 단순히 노인의 쉼터가 아닌 소중한 역사의 공간이자 후손들에게 온고지신(溫故知新·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을 가르쳐주는 ‘당산나무 같은 존재’라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황기주 영주시지회장은 “작년 6월부터 12월까지 행복도우미 20여명과 직원들이 마을 곳곳을 돌며 경로당 회장, 총무들과 인터뷰하고 자료 수집하고 사진을 찍는 고단한 작업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물”이라며 “영주 어르신들이 살아온 생애와 업적을 정리했다는 의미를 넘어 후세에 남을 만한 큰 자산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에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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