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
[백세시대 / 세상읽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3.05 14:24
  • 호수 7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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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검찰총장 사퇴를 불러온 중수청 신설의 귀추가 궁금하다. 윤 총장은 3월 4일, 사퇴의 변으로 “(중수청)은 결국 나를 잡겠다고 발의한 법안인데 내가 그만둬야 끝난다”, “검찰에 남아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했다. 

윤 총장은 사퇴 하루 전까지도 “여당에서 추진 중인 중대범죄수사청 설치로 인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민주주의의 퇴보이자 헌법 정신의 파괴”라고 했다. 그는 또 “내가 밉다고 국민 이익을 인질 삼나, 중수청은 역사 후퇴”, “직을 걸어 막을 수 있다면 100번이라도 걸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중수청 설치법의 핵심 내용은 올 1월에 시행된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에 남게 된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중대 범죄 수사를 법무부 산하 중수청으로 넘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검찰은 수사권을 상실한 채 영장청구와 공소유지만 담당하게 된다. 

윤 총장은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함께 해야지 이를 분리하면 사회적 강자와 기득권의 반칙 행위에 단호히 대응하지 못한다. 법 집행을 통한 정의의 실현이란 결국 재판을 걸어 사법적 판결을 받아내는 일이다. 그리고 수사는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수사, 기소, 공소유지라는 것이 별도로 분리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검경수사권 조정을 한 사람이 바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윤 총창도 당시에 반대하지 않고 수용했다. 그런데 여당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검찰의 수사권을 송두리째 빼앗으려고 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분명하다. 검찰 수사로 청와대가 위협을 받기 때문에 이를 차단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조국 전 장관 가족비리 수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수사 등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계속 이어지자 이를 막기 위해 추미애 전 법무무 장관은 수사지휘권을 박탈했다. 그게 안 되자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지만 그마저도 무산됐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너희들(검찰)이 가진 수사권을 박탈해 중수청을 만들겠다’고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다. 

검찰은 수사권을 가져야 수사지휘를 하고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주문’한다(‘지휘’라는 용어 대신 ‘주문’이다). 이런 권한을 뺏는다는 건 검찰을 생존시키지 않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검찰은 받아들이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권 제도가 시행된 지 2개월도 안 돼 다시 또 제도를 바꾸겠다는 것에 대해 검사들은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이를 모른 척 두고만 볼 수도 없는 게 검찰 총수의 입장이라 ‘저항 후 사퇴’는 윤 총장으로선 출구 전략의 하나이기도 했다.

윤 총장이 강력히 반발했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평생 몸담아온 검찰 조직을 지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지키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의도가 관철이 안 되면 이제는 정치에 나서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현실적으로 윤 총장을 정치에 입문시킨 쪽은 정부·여당이다. 윤 총장은 타고난 검사이지 정치 DNA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윤 총장이 전 정부의 적폐청산을 할 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검찰이라고 추켜세우다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하자 ‘이런 배은망덕한 친구가 있나, 자기를 키워준 우리에게 칼날을 들이대?’ 하면서 핍박을 했고 국민이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윤 총장의 정치 입문도 여당의 탓이요 그를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서게 한 것도 정부·여당이다. 

정치 일각에선 중수청 설치 의도가 불순하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중수청 법안 발의는 황운하 더불어 민주당 의원 등 21명 의원이 같이 했다. 이들 중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거나 재판을 받고 있는 이들이 있어 저의가 의심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황 의원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에서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문재인 대통령의 친구인 송철호 민주당 울산시장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선거 전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 관련 비리를 수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나저나 타겟(윤 총장)이 사라져버렸으니 더 이상 중수청 설립 이유도 없어진 셈이다. 닭 쫓던 개가 지붕 쳐다 보는 격이다.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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