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받기까지 윤여정의 삶
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받기까지 윤여정의 삶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4.30 15:06
  • 호수 7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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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6일(한국시간) 미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리고 포토존에 선 윤여정이 오스카 트로피를 한 손에 쥐고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26일(한국시간) 미 아카데미 시상식이 막을 내리고 포토존에 선 윤여정이 오스카 트로피를 한 손에 쥐고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966년 TBC 3기 탤런트 데뷔… 1971년 ‘장희빈’, ‘화녀’ 성공으로 스타 반열에

결혼‧이혼으로 13년간 공백… ‘생계형’ 배우로 복귀 후 경력 쌓아 연기 인생 정점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저의 첫 감독님이었던 김기영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녀’(1960)를 통해 한국영화의 큰 족적을 남긴 김기영 감독(1922~1998)은 1971년 ‘화녀’를 공개한다. 그는 24살에 불과한 신인 여배우를 주연배우로 발탁했고 그녀의 열연으로 이 작품은 김 감독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지난 4월 26일(한국시간) 미국 유니온 스테이션 로스앤젤레스와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개최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김기영 감독의 이름이 거론된다. 그가 발굴한, 올해 아카데미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수상자인 윤여정의 수상소감을 통해서다.

영화 ‘미나리’를 통해 유수의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휩쓴 배우 윤여정이 끝내 아카데미상도 거머쥐었다. 화녀를 통해 데뷔한지 배우 인생 50년을 맞은 윤여정이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해 ‘기생충’으로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이후 2년 연속으로 거둔 한국영화의 쾌거다. 한국 배우로서 최초이자, ‘사요나라’(1957)의 우메키 미요시 이후 64년 만에 역대 두 번째로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아시아 여성 배우라는 기록도 작성했다.

또 여우조연상 부문에서 77세에 수상한 ‘인도로 가는 길’(1984)의 페기 애슈크로프트, 74세에 수상한 ‘하비’(1950)의 조지핀 헐에 이어 세 번째(73)로 나이가 많은 수상자이기도 하다. 영어가 아닌 대사로 연기상을 받는 건 ‘두 여인’(1961)의 소피아 로렌, ‘대부 2’(1974)의 로버트 드니로, ‘인생은 아름다워’(1998)의 로베르토 베니니(이상 이탈리아어), ‘트래픽’(2000)의 베네시오 델 토로(스페인어), ‘라비앙 로즈’(2007)의 마리옹 코티야르(프랑스어) 등에 이어 여섯 번째다.

윤여정은 함께 후보에 오른 배우 중 유일한 아시아 배우였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마리아 바칼로바(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 △글렌 클로즈(힐빌리의 노래) △올리비아 콜맨(더 파더) △아만다 사이프리드(맹크)와 함께 여우조연상에 이름을 올렸다.

윤여정의 수상 가능성은 일찌감치 예견됐다. 1980년대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를 담은 ‘미나리’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과 관객상을 시작으로 다수의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100개 이상의 트로피를 받으며 수상 행진을 이어왔다. 특히 윤여정은 전미 비평가위원회 등 38개 연기상을 수상했다. 특히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리는 미국배우조합상(SAG)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 차례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오스카 유력 수상자로 떠올랐다.

윤여정은 “스티븐 연, 정이삭 감독님, 한예리, 노엘, 우리 모두 영화를 찍으면서 함께 가족이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정이삭 감독님이 없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을 것”이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윤여정은 3년 후 MBC로 이적한 뒤 1971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영화계에는 1971년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발을 들인 뒤 약 30개의 영화에 출연하며 다채로운 캐릭터로 내공을 쌓았다. 

특히 ‘화녀’는 거장 김기영 감독이 자신의 작품인 ‘하녀’(1960)를 리메이크한 영화로 윤여정은 이 작품으로 제8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10회 대종상 신인여우상을 품에 안았다. 이후 김 감독의 ‘충녀’에도 출연하며 ‘김기영의 페르소나’로 불렸다.

전성기였던 1974년, 윤여정은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배우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 경험으로 이후 예능 프로그램이나 외신 인터뷰, 각종 시상식에서 거리낌 없이 자연스러운 영어로 말할 수 있게 됐다.

무려 13년이라는 긴 공백기를 가진 그는 조영남과 이혼한 뒤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예계에 복귀했다. 그가 최근 외신과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어떤 역할이든 했다”고 밝혔듯 생계형 배우로의 삶을 살았다. 1990년대부터 드라마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굳세어라 금순아’, ‘넝쿨째 굴러온 당신’, ‘디어 마이 프렌즈’ 등 여러 작품에서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연했다.

충무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바람난 가족’(2003), ‘꽃 피는 봄이 오면’(2004),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여배우들’(2009) 등 다수의 히트작에 출연했고 2010년에는 임상수 감독이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작품에 재차 출연, 나이 든 하녀 ‘병식’역을 맡아 제18회 춘사영화상, 제19회 부일영화상, 제47회 대종상, 제31회 청룡영화상 등에서 여우조연상을 싹쓸이하기도 했다.

2016년에 선보인 ‘죽여주는 여자’에서도 성매매를 하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로 불리는 ‘소영’역을 맡아 다소 어두울 수 있는 사회적 주제를 섬세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내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으로 윤여정은 캐나다에서 열린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이후에도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마침내 데뷔 55년 만에 오스카상 수상으로 정점을 찍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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