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노인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품위 있는 삶”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노인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것이 품위 있는 삶”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1.05.14 13:41
  • 호수 7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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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버킷리스트 1호는 대한노인회 지회 순방하며 웰다잉 강연

부천에 버스 도착시간 알려주는 시스템 세계 최초 설치 “보람”

[백세시대=오현주기자] “노인의 무기력하게 쓸려가는 죽음은 아름다운 죽음이 아니다.”

5선 국회의원에서 어느 날 갑자기 ‘웰다잉 전도사’로 변신한 원혜영(70)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의 말이다. 이어 “내 인생의 죽음에 대해서 내가 결정하고 실천하는 게 삶을 품위 있게 만드는 것이며, 가족과 사회의 갈등을 줄여주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5월 10일, 서울 서소문로에 위치한 웰다잉문화운동 사무실에서 원 대표를 만나 웰다잉 확산을 위한 봉사활동과 라이프 스토리를 들었다. 

-‘웰다잉문화운동’은 무엇하는 곳인가.

“내 삶을 마무리하는데 내가 결정하는 일들이 많이 있지 않는가. 그게 무엇이고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것들을 크게 통합해서 생활문화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2019년 만든 시민단체이다. 원래 웰다잉시민운동에서 문화운동으로 명칭을 바꿨다. 차흥봉 전 보건복지부장관이 이사장이고 저는 학계, 의료계 인사들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생전에 연명치료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김훈, 손숙 같은 유명한 분들이 나와서 ‘나이 드는 것’,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같은 주제를 가지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웰다잉포럼도 주관하고, 정책도 연구하고, 나이든 분의 ‘생애보’도 만들어 배포한다. 개인적으론 기관, 단체 초청으로 전국 강연도 다닌다.”

-웰다잉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잘 먹고 잘 살다가 잘 죽는 법’이다. 우리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하나의 단계-출생은 선택하지 못하고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나머지 인생의 모든 단계는 우리가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 계획 하느냐에 따라 더 뜻 있고 가치 있고 보람 있을 수가 있다. 죽음을 외면할 수는 없다. 받아들일 준비, 잘 마무리할 준비를 하는 게 바로 웰다잉이고 웰빙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간의 성과라면.

“연명치료가 과연 좋은 건가. ‘나는 그거 안하겠다’는 생각에서 19대 국회 때부터 국회의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만들어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 정갑연 부의장과 함께 공동대표를 맡아 ‘호스피스 완화치료와 연명치료에 관한 결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노인들이 그 법의 보호를 받게 됐고 ‘나는 인공호흡기 끼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이 100만명에 이른다. 장기 기증과 유언장 작성도 ‘초보’ 수준이지만 관심이 높다.”  

-그나마 화장(火葬) 문화는 성숙돼 가는 분위기다.

“웰다잉의 여러 분야 중에 가장 빠르게 개선된 분야가 ‘화장’이다. 이제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선택한다. 그렇지만 장례문화는 개선할 여지가 많다. 오동나무관, 국산 수의 같은 데에 거액을 낭비한다. 유산의 일정액을 기부하는 것도 정착이 안됐다. 유서도 재미 삼아 써볼 필요가 있다. 유언장대로 하지 않아도 되고 새해에는 찢어버려도 된다. 그걸 쓰면서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는 것이다.”

-상속 등 유언을 남기지 않을 경우 유족 내분이 심하다.

“재산 정리는 꼭 강남의 빌딩 같이 큰 규모의 재산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비록 자그만 연립주택이라도 보증금 몇 천만 원은 평생 모은 귀한 재산이므로 죽을 때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정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모두가 소중한 자식이라 누구를 더 주고 덜 주는 게 미안한 마음에 망설이다 놓칠 수가 있다. 생전에 유산 분배를 확실히 해놓으면 설령 자식들이 섭섭하더라도 부모의 뜻이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그 같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게 어른다운 태도이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태어난 원혜영 대표는 30세 되던 해에 부친의 농장에서 나오는 유기농산물을 가져다 파는 농산물 직판장 풀무원을 창업, 6년간 운영해 100억 매출을 달성했다. 민주화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86년 사업을 지인에게 넘기고 정치판에 뛰어들어 부천시장, 국회의원을 지냈다.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70세부터 새 인생을 살겠다’며 뜻이 맞는 지인들과 함께 (사)웰다잉시민운동을 만들었다. 현재 대한노인회 고문으로 있다.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제15회 백봉신사상, 대한민국 반부패 청렴대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아버지, 참 좋았다’, ‘원혜영의 진격하라’, ‘원혜영의 혁신하라’ 등이 있다.

원혜영 대표를 말하기에 앞서 부친 원경선(1914~2013년)을 빼놓을 수 없다. 원경선은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초·중 교과서에도 그 업적이 실린 풀무원농장의 설립자이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부천에 땅 1만평을 개간해 풀무원농장을 세우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을 위한 공동체를 설립·운영했다. 국내 최초로 화학비료와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을 시작했고 기아와 전쟁, 공해로부터 인류를 건지려는 환경운동, 생명보호운동, 평화운동에 일평생 헌신했다. ‘열린교육’으로 유명한 거창고교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부친에게 받은 교육이라면.

“제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하자 부친이 두 가지를 물으셨다. ‘하나님 기준으로 바르게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그건 자신이 없고 사람의 기준으로는 잘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다른 하나는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부정부패인데 금전의 유혹을 이겨낼 자신이 있느냐’고 하셔서 ‘제가 돈을 벌려면 잘 나가는 사업(풀무원)을 하지 정치를 왜 하겠어요, 그 점에선 염려하지 마시라’고 대답했다.”

-정치 입문 배경은.

“아버지의 가르침이 ‘정의롭게 살아라, 바르게 살라’이다. 정의로운 사회, 민주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정치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 대학 시절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하다 제적도 여러 번 당하고 감옥도 여러 번 가고 그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부천시장 재직 당시 버스 도착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BIS)을 세계 최초로 도입해 시민의 교통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사실을 늘 자랑으로 삼는다. 5년 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에도 적용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몸싸움을 금지하는 국회 선진화법 제정을 앞장 서 주도하기도 했다.”  

-큰 사업체 오너를 지내 재산도 많을 텐데.

“재산이라곤 사는 집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소유했던 풀무원 상표권을 회사에 넘기고 받은 공모주로 부천교육문재단을 만들어 장학사업을 운영 중이다. 지금까지 3000여 명의 중·고등학생들에게 30억원을 전달했다.”

-국내 최고·최대의 시니어주간신문 ‘백세시대’가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일찌기 웰다잉 문제 등 노인 현안에 관해 관심을 갖고 취재하고 보도해온 점을 높이 평가하고 그에 대해 감사를 드린다. 정보화시대에 나이 든 분들이 쉽고 쓸모 있는 정보를 잘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원혜영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왜 잘 나가던 국회의원 그만두고 웰다잉으로 돌았느냐’고 묻자 “국회의장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두고 얼마나 아쉽냐고 많이 얘기들 하는데 그렇게 보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국회의장 다음에 대통령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할 것이다. 일곱 번이나 선출직 공무원을 했는데 더 이상 뭘 바라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대한노인회 전국 245개 지회의 초청을 받아 웰다잉 강연을 하고 그 지역의 명승지도 찾아보고 음식도 즐기자는 것”이라며 웃었다.


원혜영 대표 프로필

▷1951년 경기 부천 출생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졸업 ▷1981년 풀무원식품 창업 ▷민선 2·3기 부천시장 ▷제14·17·18·19·20대 국회의원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대한노인회 고문 ▷부천교육문화재단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오현주 기자 fatboyo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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