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정치의 파열음이 들린다”
[백세시대 / 세상읽기] “정치의 파열음이 들린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2.26 13:41
  • 호수 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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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에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다. 이 정부는 내편끼리 똘똘 뭉쳐 한 방향으로만 치달으며 행여 토라도 달면 “너 죽을래?”(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왜 우리 편에 안서냐”(박범계 법무부 장관)라고 위협하며 배척한다. 그 와중에도 겁 없이(?) 할 말 하고 소신을 밝히는 이들이 있어 반갑고 어느 한편으론 가슴 찡하기까지 하다. 대표적인 이들이 최재형 감사원장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2월 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감사 등과 관련해 “정책에 대해 수사하고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공무원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다”고 사안의 본질과 동떨어진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

그러자 최재형 감사원장은 “대통령의 공약과 정책 수행은 제대로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책을 수행해도 된다는 주장은 아니겠지요”라고 반문해 대통령을 옹호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질문임을 지적했다. 

최 원장은 이 자리에서 “공무원의 행정행위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된다는 표현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공무원의 행정행위는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표현은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건 아닌 것 같아서 그 정도로 넘어 가겠다”며 난처해진 박 의원 입장도 살려주는 여유를 보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주당에선 ‘월성 1호기 폐쇄는 대선 공약으로 선거를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은 정책’, ‘정책 자체를 감사 또는 수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 등 근거 없는 엉뚱한 반박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방패삼아 국가 이익과 국민 의사를 거스르는 이 같은 주장에 최 원장이 일찍이 “대선에서 41% 지지 밖에 얻지 못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국민 합의를 얻었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과정에서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평가됐다는 감사원 발표 중에 백운규 전 장관이 관련 절차에 관여하고 산업부 직원 등이 관련 자료를 무더기로 삭제한 사실도 드러났다. 원전파일 삭제에 가담한 산업부 사무관은 검찰 조사에서 “나도 내가 신 내림을 받은 것 같다”는 말도 해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최재형은 누구인가.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래 서울·청주지법 판사를 거쳐 대전지법·서울가정법원 법원장 등 판사 외길을 걸어왔다. 2017년 사법연수원장을 맡은 지 얼마 후 문 정부의 첫 감사원장이 됐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법연수원 시절까지 다리가 불편한 동료를 수년간 등에 업고 통학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직접 두 아들을 입양해 키우고, 기부활동을 꾸준히 이어오는 등 미담도 적지 않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의 편향된 인사에 강하게 반발한 신현수 민정수석은 대통령 레임덕 사태를 수면 위로 드러낸 주인공이다. 어떤 의미에선 그도 현 정권과 역방향의 공정과 정의를 실현한 인물 중 하나이다. 자신을 패싱한 채 친정권 고위 검사급이 유임되는 인사가 발표된 직후 지인들에게 “이미 저는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박 장관과는 평생 만나지 않을 것입니다. 법무부와 검찰의 안정적 협력 관계는 시작도 못 해보고 깨졌습니다”라며 사표를 던졌던 것이다. 

국회에서 유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신 수석의 사의 파동 전말을 밝혔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남아 있다. 유 실장은 “인사안 발표는 정상적으로 이뤄졌다”면서도 누가, 어떤 경로로 문 대통령의 의사를 확인하고 사전 승인을 받았는지에 대해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신 수석은 사표 제출 이후 지방에 머물다 결국 청와대로 돌아왔지만 이번 사태는 청와대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신호탄이 됐다.  

앞으로도 문 정부에선 제2, 제3의 최재형·신현수가 이어질 것이다. 이들의 용기 있는 처신은 우리 정치가 정상 궤도를 되찾아 가려는 자연적인 흐름의 하나다. 한편으론 그러기 위한 의미심장한 정치의 파열도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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