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문 닫는 맛집들이여, 제발 버텨주기를…”
[백세시대 / 세상읽기] “문 닫는 맛집들이여, 제발 버텨주기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1.22 13:52
  • 호수 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석동(68) 전 금융위원장은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 외환위기 등 한국 경제의 고비마다 구원투수로 투입된 금융 전문가이다. 그의 형은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한 건축가 김석철(1943~2016년)이다. 김 전 위원장은 원래 고대사 연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요즘은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로 고대사 연구와 강연에 전념하고 있다.

그런 그가 뜻밖에도 자신이 즐겨 찾는 맛집을 모아 ‘한 끼 식사의 행복’(김영사)이란 책을 펴냈다. 그 책에 전주 전통 비빔밥집 ‘고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해놓았다. ‘서울 명동에 있는 식당의 본점은 전주시 덕진동에 소재한 가게로 60년 이상 전주비빔밥을 요리해온 조리명장의 맛을 지켜왔다. 비빔밥에 나오는 황포묵을 매일 전주에서 가져다가 쓰고 밥은 사골 국물로 지어 잘 비벼지도록 약간 되직하게 해 입맛을 더한다’. 이 글에 혹해 지난 주말 식당을 찾았다. 칼바람을 헤쳐 가며 명동 뒤안길을 헤매다 발견한 ‘고궁’, 그런데, 아뿔싸.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코로나 사태로 영업을 중단했다는 내용이 적힌 흰 종이만 나풀거리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로 유명 식당들이 줄줄이 폐업하는 걸 바라만 보기엔 너무나 안타깝다. 역시 명동에서 곱돌 비빔밥을 처음 선보이며 3대째 가업을 이어오던 전주중앙회관도 지난해 12월 폐업했다. 육개장으로 40여년 대구 시민의 사랑을 받던 중구 ‘진골목식당’도 지난해 11월 폐업 신고를 했다. 이 식당 건물은 100년이 넘는 고택으로 소설 ‘마당 깊은 집’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선 작년 초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레스토랑이 6개 중 1개꼴로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와 조금 다른 음식문화가 드러나 눈길이 간다.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에 위치한 ‘아엠’(AM)은 세계적 권위를 가진 식당평가소개서 ‘기드 미슐랭’으로부터 별 3개를 얻어 유명해진 식당이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별 3개 식당은 AM을 포함해 30곳밖에 없다. 이 식당의 요리사 알렉상드르 마지아는 코로나 봉쇄령으로 식당 내부 영업이 중단된 지난해 10월부터 마르세유 시내에 푸드트럭을 몰고 나와 길거리 음식을 팔고 있다. 그의 푸드트럭에선 캐비아를 올린 훈제 가지와 송아지고기로 만든 샌드위치가 인기다. 하루 60개 한정으로 가격은 14유로(약 1만8700원). 그는 “봉쇄령으로 식자재 유통업자들의 생계가 어려워져 그들을 돕고자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음식은 단순히 생명 유지의 수단이 아니다. 음식 하나에 삶의 소중한 순간이 담겨있기도 하다. 기자는 언젠가 경남 남해 부두 근처 대구탕 집에서 맛본 뽀얀 대구탕 국물과 대구알 무침을 잊지 못한다. 그 무렵 기자는 오랜 서울생활에 지쳐 하동군 악양면으로 내려가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한 숙소에서 쉬고 있던 때였다. 지금도 대구탕 전문식당을 찾을 때마다 당시의 힘겨웠던 순간과 함께 혀와 뇌 속에 기억된 부드럽고 달콤한 대구 생선살의 맛을 떠올린다.  

코로나 사태로 매출이 반 토막 나고 적자가 쌓여 숨쉬기조차 힘들겠지만 프랑스 요리사처럼 하다못해 길거리 포장마차로 갈아타고서라도 오랜 세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맛과 정성을 이어갈 수는 없을까. 

전통과 역사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쉽게 무너지지 않고 쉽게 잊혀지지 않는 힘과 저력이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식당 가운데 그 집을 ‘맛집’이라며 주위에 소개하고 한결같은 기대와 사랑, 관심을 갖고 찾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정든 맛집들이여, 어렵고 힘들더라도 제발 나약하게 무너지지 말고 어떡해서든 그 자리에서 버텨주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 그래야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한 끼 식사의 행복’ 후편을 펴낼 수 있지 않겠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