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새로운 달력을 맞으며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새로운 달력을 맞으며 / 오경아
  • 오경아 작가,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1.01.09 14:37
  • 호수 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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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작가, 가든디자이너
오경아 작가, 가든디자이너

하늘의 해, 달, 별 관찰하며

자연의 규칙을 알아냈던 것처럼

2021년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찾아내야 할 때가 아닌지

지난해보다 추운 겨울임이 틀림없다. 다행히 남쪽으로 큰 창을 낸 내 작업실엔 햇볕이 종일 들어와 추위 걱정 없음에 감사한다. 바깥 정원 생활을 할 수 없는 이 겨울엔 찾아와주는 새들과 작은 산짐승이 반갑기만 하다. 산딸나무에 걸어둔 사과에는 직박구리가 온종일 찾아들고, 바닥에 뿌려 준 쌀을 먹기 위해 예닐곱은 족히 되는 참새 대가족이 찾아온다. 창문 바로 앞에 놓인 돌확에 물은 가능하면 얼지 않게 녹여주고, 채워주려 한다. 그 물을 먹으러 딱새와 물새가 찾아들고, 우리 동네 터주 중 하나인 흰 고양이도 들락거린다.

남편과 나는 해마다 낙엽이 지고 난 후, 사과를 꽂을 수 있는 모이 걸이를 산딸나무에 걸어둔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이 사과를 먹으러 오는 직박구리는 늘 한 마리다. 처음에는 혼자 오다가 어느 순간 두 마리가 같이 오는 때가 있는데 우린 그때가 일종의 썸타는 시즌임을 알게 된다. 

사과를 걸어놨다고 무작정 오는 것도 아니다. 수년째 지켜보다 보니 직박구리가 찾아오는 시기가 12월 말부터 2월 정도까지임을 알게 됐다. 그 이후에는 아무리 사과를 걸어두어도 찾아오지 않는다. 일종의 그들의 규칙이 있는 셈이다. 

우리 동네 흰 고양이도 아무렇게나 다니는 것 같지만 꼭 다니는 길만 다닌다. 하루 동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일종의 규칙처럼 정확하게 다닌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그런데 실은 모든 자연이 이런 규칙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이 지구가 하루 동안 한 바퀴 자전을 하고, 열두 달 동안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돌고, 달은 30일에 걸쳐 지구를 보며 돈다. 이런 규칙 속에 우리의 삶도 진행되는 셈이다. 

고대인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의 해, 별, 달을 관찰하며 이런 규칙을 알아내려고 애썼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하늘의 별이 늘 같은 자리에 있지 않고, 돌고 돌아 365일이 되는 날, 다시 원래 그 자리로 돌아옴을 알았다. 겨울철 남쪽 하늘에서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보이는 87개의 별의 조합 중 유난히 빛나는 시리우스가 나일 강 위에 떠 오르면 이집트인들은 이제 나일 강의 시즌이 시작됐음을 짐작했다. 

365일의 규칙을 알게 된 건 이런 관찰 덕분이다. 달의 찌그러지고, 다시 커지는 과정을 관찰하며 30일의 규칙을 알아냈고, 이 규칙을 담은 것이 달력이다. 영어의 ‘calandar’ 역시도 ‘calare= 새로운 달을 알려주다’라는 것이 어원이다. 

인류가 이렇게 하늘, 별, 달을 관찰하고, 숫자로 표현을 하고, 이걸 널리 알리려 했던 것은 미래에 대한 예측 때문이었다. 느닷없이 닥치는 모든 일이 실은 느닷없음이 아니라 정교한 자연의 규칙임을 알아내고, 그걸 통해 우리의 미래를 미리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신년 운수를 점치는 일에 나도 모르게 솔깃해지는 것도 우리 선조가 수천 년에 걸쳐 물려 준 이 학습의 유산이기도 하다. 하늘의 별을 보고, 점을 쳤던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보며 이 우주, 자연의 규칙을 알아내 우리의 삶을 대비하고자 했음이다. 

2020년 한 해 동안 나는 유난히 하늘을 많이 올려다봤다. 해, 별, 달을 올려다보며 이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예측해보려고 애를 썼다. 2021년은 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려주기 힘들겠지만, 그 옛날 우리 선조가 하늘을 바라보며 이 우주의 규칙을 알아내려 애썼던 것처럼, 차분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그 무엇을 찾아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플로티누스(205 ~270)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단서가 가득하다. 뭔가를 통해 또 다른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현명한 자다.” 지금 이 현명함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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