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이 직접 쓰고 그리는 자서전
어르신이 직접 쓰고 그리는 자서전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6.11 11:03
  • 호수 7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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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지자체가 어르신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자서전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대전 대덕문화원의 그림책 자서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왼쪽)과 지난해 광주 동구가 편찬한 자서전.
최근 여러 지자체가 어르신들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자서전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대전 대덕문화원의 그림책 자서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르신(왼쪽)과 지난해 광주 동구가 편찬한 자서전.

광주 동구, 두 달간 글쓰기 지도 후 자서전 쓰기… 출간기념회도 지원

대전 대덕문화원, 그림책 자서전 편찬… 어르신 “직접 만드니 더 의미”

[백세시대=배성호기자] “그때 한 처녀가 나뭇가지를 꺾어서 죽은 쥐를 길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고, 그녀가 다지리(전남 화순)에 사는 임병순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한 걸음씩 되새겨 보니 술술’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놀랍게도 해당 글은 광주광역시 동구가 시행한 두 달여간 글쓰기 교육을 받은 조광윤 어르신이 쓴 자서전의 한 대목이다. 아내와의 인상 깊은 첫 만남을 ‘직접’ 기록한 그의 자서전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조 어르신은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정리해 직접 자서전을 쓸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최근 지자체들이 어르신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해 주목받고 있다. 기존에 많이 하던 봉사자들이 대신 써주거나 구술을 기록한 영상자서전 방식이 아닌 어르신이 자신의 생애를 직접 기록하는 방식이어서 더 의미가 있다. 

어르신 자서전 글쓰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은 광주광역시 동구다. 동구는 2019년부터 조선대학교와 업무협약을 맺고 어르신 생애출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40여명에게 자서전 쓰기 교육을 진행하고 6권의 자서전 모음집을 출간했다. 올해는 5~7월 매주 1회 총 10회에 걸쳐 글쓰기 교육을 진행한 후 자서전 쓰기에 나서 10월 중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또한 원활한 진행과 세대간 소통을 위해 조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만화애니매이션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청년멘토단’이 글쓰기 지도와 자서전 삽화 제작 등을 함께 진행한다.

경북 의성군립도서관은 60세 이상 고령자들에 기초 글쓰기 교육을 진행한 후 자서전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성군립도서관은 5월 26일부터 12월 8일까지 매주 한차례씩 총 24회에 걸쳐 자서전 쓰기 교육을 진행한 후 이수자에 한해서 작성한 자서전을 소책자 형태로 제작해 증정할 예정이다. 수업에 참여한 김영달 어르신은 “글쓰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작가님의 지도로 긴장이 풀어질 수 있었다”며 “열심히 참여해 나만의 자서전을 꼭 펴내고 싶다”고 밝혔다.

자서전 쓰기 교육은 보통 자신이 누구인가를 적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나의 외모는 어떠한지, 특징은 무엇이 있는지, 나의 취미생활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적는다. 다른 수강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자서전 전체의 기본 방향을 설정하게 된다. 

또 자신의 생애를 연표로 만든다. 직계가족(부모, 자식)의 인생 중 내 생애에 중요했던 부분이나 내게 영향을 준 사회적 사건을 연표에 추가하는 식이다. 사람의 일생은 크게 5단계 주기(유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각 생애 주기별로 기억에 남는 3~4가지 일들을 적는다. 각 사건에 대해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각 사건에서 나는 무엇을 느꼈는지를 적는 식이다.

이후에는 내게 영향을 준 주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는다. 보통은 배우자, 형제자매, 자녀, 부모에 대한 글을 쓴다. 생애 주기별과 마찬가지로 각 인물에 대해 기억나는 점 3~4가지와 각각 사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다. 

자서전을 그림책으로 제작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대전 대덕문화원은 오는 11월까지 그림책 자서전을 제작하는 ‘꼬순내(꼬마부터 예순까지, 내 인생 그림책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어르신들은 어린시절 친구, 고향집 등 옛 추억을 종이에 그림과 글로 표현하고, 자화상과 반려자 등을 그리고, 수채화·꼴라주·인형 만들기를 하는 등 미적 감각을 높이는 다양한 활동을 진행한 후 그림책 자서전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대덕문화원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그림책 자서전을 만드는 예술 활동을 하며 지나온 인생을 자연스럽게 돌아본 후 행복한 노년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청각장애 어르신들이 수어(手語)로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한 곳도 있다. 제주시 설문대어린이도서관은 제주도농아복지관과 손잡고 최근 농아 어르신 그림책 자서전을 편찬했다. 신양리, 종달리, 애월 봉성 등에 거주하시는 8명의 어르신들은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매주 한 차례 이상 그림책 자서전 제작에 참여했다. 청각장애 어르신, 수어 통역사, 프로그램 담당자가 한팀을 이뤄 쓰는 방식으로 진행해 이발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이야기를  ‘서귀동 이발사’, 북한에서 태어나 제주도까지 와서 살게 된 이야기를 담은 ‘질경이’ 등 8권의 그림책 자서전을 완성했다. 

강영미 설문대어린이도서관장은 “청각장애로 평생을 사신 어르신들의 녹록지 않은 삶을 그림책에 담아내는 과정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면서 “어르신들의 특별한 이야기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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