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 하나
바구니 가득 봄을 실어봤어요
꽃 피우고 나니
내 집인 양 편안해지네요
한 오백 년 쯤,
이곳에 터 잡고 살아 볼까요
버려진 공터에 풀꽃이 한창이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어여쁜 꽃들이 지천이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고 눈길을 주는 이는 더더욱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지한 채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이름을 알아주지 않으면 어떤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시간이지 않은가.
처음 이곳에 꽃이 자리잡은 날은 누군가 소중한 손길로 씨를 심어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람 따라서 비 따라서 어딘가로부터 흘러들었을 것이다. 누군가 발견했다면 꽃 피우기도 전에 뽑혀버렸을 것이지만 다행히도 버려진 땅에 뿌리 내린 행운으로 저희들만의 세상을 만들어 또 한 해를 살아내고 있다. 그러나 어느 날 가혹한 철거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뿌리째 뽑혀나갈지 모른다. 그러나, 이 봄날 꽃 피우는 그대들이 있어 아름다운 날들이다. 부디 오백 년 아름다운 봄을 우리에게 선물해다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저작권자 © 백세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