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4.23 14:04
  • 호수 7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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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 코로나 바이러스 억제에 도움이 된다.”

지난 4월 13일 한 심포지엄에서 A기업의 대표 발효음료인 ‘불○○○’에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황당한 발표 이후 마트에서는 일시적으로 해당 제품이 품절되기도 했지만 곧바로 거센 후폭풍이 몰아쳤다.

A기업은 몇 해 전 대리점 갑질 논란으로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불매운동의 효과는 미진했다. 기업의 비윤리적인 행동에 의식 있는 소비자들이 보이콧으로 맞섰지만 1년도 채 가지 못했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초고속 인터넷의 등장, 그리고 SNS의 대중화는 이러한 풍토를 바꿨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기업의 부도덕한 행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에서 잊혀진다. 또 매일 쏟아지는 방대한 정보를 받아들이다 보면 망각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 그런데 온라인 세계의 확장으로 인해 ‘위키백과’, ‘나무위키’ 같은 대중들이 만들어나가는 인터넷 백과사전에 기록이 고스란히 남게 됐다. 또 주요 사건사고는 각종 유튜브 콘텐츠로 제작돼 온라인에 영원히 ‘박제’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기업의 몰상식한 행보가 더이상 용서받을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고 첫 번째로 철퇴를 맞은 것이 A기업이다. A기업은 당시 주가가 110만원을 넘기며 고공행진을 했지만 갑질논란으로 시작된 불매운동의 타격을 받아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해를 거듭할수록 곤두박질쳤다. 일시적일 거라는 낙관적인 예상은 무참히 깨졌고 지난해에는 7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A기업은 이를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대중들의 시선이 일본제품 보이콧으로 옮아가면서 잠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사그라들던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뿐만 아니라 식약처는 4월 15일 “긴급 현장조사를 시행한 결과 A기업이 ‘불○○○’의 예방 효과에 관한 연구 및 연구 결과를 발표한 심포지엄 개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점을 확인했다”며 A기업 관할 지자체에 행정 처분을 의뢰하고 식품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 조치했다. 그리고 19일에는 세종시가 식품표시광고법 위반으로 A기업 세종공장에 2개월의 영업정지 행정처분을 부과한다는 내용을 사전 통보했다. A기업이 5월 3일까지 의견을 제출하면 재검토 후 행정처분을 확정할 예정이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개개인은 지식이 부족할 수 있어도 21세기는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다. 몇몇은 속일 수 있다. 허나 똑똑한 이들이 문제점을 발견하고 이를 널리 공유하는 것이 2021년 현재의 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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