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일자리 80만 시대…악성 민원에 일자리 참여 어르신 곤욕
노인일자리 80만 시대…악성 민원에 일자리 참여 어르신 곤욕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1.06.18 11:06
  • 호수 77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칙대로 일했는데 주민에 사과 종용… 잠시 쉬었는데 “잡담하고 논다”
최근 경기 A시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사과종용까지 받아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노인일자리 현장에서는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이 공원을 청소하는 모습.
최근 경기 A시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사과종용까지 받아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이에 노인일자리 현장에서는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이 공원을 청소하는 모습.

일부 지자체, 민원 생길 경우 다음해 노인일자리 수탁기관서 배제

노인일자리 80만 시대… 참여 어르신 상담 및 법적 지원기구 필요

[백세시대=배성호기자] 화단을 조성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이부영(가명‧75) 어르신은 지난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참여 어르신들은 꽃밭을 가꾸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갖는데 마침 이 모습을 지켜본 시민이 ‘일은 안 하고 잡담하며 놀기만 한다’며 민원을 넣은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왕래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면 마음 편히 쉬지 못하고 눈치를 보게 됐다. 이 어르신은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을 계속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경기 A시의 노인일자리인 공원환경지킴이 사업에 참여한 어르신이 견주의 악성 민원에 시달린 사건이 벌어져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를 계기로 ‘을’의 입장에 있는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에 대한 처우개선을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A시의 공원환경지킴이로 활동하는 B어르신은 지난달 평소처럼 공원을 관리하다 한 여성이 자신의 반려견 두 마리를 여러 사람들이 함께 쓰는 긴 벤치에 앉혀놓은 것을 목격한다. 이에 그는 반려견 발에 흙이 묻어 있어 사람들이 이용하기 어려우니 이를 닦아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 여성이 이에 대해 즉각 반발해 항의하면서 두 사람간 언쟁이 오갔다. 문제는 이후였다. 해당 여성과 그의 남편이 ‘욕설을 했다’는 허위사실까지 거론하면서 악성 민원을 계속 넣은 것이다. 

거듭된 민원에 팀장이 대리 사과

결국 A시는 해당 민원 내용을 B어르신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B어르신은 본인이 잘못한 게 없어 사과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다 환경지킴이 팀장을 맡은 C어르신이 견주 여성을 만나 ‘기분 나쁘게 해서 죄송하다’는 취지로 사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원을 무마하기 위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당사자인 척 사과한 꼴이다.

이에 A시 관계자는 “원만히 해결하는 방향으로 말이 나온 것은 맞지만, 사과하라고 종용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노인일자리 현장에서는 그 자체가 심각한 압박이라고 지적한다. 한 노인회 관계자는 “수탁기관은 노인일자리 사업 예산을 배정하는 지자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민원을 전달하며 원만히 해결하라는 것은 일종의 ‘암묵적 압박’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공익형 노인일자리는 정부와 지자체가 매년 수탁기관을 선정해 예산을 배정하고, 기관에서 어르신을 선발해 운영되는 구조이다. A시의 경우 해당 지역의 대한노인회 지회가 지난해까지 해당 공익형 노인일자리 사업을 운영했지만 올해부터 다른 기관으로 수탁기관이 바뀌었다. 공교롭게도 이 지회는 지난해 A시장의 퇴진운동을 벌였는데 그 직후 공익형 노인일자리 사업 배정에서 탈락한 것이다. 하지만 이 지회는 수년간 해당 사업을 진행하면서 복지부 평가에서도 상위점수를 받아 결국 미운털이 박혀 그런 것 아니냐는 의문을 낳고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를 떠나서 악성 민원 자체가 참여자 어르신들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앞서 밝혔듯이 잠깐 쉬는 모습을 보고 “일은 안 하고 잡담만 하면서 세금을 뺏어간다”식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것이다. 

한 지회 관계자는 “참여자 어르신 대부분이 성실하게 일을 하고 있는데 일부 어쩌다 일어난 상황을 마치 전체의 일로 오해해 문제제기를 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사업장 문 닫을까 참여자들이 굴복

역학관계를 악용한 악성민원은 시장형 노인일자리에서도 발생한다. 스팀세차사업단을 운영하는 경기의 한 지회는 수차례 차량 손해로 변상을 해주기도 했다. 해당 지회 스팀세차단은 주민센터의 일부 공간을 빌려 운영하고 있다. 스팀세차 전에 차량에 파손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 작업을 진행하는데 손님 중 일부가 원래 파손된 부분이 세차 중 발생했다고 우기며 수리비 변상을 요구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적극 해명해도 “민원을 넣어서 영업을 못하겠다”는 식으로 협박해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결국 사업단이 배상을 해줬다.실버카페사업단을 운영하는 또다른 지회도 마찬가지다. 해당 지회 역시 공공기관에 주로 입주해 있는데 주문 실수 등으로 시비가 붙으면 역시 ‘민원을 넣겠다’며 반협박식으로 대응해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지회 관계자는 “일단 민원이 제기되면 어떤 식으로든 일자리 참여자에게 잘못이 있다는 인식이 있고, 이런 사례가 반복되면 영업장을 철거해야 할 수도 있어 피해를 보더라도 참아야 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노인일자리 참여 어르신들은 불합리하고 잘못된 민원 제기에 대응할 수 있는 지원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전국 노인일자리 80만 시대를 맞이한 만큼 중앙정부 차원에서 노인일자리 및 사회참여 어르신의 애환을 상담하고 법률적 지원을 해주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배성호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