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몸으로 생각하는 공감능력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몸으로 생각하는 공감능력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1.03.12 14:01
  • 호수 7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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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애절한 감성으로 노래 부르거나

남을 돕는 자원봉사 활동도

몸에 배야 자연스럽게 하듯

배려하고 소통하는 공감능력도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혔으면…

# 몇 달 동안 TV에서 인기 절찬리에 방영됐던 미스트롯2 경연대회에 나온 10살 김태연 양의 노래가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단한 가창력과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감정표현은 코로나로 좌절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사하였다. 알고 보니 국악 신동으로 이미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었던 어린이였다. 어떤 심사위원이 “태연이 몸 자체가 음악”이라고 평하였듯이 정말 몸으로 노래를 불렀다. 연습만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독특한 창법을 구사하였다. 난 이 아이 때문에 한동안 트롯에 뿅〜 빠지게 되었다. 태연 양의 어머니가 판소리에 능한 분이고 태교로 판소리를 많이 들려주었다 한다. 유아시절부터 장구 치며 흥얼거리다가 6살에 본격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태연 양은 도제식 훈련으로 다져진 판소리 실력 위에 태아 때부터 잉태된 가요 천재성을 발휘하여 전문 가수 이상의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었다. 

# 10여 년 전 하와이 어느 레스토랑에서의 일이다.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박사로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고 강영우 박사와 개인적인 일로 식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1시간 남짓 식사를 하는 동안 빵 부스러기 하나 떨어뜨리지 않았다. 식사를 다 마친 후, 보통 사람도 식사하다 보면 음식을 좀 떨어뜨릴 수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깨끗하게 식사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오래 전 시력장애인 식사예절을 배운 후 꾸준히 연습을 하니 그렇게 되었다 한다. 장애인인데다 식사까지 지저분하게 하면 주변에서 기피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사고로 시력을 잃은 그는 식사예절만이 아니라 매사를 반듯하게 처리하는 습관을 길들여 그 지위에까지 오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 오래 전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파트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초등학교 1〜2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 아이가 동생과 함께 서있었다. 자기가 속한 걸스카우트를 위해 모금하러 다니는데 5불짜리 초콜릿을 하나 사달라는 것이다. 너무 깜찍하고 귀여워 두 개나 사주었다. 같이 온 꼬마 동생은 나도 빨리 커서 언니처럼 봉사하러 다녀야지 하는 모습이었다. 어린이까지도 모금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미국인들은 봉사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였다. 미국 유수한 대학의 입학사정엔 봉사활동이 중요한 요소로 평가되고, 성인의 절반 정도가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있다. 지역 공익사업이 창의성 있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봉사하는 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 결국 튼튼한 시민사회를 만들어간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어떤 행동을 시도하기 전에 몸이 먼저 자동적으로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너무 익숙해져서 자각하기도 전에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고유수용성감각(proprioception)이라 한다. 1980년대에 신경생물학자 셰링턴(Charles S. Sherrington)이 발견한 것으로 신체의 운동감각적 사고, 즉 ‘몸으로 생각하기(body thinking)’이다. 자전거 타기나 악기 연주와 같이 처음 배울 때는 대단히 의식적이지만 오랜 기간 연습하여 숙달되면 점차 의식하지 않고도 그 일을 잘 할 수 있게 된다. 우린 식사 때 수저를 거의 무의식적으로 사용한다. 유명 피아니스트는 손가락이 음표를 기억한다. 야구선수는 순간적인 감(感)으로 홈런을 친다. 몸이 먼저 일의 처리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몸으로 생각하기라는 생물학적 원리를 한 중요한 사회문제의 해결에 응용해볼 수 있겠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갑질, 감정노동, 스트레스와 관련하여 공감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이지고 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달리 이젠 가정이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의 상황을 이해하고 기분을 같이 느끼는 사람이 존경을 받는다. 공감능력은 소통, 배려, 나눔 등 이타주의를 확장시켜 따뜻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나아가 사회통합을 증진시킨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면 이를 ‘공감경제’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상의 인간관계에서 잘 되지 않는 공감을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무슨 제도나 주위 분위기 때문에 반강제로 하는 게 아니라 즐겁게 공감능력을 발휘하려면 어려서부터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를 갖는 게 필요하다. 공감을 생각하고 계획하기 이전에 몸과 마음이 먼저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손자녀들에게 지혜를 전수하고자 하는 노인들은 그들에게 작은 시도를 권해볼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기, 약한 친구를 도와주기, 좋은 일을 한 친구를 칭찬하기…. 우리가 후손들에게 대단한 것을 유산으로 남기지 못해도 정신적으로 성숙한 것을 추구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만 해도 충분하다.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정치집단들도 극단으로 치닫기만 하는 나라를 걱정하며 다음 세대의 희망을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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