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424주년, 가장 오래된 경로당 ‘기령당’을 가다
창립 424주년, 가장 오래된 경로당 ‘기령당’을 가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5.28 15:23
  • 호수 7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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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령당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부터 전면 운영이 중단됐고 최병노 사무장이 매일 나와 경로당을 관리하며 언제든 재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기령당과 최병노 사무장.
현재 기령당은 코로나19로 인해 지난해부터 전면 운영이 중단됐고 최병노 사무장이 매일 나와 경로당을 관리하며 언제든 재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기령당과 최병노 사무장.

코로나로 인해 올 기념행사 못해… 언제든 찾아올 수 있게 문은 개방

1597년 전후 건립 추정… 도지사 등 부임하면 가장 먼저 들러 인사

[백세시대=배성호기자] 지난해 6월 15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완산2길 일대는 인파로 떠들썩했다.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경로당인 ‘기령당’이 문을 연 지 423년이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매년 음력 4월 10일(올해는 5월 21일) 전후로 진행된 창당기념 행사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취소됐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5월 24일 역시 기령당은 조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회원들이 다시 찾아와 쉬어갈 수 있도록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이상칠 당장은 “기령당은 일제강점기 등 여러번 위기를 겪었지만 결국 원상태를 회복했다”면서 “결국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다시 활기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령당의 편액.
기령당의 편액.

기령당은 전주천에서 완산칠봉으로 오르는 비탈골목을 100m쯤 올라가면 나오는, 마을에서 가장 햇살이 잘 드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문에는 기령당(耆寧堂)이라는 편액(널빤지나 종이·비단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문 위에 거는 액자)이 걸려 있다. ‘어르신들이 편안한 집’이라는 뜻이다. 기령당 편액은 근현대에 활동한 유명 서예가 설송 최규상(1891 ~1956)의 글씨로 기품이 느껴진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잔디가 잘 관리된 넓게 트인 마당과 함께 기령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기령당의 기원은 조선시대, 지금의 용머리 고개 동쪽에 지어진 군자정(君子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전주성 함락으로 관련 문서가 전부 소실돼 정확한 건립연도를 파악할 수 없어 1597년부터 운영한 것으로 추정한다. 군자정에서 나이 많은 전주 유지들이 활을 쏘며 친목을 다졌는데 이를 기령당의 시초로 보고 있다. 

그러다 조선 영조 때인 1767년 민가에서 발생한 불로 전주부성(全州府城) 내 1000여 가구가 불에 탔다. 이때 군자정까지 소실됐는데 마침 불어닥친 광풍에 군자정 현판이 날아가 현재 기령당이 위치한 장소에 떨어졌다고 한다. 이를 기이한 징조로 판단, 여기에 정자를 다시 세운다.

이후 군자정은 다른 정자와 합정(合亭)됐고 이로 인해 사유지로 넘겨져 절로 바뀌었다. 다만 군자정이 맡은 경로당 역할은 1899년 부사청사(府使廳事) 건물로 옮겨져 양로당이란 편액을 걸고 계속됐다. 전라관찰사 조한국과 군수 이삼응의 보조로 운영돼다 일제강점기인 1911년 관청 건물이 환수돼 부동면 오계리(현 풍남동)로 옮겼지만 유지가 어려워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1921년 진사 이건호가 완산동의 가옥을 기증해 현재의 ‘기령당’이란 이름으로 고쳤고 1949년 지역 부호 인창섭이 절로 사용되던 군자정터를 매입해 기증하면서 현재까지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교육관에 걸려 있는 일제강점기 기령당 회원들의 모습을 기록한 사진.

기령당 옆에 별관으로 지어진 교육관에는 이러한 기록이 잘 남아있다. 1921년 취임한 128대 이건영 당장부터 현 이상칠 당장(172‧173대) 까지 역대 기령당장의 사진들이 걸려있다. 뿐만 아니라 인당 이영균(1913~2000)의 ‘시화연풍(時和年豊)’을 비롯한 여러 그림들을 간직하고 있어 사적으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이곳에서는 ‘전라도 선생안’과 ‘전주부 선생안’을 수호신 격으로 간직하고 있다. 선생안(先生案)은 조선시대 각 기관에서 전임 관원의 성명 관직 생년 등을 적어 놓은 것이다. 기령당은 전라관찰사나 전주부윤이 취임 후 가장 먼저 찾는 곳으로, 이러한 관례를 생략하면 옷을 벗는다는 말이 있다. 현재까지도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정치인과 기관장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기령당 회원은 200여명에 이른다. 대부분 공직에서 은퇴한 이들이다. 이들은 십시일반 연회비를 내 살림을 꾸려 나간다. 코로나 이전에는 정회원 60여명이 매일 이곳에 나와 친목을 다졌을 정도로 활발히 운영됐다. 

김두봉 회장 “전북 노인 긍지의 상징”

지난 2008년부터는 병자호란 때 중단됐던 기로연(耆老宴)을 부활시켰다. 기로연은 기로소(조선 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 耆老所)에 등록된 나이 많은 문신들을 위해 국가에서 베풀어주는 잔치를 말한다. 기령당은 중앙절인 매년 음력 9월 9일에 기로연을 개최한다. 대한노인회 추천을 받아 사회에 헌신한 9명의 은퇴관료를 초청해 연회를 베풀고 있다.

최병노 사무장은 “올해 개최 여부는 아직 미정이지만 공경의 의미를 담아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영배 전주시지회장은 “경로당의 뿌리이며 노인복지의 상징인 기령당이 앞으로도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 후대에도 충효사상을 전파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비록 코로나19로 인해 타 경로당처럼 잠시 운영이 중단됐지만 전북의 노인지도자들은 수차례 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도 충효사상을 전파해온 기령당의 운영 재개를 고대하고 있다. 

김두봉 대한노인회 전북연합회장은 “전북 노인의 명예와 긍지의 상징인 기령당을 중심으로 전북의 6700여 경로당이 다시 활기차게 제자리를 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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